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나를 그리는가? 캐리커처에 갇히지 않을 권리

단요의 소설 <캐리커처> 서평, 다문화 현실이 던지는 불편한 질문

by 서사임당

단요 작가의 장편소설 <캐리커쳐>는 오늘날 한국 사회, 특히 고등학교 교실이 직면한 다문화 현실의 민낯을 섬세하면서도 신랄하게 묘사한 작품이다. 스리랑카 출신 어머니를 둔 고등학생 주현은 강한 자존심으로 따돌림과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어린 시절 친구 승윤이 유학에서 돌아오자 미묘한 학내 권력 구도를 체감한다. '호주'와 달리 '동남아'가 멸시의 뉘앙스를 품는 사회 속에서, 주현은 자신이 갇힐 사회적 '캐리커처'와 온전한 자신을 찾아 고독하게 방황한다. 변화하는 한국 사회에서 10대들이 마주한 차별의 현실과 복합적인 정체성의 혼란을 예리하게 진단하는 작품이다.


단요 <캐리커처> (창비) 2025

소설의 제목이자 핵심 은유인 '캐리커처'는 단순한 인물 묘사를 넘어 시대의 사상과 개념을 과장하고 왜곡하여 풍자하는 장르의 특성이 있다. 작가는 이 제목을 통해 다문화 학생들이 겪는 본질적인 고통이 그들의 '차이'가 아닌, 사회적 편견과 제도적 시선에 의해 그들의 정체성이 '왜곡된 초상'으로 축소되는 '차별'의 과정에 있음을 드러낸다. 이 주제는 소설 속 인물의 해설을 통해 가장 압축적으로 드러난다. "내가 생각하기에 어딘가에 온전히 소속된다는 것은 캐리커처에 갇히지 않을 권리를 가지는 것이다."(P. 81) 이 문장은 소속감의 정의를 새롭게 재단한다. 진정한 소속은 타인에 의해 규정된 획일적인 이미지나 역할로부터의 자유를 지니며 온전한 자기 자신으로 존재할 권리에서 비롯된다는 표현한다.


소설과 현실 속의 다문화 학생들은 입시 제도나 학교생활 속에서 사회가 요구하는 '다문화 학생'이라는 기능적인 캐리커처 속에 자신을 가두도록 강요받는 현실에 살고 있다. 이러한 캐리커처는 청소년들의 내면에 깊은 회의와 고독을 남긴다. 소설은 그들이 사회로부터 받는 무언의 속삭임을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우리가 아무리 가까워지더라도 너한테 허락된 배역은 이것이고, 네가 넘어올 수 있는 선은 딱 여기까지라며 세상 전체가 조용히 속삭이는 듯한 느낌이."(P. 82) 세상이 조용히 속삭이는 이 '선'과 '배역'은 다문화 구성원이 한국 사회의 중심부로 진입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 무형의 장벽이자 구조적 차별이 있음을 보여준다. 결국 이 벽 앞에서 청소년들은 근원적인 질문에 봉착한다. “내가 나라는 이유만으로 반겨 줄 사람이 어딘가에 있을까?”(P. 82) 이는 단순히 개인의 외로움이 아닌, 동질성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한국 사회에서 겪는 다문화학생의 정체성 혼란과 불안을 내뱉는 문장이 아닐까?


또한 소설은 학교 현장의 민감한 부분을 날카롭게 지적한다. "돌봄이란 타인의 상처를 건드리지 않는 일이고 욕설은 그 반대라서, 다문화 교육을 열심히 들은 녀석일수록 어떤 식으로 타인의 상처를 건드려야 가장 효과적일지를 잘 알았다."(P. 22) 타인의 상처와 취약성에 대해 더 깊이 이해하는 사람이 오히려 가장 효과적인 '무기'로 차별과 괴롭힘을 정교화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는 교육이 형식적인 '돌봄'에만 머물러서는 안 되며, 근원적인 혐오의 감정과 비인간화의 언어를 해체하는 심층적인 접근이 필요함을 강력히 시사한다. 하지만 그러한 교육은 한없이 어렵다.


내가 근무하는 학교 현장에서도 전체 600여 명의 재학생 중 다문화 학생의 비율이 10% 이상 웃돈다. 현재의 다문화 학생들이 20~30대 성인 세대로 유입될 때, 그들은 학창 시절 겪었던 따돌림과 차별의 경험을 바탕으로 정체성의 혼란과 피해의식이라는 무거운 짐을 지고 사회에 나오게 될 것이다. 소설이 그려낸 왜곡된 정체성(캐리커처) 에 갇히는 경험은 성인기의 사회적 참여와 통합에 심각한 걸림돌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캐리커처>는 오늘날 청소년들에게 자신의 정체성을 성찰할 기회를 제공하는 동시에, 기성세대와 학교 현장에는 미래 한국 사회의 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한 명확한 경고등을 켜는 작품이라는 의미가 있다.


“엄마는 가끔 이렇게 중얼거린다. 자기는 힘든 일이 많았던 사람이라고, 그래서 이것도 문제고 저것도 문제라고 생각하기 시작하면 견딜 수가 없다고,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믿어야 한다고.” 주현은 계속해서 묻는다. 정말 좋은 게 좋은 걸까? 그는 수소 원자 두 개와 산소 원자 한 개가 만나 물 분자를 이루듯이, 불완전한 조각들이 엉키고 섞이면서 새로이 완성되는 삶도 있다고 말하며, 다른 사람들이 과거를 자기 세상의 일부로 여기는 감각이 자신에게는 미스터리였다고 고백한다.




이 소설이 학교 현장에 주는 시사점을 생각해 본다. 교육은 단순히 다문화 정책이 지향하는 '적응'을 돕는 것을 넘어, 소설이 말하는 '캐리커처에 갇히지 않을 권리'를 옹호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즉, 타인의 정체성을 단순화하고 이용하려는 사회적 압력에 저항하고, 복합적인 자아를 온전히 인정하며, 혐오의 언어가 상처를 건드리는 도구가 되지 않도록 공감적 중재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교육 현장에 있는 교사로서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 역사를 가르치는 내 수업 속의 말들이 본의 아닌 상처의 도구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역사적 문학 작품 탐구 및 발표하기 수행평가 이후 담당 교사가 학교생활기록부에 최선을 다한 기록 또한 당사자에게는 생각의 파도를 일으키는 것을 보면서. 그 누구와 함께 어울리는 것이 무척이나 어려워지는 작금의 교실의 보면서.


TCK(태어난 나라와 성장한 나라의 문화를 모두 수용하는 이들을 제3문화 아이들) 당사자들을 위한 좀 더 적극적으로 미워하고 두려워하는 이야기 <캐리커처>는 작가의 바람대로 모든 독자에게 묵직한 고민으로 다가온다. 소설 속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저마다의 선택이겠으나 우리의 현실 속 '관계'와 '고리'를 제대로 들여다볼 수 있게 하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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