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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llie 수현 Jul 18. 2020

상담하는 남자, 방송하는 여자

그 남자 그 여자의 간헐적 연애 (3화)


올랜도에서  남자, 춘천에서  여자.'


우리 커플을 지칭하는 별칭에서부터   있는  하나.  커플  공통분모 찾기 힘들겠다는 . 명색이 커플이라면 자주 얼굴 보고 서로에게 익숙해져 가며  들이는  가장 기본적인 미션  하나일 텐데 장거리도 보통 장거리여야지. 미국 플로리다 주의  도시와 대한민국 강원도의  도시, 올랜도와 춘천은 정말이지 떨어져도 ...  떨어져 있는 롱디였다. 서로 발을 두고 있는 나라마저 다르니 이역만리 떨어져 하는  연애,  어떤 장거리 연애보다도 난도 최상이다.  달에 한번 꼴로 데이트를 몰아하는 식의 간헐적 연애하기. 지금 되돌이켜 생각해봐도  쉽지 않은 고난의 행군. 그걸 어떻게 했지?

 

상담하는 남자
방송하는 여자 


간헐적 연애에 익숙했던 우리 커플, 극과 극으로 달랐던 건 '나라'뿐만이 아니다. 각자 몸담고 있는 분야마저 극과 극, 참 달랐지 싶다. 물론 커플이 같은 분야에 종사하는 것보다 각기 다른 분야에서 공부하고 일하는 경우가 더 흔. 하. 겠. 지. 만. 우리는 그 다른 분야 중에서도 참 '반대'의 영역에 놓인 지점에 각자 서있었기 때문.


상담하는 남자와 방송하는 여자.   커뮤니케이션에 기반한다는  같지만  사람은 누군가의 뼛속 깊은 고민을 진지하게  기울여 들어야 하는 분야에 발을 딛고  있었고, 다른  사람은 끊임없이 '말하는, 말해야 하는, 말하는  즐겨야 하는' 직업에 닿아있었다. 자석으로 따지자면 N극과 S, 숫자로 따지자면 양수와 음수. 커피로 따지자면 카페인과 디카페인?


Mental Health Counseling과 Broadcasting이 만났을 때


상담하는 남자와 방송하는 여자가 만났다. 말을 들어주는 사람과 말을 하며 밥벌이를 하는 사람. 남편이 현재 속해있는 일터의 전공명은 Mental Health Counseling. 전공자가 아니어서 정확한 '상담학' 기본을 이렇다 저렇다   없지만 누군가를 상담해준다는 것은  어떤 조언을 쥐어주는 것보다 '들어준다' 영역에 무게가 실리는  같다. 실제로 나도 남편에게 '상담'이라는 명목 아래 이러쿵저러쿵 말을 털어두면서 '힐링' 효과를 제대로 체험한 적이 많았으므로. 누군가의 이야기를 끊임없이 들어주고 공감해주는  ''이고  올바르게 들어주는  학생들에게 또다시 가르치는  ''이다 보니  남자,   듣는다.


지금부터 ‘수다 화수분’의 말을 들어 보겠니?


롱디, 장거리 연애를 지탱해준 여럿 요소들  하나. 어쩌면 정확히 반대 지점을 향해있는 '직업' 덕분이 아니었을까. 내향적인 성향이 다분함에도 불구하고  재잘재잘 말하는  좋아하는 나는 간헐적 연애 관계 안에서 '수다' 화수분이었다. 재물이 계속 나오는 보물단지처럼 나의 '하고 싶은 ' 끊이질 않았다. 장거리 연애 커플에게 있어 메신저 영상통화는 필수일 텐데, 돌이켜보면   똑똑한 기능을 쓰면서  '말했고' 그는  '들었다'. 조금  정확히 말하자면 '들어줬다'. 조곤조곤 1시간, 2시간 내리   많은 여자 친구의 넋두리, 혹은 뒷담화, 때때로 인생에 대한 한탄 등등. 


 듣고 있자면 때때로 따분하거나 도리어 짜증도 났을 텐데 그는   들어줬다. 직업정신을 발휘했던 걸까. (연애하면서까지 일하는 느낌 들게  거면 미안하고.) 연애 상대자가 정신건강상담 영역에 발을 담그고 있던 덕분에 나는 말하면 말할수록 정신건강의 치유효과를 톡톡히 누렸다.


직업 정신을 발휘했던걸까. 많이 ‘들어준’ 남자


한없이 들어만 주는 사람을 웃겨주는   . 하루 종일 방송하다 집에 오면 퇴근을 했는데도  특유의 흥분상태가 종종 사그라들지 않을 때가 있다. 생방송에서 다른 진행자와 호흡을 맞추다 보면  오고 가는 찰떡 애드리브와 유머감이 절정에 달해 일상 대화에까지  에너지가 흘러넘쳤던 . 아무리 카운슬 영역에  있다지만 하루 종일 학교 울타리 안에서 논문 보고 학생들 가르치고  연구영역을  고민하는 일이 얼마나 답답할까. 본인 ' 헬스'  챙길 남자 친구,  남편을 재미있게 까르르까르르 웃겨주는   몫이었다. ( 웃겼는데 억지로 웃어준 거면 미안하고.) 텔레비전이나 라디오 켜야 만날  있는 방송진행자의 담화를 1 1 은밀하게 접할  있는 건데  좋았을까? (라고 혼자 생각해본다.)


