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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사임당 Sep 25. 2020

이 밤이 좋았다.  

답답한 것이 조금은 내려 가는 듯이

나는 내가 에너지가 많은 사람이라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나의 사람들에게 계속 좋은 에너지를 주고 싶었다. 그도 그럴 것이 별로 큰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스트레스 거부형의 조금은 만사태평의 마인드를 장착하고 있어서인지 하루 하루 사는 것이 좋고 즐거웠다. 동그라미를 채우고 오늘 하루를 정리할 때마다, 정말이지 충만함을 느꼈다. 스스로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 조금 잘 안되더라도 노력해서 그런대로 새로운 결과물을 만드는 것이 즐거웠고, 그것을 공유하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해볼 것을 권유할 때 행복했다. 하지만 모든 것의 시작되는 순간과 그것이 지속되는 때에는 마음이 달랐다. 계속 하다보면 조금씩 지루했고 새롭게 알게되거나 발전하는 느낌이 더딜 때, 또 나보다 훨씬 더 멋지게 잘 해내는 뛰어난 선구자를 만나면 지금껏 내 노력이 너무도 작고 하찮게 느껴졌다.(나만 그런가?)


just give it a try!



결국 지난 겨울에 만난 이 문장 하나가 여러 기회를 스스로 잡게 했다.


"~ 한번 해볼래요?" 라는 물음에 덥썩,


"네 알겠습니다. 제가 한번 해보겠습니다." 라는 대답이 왜이리 겁없이 또 그렇게 쉽게 나오는 것인

그러나 할 수 있으리란 겁없던 자신감은 이내 서서히 조급함과 다급함으로 바뀌었다. 오늘은 우리 부서에 배정된 예산을 정리해서 어떻게 집행할지 다시 재정비 해야했고, 넓은 안목으로 여러 부서와 협의하고 조율해서 보다 합리적으로 쓰이게끔 여러 동료들과 소통해야 했다.

또 1학기처럼 2학기에도 3학년은 대면수업일거라고 예상했지만 2주간, 또 더하여 2주간을 더 원격수업 준비를 한다. 처음에는 참 재밌었고 또 더 열심히 하고 싶었고 아이들이 만들어내는 결과물에 행복했다. 그런데 2주의 원격 수업이 끝나고 아이들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생활패턴이 엉망이 되어 개학 초기 대면수업 분위기와 다른 피곤함 가득한 교실을 느끼고 나니 금요일임에도 마음이 더 피곤했다. 6교시를 마치고 정신없이 업무를 처리하고, 다음주 원격 수업을 준비하기 위해 노트북을 챙겨 교육청 협의회에 갔다. 나도 잘하지는 못하지만 내 수업의 시행착오를 한번 나누어보겠다는 마음으로 참여한 지역교육청 원격수업지원단, 다행히 같은 학교 좋아하는 후배 교사님과 함께 하게 되어서 협의가 끝나고 둘이서 카페에 앉아 원격 수업에 관한 다양한 고민을 나누었고, 이야기 속에서 우리가 컨설팅 시간에 펼쳐갈 방향을 어렵게 찾을 수 있었다.





오랫만에 여유로운 금요일 밤, 물론 아이들이 학원을 마치고 돌아와 집에 와 있을 시각이 가까웠고 남편 퇴근 시간은 멀었지만 이렇게 대화가 잘 통하는데 그냥 집에 가기는 아쉬웠다. 그래서 집 근처에서 더 이야기로 하기로 했다. 다른 후배 한 명에게도 전화를 했다. 정해진 시각은 9시까지, 아무도 없는 공간을 찾아 우리는 열심히 이야기 했고 신데렐라처럼 헤어졌다. 나만 열심히 한다고해서 잘 되는 것이 아니었다. 전체가 잘 되기 위해서는 알게된 좋은 것을 같이 나누는 것, 거기에 성패가 달린 것 같다. 말 하기를 좋아하기 때문에 사실 수다는 조금 걱정스럽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이런 수다의 시간이 좋은 이유는 이렇게 그간의 혼자서 끙끙하며 속앓이하던 것이 한 순간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기도 하고 무겁고 어렵게 느껴지던 것이 가벼운 깃털처럼 그리 걱정할 것 없는 것것 처럼 쉽게 느껴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오늘 밤의 시간과 분위기를 함께 나누어 준 J와 H에게 고맙다.



몇 문장 안되는 1:1 Voice care가 조금 어렵다 토로하고 있었는데 20분씩 6회 원어민과 전화영어를 한다는 그녀, 걷기는 하지만 그 이상의 의욕도 없어지고 있었는데 자신의 화양연화를 보여주며 요가한다는 그녀와 마지막 석달동안 1:1 PT를 진지하게 고민한다는 그녀, 소설을 읽고 자격증을 준비하고 토익 시험도 치를 예정인 싱글라이프를 듣고 있자니 불현듯 나 그 때에 뭘했나 생각이 들더니 결국엔 그 시간 아끼어 다시 연애가 하고 싶었다. (이상하다.) 내일은 주말이니 아이들이 꿈에 그리던 하루를 열심히 살고 일요일엔 학교에 아이들을 위해 수업 찍으러 학교에 가야겠다.



아무 사람 없는 빈 테이블에 흘러나오는 분위기 가득한 선곡도 좋았고 열린 창에서 불어오는 밤바람도 딱 좋았고 한 번 마시면 고래처럼 한도 끝도 없이 먹는 내가 생맥 2잔, 모히또 한 잔에서 딱 멈춰 집으로 온 것도 딱 적당했다. 무엇보다 우리끼리 속닥하게 여러 이야기해서 너무 좋았다. 출근하는 주 5일 중에 연속 3일을 이런 저런 이유로 늦게 온 남편에게 금요일 밤 없던 선약을 만들어 충만한 나의 시간으로 만든 것이 고소하기도 하고 행복하기도 하고 아무튼 좋았다. 오늘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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