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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llie 수현 Aug 01. 2020

How to '롱디'

그 남자 그 여자의 간헐적 연애 (5화)

요즘 같은 시국, 영화관에 가기가 꺼려지니 매주 집콕 무비 한 편씩은 필수. 매달 구독하고 있는 스트리밍 서비스를 (HBO MAX) 이리저리 훑어보다가 반가운 영화 한 편을 만났다. 십여 년 전 대학시절에 챙겨 봤던 로맨틱 코미디 <How to lose a guy in 10 days>. 2003년, 한국에서 개봉했던 제목은 <10일 안에 남자 친구에게 차이는 법>. 개봉 연도를 보니 당시에도 영화관에서 개봉 직후 따끈따끈 할 때 보진 못했던 것 같다. 대학 합격 후 그 언젠가의 로맨스를 꿈꾸며 로코물만 찾아 빈지 워칭 (Binge watching)을 하던 시절로 추정된다.


<10일 안에 남자 친구에게 차이는 법> 영화 속에서


제목이 참 잔인하기도 하지. 잡지사 기자로 일하고 있는 능력녀 앤디, 매달 How to 기사를 쓰다 보니 '하우투 걸'이라는 별칭으로 더 자주 호칭되고 지칭된다. 그러던 어느 날, 편집회의에서 돌연 기묘한 주제의 기사를 할당받게 됐다. ‘How to lose a guy in 10 days’. 남자 친구에게 뻥, 차이기 위해 '하지 말아야 행동'들을 오히려 직접 실천해야 했던 것. 실제 그 연인관계를 망쳐보고 독자들에게 '역'으로 조언을 해주자는 미션. (편집장 님, 너무 사악하세요.)


포털 사이트 내 관련 영화정보 (네이버)


이렇게 행동했더니
상대방이 질색팔색 싫어하더라고요
저처럼 행동하면
이렇게 금방 차일 지도 몰라요


남녀관계에서든, 우정관계에서든, 쿨하고 현명하게 제법 잘 대처해왔던 앤디. 본인의 하우투 기사를 완성하기 위해 본격적으로 소위 '진상'이 될 법한 행동만 골라서 남자 친구에게 ‘전략적으로, 의도적으로’ 투척하기 시작한다. 남자 친구의 집 분위기를 자신의 핑크빛 아이템들로 싹 바꿔버리기, 남자 친구 회사에 찾아가서 호들갑 떨기, 남자 친구의 친구들과의 모임에 나가서 남자의 엄마가 된 것처럼 하나부터 열까지 아기 다루듯 챙겨주기, 남자 친구 모르는 사이 예비 시댁 드나들기, 스포츠 경기 중요한 하이라이트 순간에 다이어트 콜라를 지금 당장 마셔야겠다면서 난리부르스 추기.


누가 봐도 상대방 남자 '참 질리겠다' 싶을 행동과 습관만 쏙쏙 골라내서 연기해내는 여자 주인공. 남자와 여자가 첫눈에 반하는 것도 한순간이었지만 관계가 서서히 망가져가는 것도 순식간이었다. 해서는 안 될 세 가지를 아낌없이 내보였으므로. Clingy, Needy, Whiney.


Basically we know every guy hates
I will be clingy, needy, whiney.
알잖아. 모든 남자들이 싫어하는 것들.
이를테면
매 순간 찰싹 달라붙으려는 것
애정에 굶주려 있는 것
징징거리는 것

(영화 속, 케이트 허드슨의 대사)


영화 한 편이 알려주는 너와 나의 관계 이야기


이 영화 속에서 여주인공 앤디가 착실히 실천했던 것들. '애정결핍'의 면모를 간직하고 '집착'하며 쉴 새 없이 '징징거리기'. 징징거림이 받아들여지면 다시 집착하고 '날 바라봐, 나만 바라봐, 딴 데 한눈팔지 마'라며 남자의 숨통을 서서히 죄어가기. 으악, 관객으로서 지켜보기만 해도 손끝이 저릿해지고 입이 떡 벌어지고야 만다. 연애를 망치는 악순환의 연속이라니!


영화  남녀 주인공은 결국 서로에 대한 오해를 풀고 '진정한 연인' 되는 해피엔딩을 맞게 된다. 하지만 현실 속에선? 알게 모르게 여러 관계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같은 실수를 반복하곤 한다. 3가지 요소에 농도차는 있을 지라도 다들  번씩은   가지를 차례차례 저질러 보거나 혹은 접해본 적이 있을 것만 같다. 나와 연인이  자를 '소유'하고자 하는 데서 오는 크고 작은 욕심들이 결국엔 Clingy, Needy, Whiney 괴물을 만들어내는 .


Clingy, Needy, Whiney. 연인에게 아기처럼 군다는 것.


간헐적 연애관계에서는  3 콤보가 존재하지 않는다. 아니, 존재하기 힘들다. 낮과 , 시차가 다르고 얼굴 보려면 자그마치 15시간 비행기를 타야 하는 장거리 커플.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러할 '기회'자체가 사실상 주어지질 않는다. 상대방 연인에게   없이 '징징'거리는 모습으로 질리게 하려면 일단  징징거리는 울상의 표정을 마주할 만큼 만남이 있어야 하는데 일단  못난 모습을 내보일 기회가 아주 적다. 오히려 계절에 한번 만날까 말까  분기별 연인관계에서는  '징징거리는 표정'마저도 애틋하고 아련할  같잖아! 데이트하기로  날마다 징징거리는 여자 친구, 만날 때마다  징징거림에 신경쇠약이 걸릴  같은 남자 친구.  구도가 형성될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저 부럽기만  모드로 전환된다. ‘롱디 이어간다는 것은.


