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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llie 수현 Jul 04. 2020

'간헐적 연애'의 시작

그 남자 그 여자의 간헐적 연애 (1화)

올랜도에서 온 남자, 춘천에서 온 여자


오늘도 간헐적 단식에 성공했다. 출산 이후 코로나 시국이 장기전으로 접어들면서 집콕 라이프만 하고 있으니 식이요법이라도 철저히 해야겠다는 생각에서 시작한 식이요법 전략. 방법은 어렵지 않다. 하루 24시간 중 8시간은 먹고 싶은 걸 양껏(?) 먹고 (양심적으로 마음껏 먹고), 나머지 16시간은 아예 곡기를 끊는 것. 아주 간단해 보이는 스낵이라도 절대 먹어서는 안 된다. 완벽하게 먹을거리를 차단한 채 십여 시간을 보내야만 효과가 짠 나타날 수 있는 법. 요즘은 오후 5시까지만 먹고 오전 9시에 그날의 첫끼를 시작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한참을 굶었다가 아침 9시에 '드디어' 알현하는 첫끼가 어찌나 반갑던지. 이른바 나만의 #오늘아침첫끼 챌린지.


곧 50일 차를 바라보는 간헐적 단식. 정말 단 하루도 어기지 않고 꼬박 16시간씩을 버텨내는 독한 모습에 지켜보는 남편은 이내 '간헐적'이라는 수식어로 놀리는 데 재미 들리기 시작했다. 이를테면 아들에게 전래동화를 들려주면서도 내가 꽂힌 '간헐적' 단식을 응용하기 시작한 것. '옛날 옛적에 호랑이랑 곰은 너무도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곰과 호랑이는 간헐적 단식을 해야 했는데 글쎄 배고픈 곰은 참다못해 쑥과 마늘을 먹어버렸어요." 이런 식.


가끔 서로 일에 치이다가 정신이 없어서 설거지와 청소를 미뤄두면 "우리 집안일도 간헐적으로 하는 거야?" 아기가 잠을 자다가 분유 라테 타이밍을 놓치면 "아기는 간헐적 단식하면  되는데..." , 이러다가 모든 일에 '간헐적'이라는 표현이 붙을 기세다. 코로나 시국에 학교  일이 없어 영어  일이 없는  빗대 '간헐적 영어'. 감정 기복이 심한  성향을 빗대 '간헐적 조증'  이렇게 말이다. 아무렴, 생각해보니 우리 연애도 간헐적으로 했잖아.


미국과 한국, 장거리 연애, 그 간헐적 관계가 가능하다고?


간헐적 연애.  시작은 2016 여름 이맘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익숙한 표현으로 설명을 보태자면 '장거리 연애' 출발이다. 일명 ‘롱디 (Long Distance Relationship). 현재의 남편은 당시 플로리다 올랜도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학생, 나는 춘천의 지역 방송사에서  7  회사원.


미국과 한국 사이, 장거리 연애가 가능해? 그게 진짜로 있을  있는 일이야? 일어날 수는 있는 일이더라도 성공률은 낮은 연애 아니야? 여러 가지 물음표가 떠오를 법한 관계의 시작. 주말마다 만나는 것은 당연히 꿈도   일이고,  달마다 서로의 온기를 느끼는 것도 환상에 불과했다.  좋으면 계절마다 겨우  번씩 마주하는 관계. 우리는 그렇게 간헐적 단식을 하듯, 연애를 했다. 그리고 결국엔 부부가 되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프러포즈 받던 날
간헐적 연애에서 부부의 삶에 접어들기까지


생각해보니
우리 연애도 '간헐적'으로 했잖아.


