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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llie 수현 Aug 08. 2020

잘 사는 척, 괜찮은 척

그 남자 그 여자의 간헐적 연애 (7화)


간헐적 연애. 서로가 마주하는 거리와 시간에 장벽을 두고 좀 '뜸하게' 만나는 사이. 자발적 의지에 의해 '연애' 자체를 간헐적으로 하는 사람도 있겠으나, One and only '찐' 상대방과 데이트를 몰아했다가 또 한동안 '거리 두는' 관계. 아니,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 때문에 사연 구구절절 많은 관계. 같은 나라에서 이어가는 연애가 아닌 '장거리 연애'의 경우, 이와 같은 물리적 거리와 시차를 두고 간헐적 데이트를 해나가야 한다. 만만치 않은 인내와 결단을 필요로 한다. 보고 싶을 때 볼 수 없고 따뜻한 포옹이 필요할 때 아스라이 흩어지는 '그리움'만을 쥐고 있어야 하므로. 얼굴 보는 빈도와 밀도를 중요시하는 사람에게는 사실상 초기부터 성립되기 힘든 그런 연애 스타일.


포털 사이트 내 영화 정보 (네이버)


영화 <러브, 로지> (2014 개봉작)에는 두 남녀가 '떨어져 지내는' 시간이 그려진다. 물론 그 둘은 처음부터 연인은 아니다. 어릴 적부터 '찐한' 베스트 프렌드인 알렉스 (샘 클라플린), 로지 (릴리 콜린스). 고등학교 때도 서로 '큭큭' 거리며 끊임없이 놀리고 지내는 죽마고우 동창 사이로 그려지지만, 그 비주얼과 성향이 너무나 찰떡같이 잘 어울려 보이니 도대체 왜 저 둘은 졸업 이후로도 12년 동안이나 한참 커플로 맺어지지 못하는 건가, 의아할 뿐이다. 관객 입장에서는 '고구마를 먹은 듯' 답답함의 연속이다.


서로를 사랑이라고 인정하지 못하고 흘러가는 세월 사이에는 '서로 떨어져 지내야만 했던' 시간들이 존재했다. 남자 주인공 알렉스가 하버드 의대에 합격해 보스턴으로 떠나야 했던 것. 로지도 미국 대학으로부터 합격통지서를 받지만 예기치 못한 사고로 한 아이의 엄마가 되는 삶을 선택해야 했다. 알렉스는 그 사실을 알지 못하고 미국 동부행을 결정하고, 로지는 몰래 싱글맘 라이프를 이어가며 영국에 남기로 한다. 이렇게 둘의 거리두기가 시작되었다.

상대방에게 살짝 남몰래 감춰두는 어둠의 순간들, 캄캄한 공간들


떨어져 지내는 삶은 '척'할 수 있는 삶이다. 로지는 영화 속에서 '괜찮은 척'을 한다. 알렉스가 원하는 대학교에 합격해 떠난 이후, 로지의 삶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드러내지 않고 꽁꽁 묻어둔다. 아이 엄마가 되었고 변두리 호텔의 종업원이 되었는데도  그녀의 어두운 근황은 전하지 않는다. 별일 없는 척, 잘 살고 있는 척, 알렉스가 곁에 없어도 슬픔이나 좌절, 고난 따위의 부정적 감정에는 전혀 휩싸이지 않는 척을 한다. 거리를 두고 자주 얼굴을 보지 못하는 관계이니 텍스트와 전화통화로만 안부를 확인할 수 있을 뿐, 그러한 '척'을 들춰낼 수 있는 기회 자체가 없다. "나는 잘 지내고 있어. 별 탈 없이 지내"라고 반복하며 미소 짓는 메시지를 전해나갈 뿐.


물론 영화 속에서 뭔가 이상한 낌새를 감지한 알렉스는 예고 없이 로지를 찾아오고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알아내고야 만다. 그러기까지 로지는 인내하며 잘 사는 척. 괜찮은 척.


