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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llie 수현 Aug 15. 2020

14시간 시차쯤이야

그 남자 그 여자의 간헐적 연애 (6화)

두 남녀가 전화 통화를 한다. 여자의 시간은 저녁 11시 24분, 남자의 시간은 새벽 2시 24분. 한 사람의 눈이 감겨오지만 유선상의 대화는 발랄함을 잊을 줄 모른다. 서로의 근황을 주고받는 건 물론이고, 같은 유튜브 영상을 보며 깔깔거리며 끊임없이 재잘재잘. 그칠 줄 모르는 연인 간의 대화 속, 서로에 대한 애틋함과 그리움이 대화 켜켜이 얹히는 것은 물론이다. 지금 당장 보고 싶고, 바로 달려가서 껴안고 싶은데 비행기 티켓은 또 마냥 비싸기만 한 '참 어려운' 연애. 그냥 단순한 전화통화가 아니다. 3시간의 시차를 뛰어넘는 여정. 장거리 연애 커플의 눈물겨운 통화기록이다. 영화 <고잉 더 디스턴스 (Going the distance)>의 이야기.


2010년 한국 개봉작. 고잉 더 디스턴스 (Going the distance)
샌프란시스코와 뉴욕의 시차는 3시간. 물리적 거리감을 좁히기 위해 부지런히 시차를 뛰어넘는 전화통화는 필수.


영화 <고잉 더 디스턴스>는 남녀의 장거리 연애를 그린다. 여자는 샌프란시스코에, 남자는 뉴욕에 거주한다. 운이 좋았던 걸까, 혹은 운이 나빴던 걸까. 여자 주인공 에린 (드류 베리모어)이 뉴욕의 한 신문사에서 인턴기자 생활을 하던 중 남자 주인공 가레트 (저스틴 롱)와 연이 닿는다. 스탠퍼드 대학으로 돌아가서 대학원 과정을 마쳐야 한다고, 우리는'연인관계'로 나아가서는 안 되는 거라고 처음부터 단호하게 선을 긋는 에린. 하지만 사람 마음이 어디 마음처럼 되던가. 둘은 결국 서로가 놓인 공간이 어디가 되었든 일단 '사랑에 빠져드는 길'을 택하자고 외친다. 혹시나가 역시나가 되었다. 함께 영역을 공유하지 못하는 에린과 저스틴은 날이 갈수록 힘들어하고 뉴욕과 샌프란시스코, 서로의 간격을 맘처럼 좁히지 못해 상당히 애를 먹는다. 둘 사이에 놓인 시차만큼이나 연애의 온도차도 커져만 간다.


만나지 못하는 간극, 문자로 버텨내는 나날들. 2010년이 배경이니 영상통화도 흔치 않던 시절.
샌프란시스코와 뉴욕의 거리감 좁히기는 맘처럼 쉽지가 않고.


3시간 시차는 애교 아닌가? 영화를 보는 내내 생각했다. 샌프란시스코와 뉴욕, 아무리 대륙의 끝과 끝 지점이라고 해도 어쨌든 같은 나라니 심리적 거리감은 상대적으로 덜하다. 약 5시간 국내선 비행하면 얼굴 볼 수 있는 관계. 서울-부산도 초고속열차 타면 2시간, 자차이용에 5시간 걸린다. 약간의 차이는 날 지라도, 네가 밤일 때 나도 밤이고, 네가 아침일 때 나도 아침인 관계잖아. 먼저 기상한 사람이 사랑스럽게 모닝콜해주기도 딱 좋은 연애관계 아니었을까. 7시에 일어나야 할 사람을 위해 이미 10시를 살고 있는 사람이 발랄 산뜻하게 깨워주기. 또는 밤 11시면 잠들어야 할 상대방에게 8시를 살고 있는 사람이 퇴근길에 조곤조곤 힐링 쏭을 읊조리는 것도 제법 로맨틱 한 관계를 만들었을 텐데. 이 둘은 '시차'를 참 힘들어한다. 그깟 3시간이 뭐라고.

내가 핑크 선셋을 바라다볼 때, 너는 어떤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을까? 상대방의 하늘이 궁금해지는 연인관계


14시간의 시차. (서머타임 적용 , 13시간) 서로의 낮과 밤이 정반대인 연애에 2  길들여져 있었다. 내가 아침 11 생방송 준비를 위해 출근할 때면, 올랜도에 있던 그때의 남편은  10시의 캄캄함을 마주하며 잠들 준비를 했다. 한국에서 <정오의 희망곡> 생방송을  , 남편의 시계는 딥슬립 직전을 향해 있었고, 결국 내가 진행하는 방송을 <한밤중의 희망곡>처럼 애청한 셈이 되어버렸다. 실로 한낮의 방송과 한밤에 듣기 좋은 방송의 에너지는 참으로 다른 것인데! 무던히도  에너지 변환에 적응하며 한밤   깨우는 업텐션 방송 듣기를 군말 없이 행한 . 이제서라도 박수를 보낸다.