'간헐적' 것도 체질인 걸까. 간헐적 단식도  잘하는데 간헐적 연애도 꽤나  적성에 맞았다.  계절에, 혹은 두 계절마다  번씩 만난다는  연인 사이에 말도  되는 이야기 같지만 커플이 가진 성향과 간헐적이라는 수식어가  맞아 떨어지면 그게  불가능은 아닌 . 외동딸로 자란 덕분일지 혼자서 사부작사부작 무언가에 집중하며 시간 보내는  좋아하는 편인데, 주말이나 휴일에 '현장 데이트' 없더라도 그게 스트레스가 되거나 화의 근원이 되지 않았던 거다. 틈틈이 주고받는 메시지와 사진, 짤막한 동영상 메시지로 마음을 확인하고 즐거워하는   불만, 불편함이 없었던 . (물론 애틋함은 날이 갈수록 더해갔겠지만...이라고 적어둬야겠지?) 다시 말해 혼자 놀기의 고수에겐 간헐적 연애 성공 가능성이 높아진다.

2017년 가을, 서울 데이트. 계절에 한 번씩만 만나도 얼마나 다행.


게다가 여기에 #자기계발중독자 성향이 더해진다면? 회사에 다니면서도 한창 '멀티플레이' 하기를 좋아했던 내겐 언젠가부터 주말과 휴일이 '해야 할 일들'로 빼곡했다. 평일에 지역 근무를 하다가 서울 본가로 올라가는 주말이 되어도 편안히 내 몸을 집 안에 들여둔 적이 많지 않다. 늘 뭔가를 배우러 학원을 다니는 걸 좋아했고 특정 달의 학원 주말반 수강을 위해 아예 주말 당직을 어느 한 달로 몰아버리곤 했던 특이한 애. 만약 여기에 '정기적이고 꾸준한' 주 단위 데이트가 곁들여져야 했다면 더 스트레스 지수가 올랐을 게 분명하다. 좋아서 하는 각양각색의 자기 계발들이 '연애' 때문에 방해받고 있다고 생각했을 테니까.


간헐적 단식과 정말이지 닮았다. 16시간 금식하고 8시간 신나게 먹을  있는 원칙처럼, 두세 달이 넘도록  보다가 2 정도 '몰아서' 데이트를 즐긴다. 서로의 부재와 서로에게의 몰입이 극과 극을 오가며 부단히 선을 넘나드는 관계. 5월에 봄학기를 마친 남편이 한국을 방문했다면, 8월엔 내가 회사에 휴가를 제출하고 미국으로 놀러 가는 . 그다음 겨울에는 학기를 끝낸 남편이 다시 한국에 오고, 그다음   정기 휴가     놀러 가는 걸로.


오랜 연애 단식 끝에 드디어 만나 데이트를  때면 어찌나 바쁘게 달렸던지, 남편은 지금에서야 말하지만 집에 돌아가면 코피가 나곤 했다고.  역시 기분은 상승곡선을 탔을지라도 체력은 바닥을 찍었다. 2 동안 바짝 몰아서 밀도 깊은 데이트를 하고 나면 또다시 각자의 영역에 서서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연애. (feat. 영상통화와 까톡 메신저, 그리고 국제택배)


서로 데이트를 하려면 자그마치 14시간씩 비행기를 타야 했던 날들


서로의 부재와
서로에게의 몰입이
부단히 선을 넘나드는 관계


한국과 미국 시차는 14시간. (서머타임 적용될 땐 13시간). 내가 퇴근해서  10시가 되면 그는 하루를 시작하는 아침 8였다. 내가 부스스 일어나 몸을 깨울 때면 그는 슬슬 하루를 정리할 늦은 오후가 되어버렸다. 낮과 밤이 바뀐 시차에다가 좀처럼  한번 잡기도 힘든 연애. 장벽이 수두룩하게 많은 장거리 연애, ‘롱디’의 고달픔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하지만 16시간 굶고 고작 8시간 먹을  있는 간헐적 단식 덕분에 디톡스 효과를 누리고 체중 감량 혹은 체중 유지의 이점을 취할  있듯 (암과 당뇨 위험을 줄인다는 연구 결과도 있단다), 간헐적 연애 '덕분' 스민 좋은 에너지도 분명 있으리라. 그러니까 지금 이렇게 '부부' 되고 '부모'   있었겠지.