“방송에서 못 다 푼 에너지를 너에게 뿜뿜해줄게”


자석이 같은 극을 향해 있었다면?   '들어주는 사람'이었다면 조금 따분했을  분명하다. 서로 배려심 넘치는 대화를   있었겠으나 적절한 수다 폭발 없이 그저 '듣기' 바탕을  대화,  심심하면서도 맨송맨송했을 것만 같다. 반면,   '말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었다면 충돌지점이 많았을 거다. 자꾸 멘트가 엇물리는 현상, 서로 말은 많은데 누구 하나 충분한 공감력을 동원하지 못했다면  시간의 수다는 공허 해졌을 테고. 수다로 인한 '힐링'효과를 충분히 느끼기도 전에 서로 말하기 욕심만 붙들다가 결국 자주 싸워버리진 않았을까. 얼굴 자주 보지 못하는 관계에서 소소한 다툼은 오해와 설움을 이고 지고 마침내 눈덩이가 되어버릴  있다. 자주  보는데 싸워버리는  그야말로 재앙이다. 대화로 풀어낼 기회도 다른 기분전환으로 센스 있게 만회해  기회도 찾기 힘들기에.


“내 남편의 정신건강은 누가 챙기나?”


상담 전공자 남자 친구,  남편이 좋았던, 그리고 지금도 좋은 이유. 하나, 그는  들어줄 준비가 되어있다. 밖에서 어떤 어떤 일과 충돌하고 허덕거리다가 집에 터덜터덜 들어오더라도 여자는 여자의 말을 집중해서 들어줄 개인 상담사가 있는 . , 그는 '정말'  들어줄 준비가 되어있다. 사소한 불만거리를 입술 '삐죽' 내밀고 투덜거려도 지구  인류 최대의 과제를 고민하듯이 들어준다. 상담사다운 리액션도 곁들여지니 공감력은 그저 최고. , 그는 정말  듣겠다고 '작정' 사람 같다. 아무리 수다스러운 나라도 종종  안의 문제에 갇혀서 스스로  한마디도 하고 싶지 않은 순간이 찾아드는데, 그럴 때마다 그는 작정하고 내게 '말을 해야 한다'라고 동굴에서 끌어내고야 만다. 내가 하는 말만  듣는  아니라 '말을 해야 하는사안에 대해서는 슬쩍 감춰둔 것까지 말을 하게끔 똑똑하게 유도하는 .


커피 한 잔에, 내 전용 상담창구 오픈. 간헐적 연애 시기에 잘 짜여 온 우리의 대화 패턴 덕분에 탄탄히 꽤나 잘 자리 잡은 소통방식. 물론 시행착오나 실수가 아예 없다는 건 아님


너는 내 개인 상담사
(Personal Counselor)
나는 너의 개인 방송인
 (Personal Entertainer)


  같은 영역에 발을 담그고 있지 않아  다행이다. 다시 말해 직업이  달라서 다행이지 싶다. 각자 향해  지점이 다르니 자연스레 드러나는 각자의 대화 욕구도 억지스럽지 않게 채워진다. 나는 최대한 재잘재잘 많은 말을 풀어두려 하고 너는 최대한 많이 들어주고 싶어 하고. 대화의 패턴이  맞으니 영상통화로든 음성통화로든 소통 욕구 채우기에 모자람이 없는 .  패턴 만족도가 좋은 질로 유지되지 않았다면 아주 가끔 찾아오는 데이트 몰입의 순간들도 비틀비틀 흔들리지 않았을까. 간헐적 데이트의 순간들을 고농축으로 알차게, 뜻깊게 보낼  있었던 , 서로의 소통 공식이   짜여있었기 때문이었을 거다.


  동안 '진짜' 데이트하지 못하고서 어찌  관계가 온전히  연결될  있는 거냐고 물으신다면?  이토록 다른 ‘직업덕분이었다고 입을 뗀다. 말하는 사람과 들어주는 사람, 엄격히 경계를 나눠둘  없다고 해도 우리는 각자 취향과 직업 따라 자연히  역할 분담해내고 있었으니까. 상담이 전공인 남자와 방송이 전문인 여자는 차츰차츰 찰떡같은 호흡을 만들어냈고, 우린 간헐적 연애 끝에 부부가 되고야 말았다. 올랜도에서  남자, 춘천에서  여자, 제3의 공간 보스턴에서  다른 호흡으로 우리들의 이야기 패턴을 만들어 고 있다.


내 아들이지만 넌 참 좋겠다. 상담하는 아빠, 방송하는 엄마가 있어서. 잘 들어주는 아빠와 이야기하기 좋아하는 엄마가 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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