물론 괴로움은 나에게도 있었다. 주로 부러움에서 기인한 것. 이를테면 오후 5시, 한창 데일리 뉴스들에 치여 바삐 몸을 움직이고 있을 때, 새벽 서너 시 한창 달콤한 꿈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을 그의 모습을 부러워한다든지 (나도 빨리 퇴근하고 꿀잠 자고 싶다!), 왠지 야식 먹으면 안 될 것 같은 밤 11시에 뭘 챙겨 먹어도 해롭지 않을 것 같은 오전 9시, 상대방이 이미 만끽하고 있을 환한 햇살을 열망한다든지 (나도 빨리 아침 식사하고 싶다! 꼬르륵).


생각하고 되뇔수록 자꾸만 어려운 이름, 장거리 연애. Long Distance Relationship


제3의 시계, 너의 공간을 상상하는 마음의 시계를 가진다는 것은 특별한 경험이다. 회사의 벽시계와 내 손 안의 핸드폰 시계 못지않게 마음을 자극하고 울리는 또 하나의 세상, 그 안의 시간들. 서로 다른 시간 속에서 시차를 느끼며 산다는 것은 쉽지 않아서 더 흥미진진하고 귀하다. 상대방이 사는 세상의 시간을 존중하고 이해한다는 것. 내 에너지와 너의 에너지가 적당한 간극을 두고 벌어져 있어도 참 '다르다'라고 불평하는 대신 '재밌는 게임 규칙' 같다고 마음 열어 내내 생각하는 것. 어쩌면 그 어떤 보드게임이나 컴퓨터 게임보다도 신기하고 재밌는 전개가 펼쳐진다.


그런 의미에서 <고잉 더 디스턴스> 에린과 가레트의 시차는 고무줄의 탄력이 엉성해지듯, 흐물흐물 그 생동력을 잃은 느낌. 고작 3시간이었지만 마음의 시차는 30시간 정도 된 것 같다고 땅땅땅 평가해본다. 어떻게 여자 친구가 밤에 전화 좀 하자는데 '나 일찍 자야 한다'라고 냉정하게 선 그을 수가 있나. 시차도 만만치 않은 인내를 요하는데 얄미운 언변의 남자 주인공 스타일은 그보다 더한 인내를 요한다.


만약 당신이 시차 나는 연애를 하고 있다면, 첫째,  사람의 시간에 가장 필요할  같은  채워주기. 내가 대낮이고  사람의 밤을 지나고 있다면 한낮의 긍정 에너지 휘휘 섞어서 사랑 가득한 자장가를    있게 불러준다는 ,  그런 .   정신 말똥말똥한 눈빛 가지고 있는 사람이 정신 몽롱한 밤을 보내고 있을 상대방 토닥토닥  챙겨주는  필수. 14시간을 빨리 살고 있는 사람이 최대한 플러스(+) 기운을 담아 연인이 타박타박 걸어올 길을 매끈하게  닦아두기. 물리적 시차는 벌어져있을 지라도 마음의 시차는 오묘하게 찰싹 가깝도록 만드는 비법들.  


만약 당신이 시차 나는 연애를 있다면, 둘째, 시차가 나서 좋은 점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상대방의 생일을  시차, 너의 시차까지  부풀려서 장장 24시간 +14시간 = 38시간 동안 공식적으로 축하해   있는 거니까, 귀여운 마법을 획득한 .


마지막 셋째, 종종 같은 시간대 안에 머물게   '시차 없는 공간'에서 함께 머물며 소통할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경이로운 것인지 부지런히 감탄하고  감사하기.  긍정의 기운 안고 시차 없는 '세상 편한 관계', 언젠간 신나게 즐겨주기. 너와 내가 겪은 14시간의 시차의 간격은 '균열'이나 '파열' 묘사될  아니라 '' '여유', '여백' 같은 예쁜 단어로 그려질  있다고 믿어보기.


영화 속, 주인공들이 장거리 연애를 결단하는 결정적 공항 씬

https://youtu.be/cTZ6hzbFz-s

영화 <고잉 더 디스턴스> (2010년 개봉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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