수개월간 눈에서 멀어졌다가 다시 서로에게 짧고 굵게 몰입하기


올랜도에서 온 남자, 춘천에서 온 여자. 약 2년 간의 간헐적 연애를 마치고 우리는 미국 이곳에서 결혼생활을 꾸려나가고 있다. 남편은 박사 생활을 끝내고 플로리다에서 매사추세츠 주로 날아왔고, 나는 아나운서 생활에 마침표를 찍고 인생 2막 새로운 지평을 열겠다는 근사한 포부를 안고 유학길에 올랐다. 춘천에서 보스턴으로 슝. 이역만리 떨어져 연애를 하다가 우리는 보스턴에서 이렇게 뭉쳤다.


미국 생활도 벌써 2 . 코로나 시국에 싱숭생숭하기는 하지만  사이 똘망똘망 예쁘게 웃는 아기가 태어났고 나는 이제 대학원 마지막 학기만을 남겨두고 있다. (2020년 가을 기준) 간헐적 연애는 이렇게 많은  바꿔놓았다.  누구도 쉽지 않다고 고개를 내저을 법한 험난한 '관계'  공간에서 새로운 이야기를 그려나가고 있다.


학교 종이 땡땡땡.
어서 모이자.
(싫어 싫어)
선생님이 우리를 안 기다리셔.
줌 (Zoom)으로 접속해.
안 기다리셔. 줌으로 접속해.


코로나 시국에 부르는 뉴 노멀 쏭. 학교종이 땡땡땡. 뉴 버전


코로나 위기가 장기전에 접어들면서 화상채팅 앱으로 접속하는 온라인 수업 (Remote Class)하나의 표준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는 시대. 남편은 재택근무를 하고 아들의 소아과 상담을 위해 담당의와 화상채팅으로 상담을 하고 있는 요즘, 수업 발표도 각종 일처리도 원격으로 처리하는  하물며 연애라고 못하겠는가.  노멀 시대, 간헐적 연애,  조금은 특이하고 배고픈 콘셉트가 어쩌면 유행처럼 은근슬쩍 번져나갈 수도 있지 않으려나.


사람 꽉 찬 영화관에서 손잡고 영화관 데이트하지 않아도, 얼굴 맞대고 만석인 맛집에서 밥 한 끼 자주 공유하지 못해도 우리는 마음의 결을 나란히 했고, 결국 같은 길을 가기로 결단했다. 마침내 제3의 공간에서 새로이 만났다.


올랜도에서 온 남자
춘천에서 온 여자


올랜도에서 온 남자
춘천에서 온 여자


간헐적 연애 총론을 차근차근 풀어두려고 한다. 배고픔에 지쳐서 간헐적 단식을 포기해야 하나... 새벽마다 종종 흔들렸듯이,  공백과 짧은 몰입을 반복하는  연애 안에도 지루함과 배고픔, 아니 보고픔자아내는 위기는 분명히 있었으리라. 간헐적 연애 따윈 절대 못한다는 정반대의 부류에게는 '아니,  이런 연애가  있나'에서 빚어지는 호기심을 채워줄 거다. 간헐적 연애 비스무레한   하고 있는 닮은 부류에게는 ' 연애 분명히  괜찮습니다' 같은 응원가가   있을 것이고. 독자가 어느 쪽이 되었든 페이지를 넘기는 매 순간이  간질간질한 기다림이 되어주기를.


2018년 여름, 보스턴 데이트
2018년 여름, 샌프란시스코 데이트
2017년 여름, 뉴욕 데이트
2017년 여름, 올랜도 데이트
2018년 가을, 춘천 데이트
2018년 봄, 서울 데이트
간헐적 연애, 롱디 참 잘하는 애들. 궁금하다면 다음 편도 이어 보기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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