징징거림조차 그리울 
간헐적 관계라니


시차가 있다 보니 관계에 '집착'을 하고 싶어도 자연히 한 발 멀어지는 효과가 있다. 한국이 낮이면 미국은 밤이고,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 연인이 지치도록 집착을 하려면 서로가 일하는 대낮에 '뭐해. 무슨 생각해. 뭐 먹어. 내 생각은 얼마나 했니. 지금 하고 있니. 그래서 어쨌든 보고 싶어’ 등등 1분 1초 서로의 근황을 살피는 데 바빠야 할 텐데, 14시간 시차는 서로가 서로에게 들이밀지도 모를 '집착' 지수를 한껏 낮춰주는 효과가 있다.


집착을 하고 싶더라도 일단 생리학적으로 '너무 졸려'. 당신이 뭐하는지,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하기도 하지만, “일단 나 좀 잘게... “가 먼저다. 연인에 대한 왕성하다 못해 지나친 호기심은 '수면 욕구'를 이겨내질 못한다. 결국 끈덕지게 달라붙을 기회가 자연히 차단(?) 되니 관계는 적당히 쿨해지고 건강한 거리감을 두는 데 꽤나 성공적. 의도적으로 연인과 #사회적거리두기 할 필요는 없는 거지만 오래오래 귀하게 간직될 애정관계를 위해서 서로의 숨통을 트여줄 '거리 감각'은 분명 중요할 테다. 시차는 이 건강하고 현명한 거리감을 선물해줬다.


너와 나의 연결고리. 엉겨 붙지 않는 적당한 거리 감각


장거리 연애를 이어간다는 것. 간헐적으로, 석 달 못 봤다가 열흘 몰아서 데이트를 해도 관계가 유지된다는 것. 상대방에게 실시간 애정을 확인하고 따져 묻지 않아도 관계의 힘을 믿고 상대의 마음을 믿는다는 것. 동시에 빈번하고 정기적인 데이트가 부재하더라도 허전하지 않을 만큼 자기 생활 영역이 탄탄히 구축되어 있다는 것.


고로, 애정결핍을 호소할 틈이 사실상 없다. 내 공부, 내 계발을 챙기기 바쁜 나날들이 이어지므로. ‘내가 요즘 이런이런 활동들을 하며 꽤나 건강하고 기분 경쾌한 하루를 이어가고 있어'라며 나중에 서로 스토리를 나누면 될 일. 굳이 같은 취미를 공유하며 나는 너를 애정하고 애정 한다며 하나가 될 필요는 없는 거다. 각자 잘 쌓아 올려져 있는 에너지를 주고받으며 토닥토닥 좋은 기운을 덧대면 될 일. 애초에 서로의 애정을 확인하는 데 에너지 쓸 작정이었다면 이 장거리 연애 시작조차 안 했겠지?


집착과 애정결핍. 징징거림 노노. 건강한 애착형성을 원합니다.


그리하여 관계를 망치는 3가지 미운 요소들이 쏙 빠져버리고 마는 장거리 커플의 '간헐적 연애'. 영화를 지켜보는 내내 비로소 깨달을 수 있었다. <How to lose a guy in 10 days>를 통해 어떻게 간헐적 연애가 #성공적일 수 있었나, 무릎을 탁 쳤던 순간들. 여자 주인공이 철칙으로 삼은 세 가지 키워드를 몸소 자주 실천할 수 없는 운명이었으니까. '차이기' 딱 좋다는 볼썽사나운 징징거림과 집착, 애정결핍 호소 삼단 공격이 터져나가는 걸 스스로 자동 방어할 수 있었으니까.


서로 같은 공간을 딛고 설 기회가 적다는 것. 곧 Clingy, Needy, Whiney 기회가 대단히 적다는 이야기


Clingy, Needy, Whiney
세 가지 부재가
결국 건강한 연애 키워드



결국 바꿔 말하면 건강하고 이상적인 연애 관계란, No Clingy, No Needy, No Whiney. 이 세 가지에 기초하는 것 아닐까. (그렇다고 굳이 힘든 장거리 연애를 찾아 삼만리 하라는 이야기는 아님!) 간헐적 데이트만이 가능한 관계에서처럼 적당한, 건강한, 경쾌한 '거리 감각'을 가진다면 이 세 가지 사악한 투정들은 쓱싹쓱싹 센스 있게 사라져 줄 것도 같으니 여기에 별표 하나, 돼지꼬리 땡땡. 연애고수는 결코 아니지만 조심스럽고 수줍게 롱디 전략을 응축 해내 보자면 이렇다. 올랜도에서 온 남자도 춘천에서 온 여자도 결국에는 잘 해냈더라고 하는 그것. 다시 한선 강조하건대 No Clingy, No Needy, No Whiney. 영화도 말하고 있다. 영화 속 케이트 허드슨도 똑똑히 알고 있었다.


내 연애 지향점은 어디를 향할 것인가.

https://youtu.be/2ZMGk_Ml1fc

<How to lose a guy in 10 days > 공식 트레일러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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