나의 끙끙거림을
실시간 공유하지 않는
인내와 고뇌, 성숙한 경지


결국   '있는' 상황도 간헐적으로 주고받는다는 이야기. 때때로  연인이 부정적인 상황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을   특유의 우울감은 상대방에게까지 전해지기 마련. 간헐적 연애라는 것은 데이트가 듬성듬성한, 애달픈 운명을 타고났지만 거리두기의 쿨함이란  있다. 사람과의 관계까지 망치지 않도록 차단(?)해주는 보조효과 지니고 있다. 매일매일의 징징거림과 무언가에 대한 짜증 분노를 실시간 공유하지 않기 때문에  마디로 본인의 '힘든 상황' 어느 정도 스스로 해결하는  단련이 되어 있다는 이야기. 나의 힘듦을,  끙끙거림의 정서를 상대방에게까지 떠넘기지 않을  있는 조금  성숙한 경지랄까. 골치 아픈 소재와  마음에 들지 않는 일상의 포인트들을  노출하지 않아도 된다. 충분히 들키지 않을  있다.


별일 없는 척, 잘 지내는 척, 그렇게 다 괜찮은 척.


삶의 고단함을
살짝 가려둘 수 있는 비밀병기


간헐적 연애는 이토록 '척'할 수 있게 해 준다. 때때로 이는 '득'이 되기도 한다. 주중 각자의 생활영역에서 속상한 일이 생기고 기분 축 쳐지는 우울한 에피소드들이 미역 불듯이 불어나도 '별일 없는 척' 연기할 수 있다는 것. 긍정의 영역을 향해 화살표를 두지 않고 있는 연인의 마음은 때때로 상대방에게 안 좋게 전염되기도 하지 않던가. 불편한 상황에 몸 담그고 있는 상대방을 부드럽게 어루만져주는 것도 연인의 역할일 수 있겠지만 자주 반복되면 그게 누구든 '질린다'. 물론 영화 속에선 서로의 좋지 못한 상황을 일찍 감지하지 못한 게 각자 마음을 오해하게 만든 제1의 원인이기도 했지만.


만약 알렉스와 로지가 처음부터 하버드와 보스턴 대학에 진학해 매주 데이트를 즐길 수 있었다면 그렇게 모든 걸 괜찮은 척할 수 있었을까.


알렉스와 로지가 떨어져 지내는 '거리감' 보며 나의 장거리 연애 여정을 떠올렸다. "  없이 지내. 나는  지내..." 각자에게 '이슈' 있더라도 실시간 내가 어떻고 어떻다고 생중계하지 않을  있는 관계. 연애 관계에 부정적 기운의 흔적을 굳이 들이지 않아도 되는 사이. 모든  '좋은 ' 포장해야만 건실한 관계가 유지된다고 주장하려는  아니다. 다만  좋은 상황, 불편한 감정들을 '' 노출할  있는  분명 서로를 '' 피곤하게   있는 고마운 효과 아닐까. 특히나 '삐침' '징징거림'  가득인  성격이 매주의 데이트에 시큼한 양념처럼 곁들여졌다면 서로가 절절하고 애틋한 관계로  발전하기도 전에  번의 대첩들이 데프콘 1 단계(Defense Readiness Condition, 방어 준비 태세) 경보와 함께 먼저 발발했을지도 모르는 거라서 아찔하다.

눈 살짝 가리고 아무 일도 없는 척. 다 별일 없다는 듯.


별 탈 없이 지내는 척
 살고 있는 
힘들지 않은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수개월 동안 익숙해진 '집콕' 일상. #Stayhome.  이상 우리는 '간헐적'으로만날  없는 코비드 시대의 집콕 부부가 되었다. 남편은 재택근무 (Work from home), 나는 모든 강의가 온라인 원격 강의, 혹은  이름도 새로운 하이브리드, 하이플렉스 수업들로 전환된 나날들. 출근과 등교를  하니 잠깐이라도 떨어져 있을 일이 많지 않아져 버렸다. 붙어있어도 너무 붙어있는  아니니. 찰떡 부부.


 3년 간의 간헐적 데이트 관계를 보상이라도 받듯, 철저하게 모든 생활 영역을 공유하고 있는 요즘의 날들. 장거리 연애 시절과는 정반대로 모든 감정과 분위기를 노출해내고야 마는 잔인한 순간들이 반복되고 있으니... 이걸 어쩌나.  인생 여정 파트너에게 이렇게나 미안한 순간들. 때때로는 끝을 상실한 듯한 징징거림과 활화산 같은 짜증 폭발력을 다소 감춰둘  있었던 그때가 그립기도 하다.   없는 ,  사는 , 힘들지 않은 척할  있던 간헐적 연애자들의 비밀병기,  특권이 보고 싶어 진다.


https://youtu.be/1Gy1PMmqJ_U

영화 <러브, 로지> (2014년 개봉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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