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티지 향수 리뷰
우비강 푸제르 로열 역시 현재 쓰이는 푸제르 혹은 아로마틱 푸제르 계열의 시초가 되는 중요한 향수다. 푸제르가 무슨 뜻인지 모르는 독자들을 위해 푸제르가 뭐를 뜻하는지에 대한 설명을 적은 글을 링크해 놓겠다.
https://brunch.co.kr/@abaded695fd0401/5
코티 시프레 병과 달리, 내가 소장한 우비강의 푸제르 로열 병의 경우 몇년도에 만들어진 것인지 확실하지 않았다. 그러나 해외 최대 향수 커뮤니티인 베이스노츠에서 물어본 결과, 30년대에 나온 다른 우비강의 병과 유사하게 생겼다는 답변을 받았다. 때문에, 아마도 내가 소유한 병은 30년대 병, 혹은 그 전후일 가능성이 높다.
우비강 푸제르 로열의 경우, 50년대에 단종되었다가 2010년에 다시 재출시되어 지금까지 팔리고 있다. 대략 아래와 같이 생겼으며, 오 드 퍼퓸과 퍼퓸 엑스트레 버젼이 있다. 현재 버젼이 빈티지 버젼과 어떻게 다른지 개인적으로는 현재 버젼을 소장하거나 맡아본적이 없어 모르지만, 온라인 리뷰에 따르면 현재 버젼은 깊이감이 부족하고 더 플로럴하며 우디한 베이스노트가 너무 인조적인 향을 낸다고 한다.
먼저, 빈티지 푸제르 로열은 매물이 거의 없다. 퍼퓸 엑스트레 버젼을 딱 한번 본적이 있는데, 당시에 경매형태였고, 굉장히 고가에 팔려서 구하는 것에 실패하였다. 내가 가진 것은 오 드 코롱 버젼이다. 그러나 이 당시에는 오 드 코롱도 굉장히 지속력이 강한 경우가 많고, 다행히 내가 가진 푸제르 로열의 경우 그러한 경향성을 보였다.
시향지에서는 라벤더향으로 출발하는데, 라벤더는 경우에 따라 거의 카라멜과 비슷한, 달콤한 향이 나는 경우도 있고, 허브함을 마음껏 드러내며 쑥과 흡사한 향이 나는 경우도 있다. 시향지에서는 놀랍게도 아주 달콤하고 사탕같은, 달달한 라벤더 향이 났다. 이 달콤한 향이 무언가 그린한 느낌과 섞이며 너무 과하게 달지 않게 해주었다. 3분 후, 라벤더 향은 조금 더 그린하고 비누같은 향이 나기 시작했는데, 그렇다고 달콤함을 완전히 잃은 것은 아니고, 좀 더 깨끗하고 밝고 맑은 느낌을 전해왔다. 10분 후 라벤더가 남은 채로 로 통카빈과 바닐라의 달콤한 느낌과 함께 다소 플로럴하면서도 그린한 제라늄 향이 살짝 났는데, 13분 후에도 이 프레쉬한 느낌이 지속되었다. 이후 통카빈과 바닐라향이 좀 더 많은 지분을 차지하며 부드럽고 깊이감이 있는 느낌, 좀 더 풍성하고 따스한 느낌을 주기 시작했는데, 여기서 중요한 점은 1시간 45분 정도가 지나자 오크모스 향이 솔솔 풍기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오크모스 향이 지속적으로 나다가 대략 6시간 후에는 오크모스향과 소량의 애니멀릭한 향의 결합으로 이어졌는데, 이 상태에서 계속 크게 변화하지 않고, 20시간 정도 후에 사라졌다.
피부에서도 라벤더향이 제일 먼저 나기 시작했는데, 여기에서 시향지와의 가장 큰 차이점이라면 시향지는 달콤하고 카라멜 사탕같은 라벤더향이 주가 되었다면 피부에서는 좀 더 허브하고 그린한 라벤더가 주가 되었다는 느낌이다. 달콤함이 살짝 느껴지긴 했으나 어딜 봐서도 이 라벤더는 훨씬 날카롭고 말린 라벤더가 연상되는 느낌에 더 가까웠다. 1분이 지나자 라벤더가 조금 더 달콤해졌으나 날카롭고 허브한 느낌을 잃진 않았고, 2분 뒤 라벤더는 달콤한 느낌과 허브함이 어우러지는 와중에 라벤더의 다소 비누향같은 느낌도 섞이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5분 후, 라벤더는 흔적만 남아있고 주는 통카빈과 바닐라의 달콤한 묵직함이 되어버렸다. 7분 후 헬리오트로프향이 섞이며 향에 파우더리함을 더했는데, 11분 후에는 머스크, 합성 머스크가 아닌 자연에서 추출한 머스크향이 아주 소량의 오크모스와 함께 섞이며 향을 더 묵직한 방향으로 가지고 갔다. 20분 후 향은 엄청나게 애니멀릭하게 변하기 시작했으나 아주 소량의 라벤더가 남아있었다. 1시간 후에 피부에서는 통카빈과 바닐라와 머스크향이 주가 된다. 1시간 45분 후에는 살짝 오크모스향이 났으나, 대략 2시간 후에는 오크모스가 사라지고 통카빈과 바닐라와 머스크가, 3시간 10분 후에는 통카빈과 바닐라향이 주가 되어 이 상태에서 크게 변하지 않고 있다가 16시간 후에 사라졌다.
우비강은 한국에서 비교적 알려지지 않았던 향수 브랜드 중 하나이지만, 1775년에 세워진 후 아주 길고 멋진 역사를 가지고 있다. 나폴레옹 1세, 나폴레옹 3세, 러시아의 알렉산드르 3세, 빅토리아 여왕 등 많은 유럽 왕가에 향수를 진상하였으며, 또한 합성 쿠마린의 발견으로 처음으로 합성향을 발견한 브랜드이기도 하다. 푸제르 로열 외에 또 유명한 빈티지 향수로는 1912년의 껠끄 플뢰르가 있는데, 이 향은 플로럴향에서, 한 꽃향에 집중하거나 허브, 다른 에센스등을 꽃향과 섞은게 아닌, 여러 꽃향을 섞은 첫 플로럴 부케라고 불리기도 한다(우비강의 르 파팡 이데알이 첫 플로럴 부케라고 주장하는 경우도 있다).
개인적으로 푸제르 로열을 처음 맡았을 때, 나는 현재 나오는 많은 푸제르 계열 향수보다 좋다고 느꼈다. 현재의 많은 푸제르 계열 향수들이 한국에서 소위 "아저씨 스킨 냄새"라고 불리는 저주에 사로잡혀 좋은 평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흔하다. 특히 허브함을 강조한 경우 더욱 그런 저주에 걸리기 쉬운데, 푸제르 로열 같은 경우는 그런 느낌보다는 좀 더 세련되고, 그럼에도 동시에 굉장히 클래식한 느낌이 났다. 더 부드럽고, 따스한 느낌을 주는 향이어서 그랬을 수도 있을 것 같다. 내 경우엔 물론 피부에서 나는 향도 굉장히 좋았지만, 주관적으로 따지자면 시향지에서 오크모스 향이 좀 더 났는데, 이게 향의 구조 및 향의 전체적인 느낌을 좀 더 굳건하게 잡아주는 느낌이어서 시향지에서 나는 향을 좀 더 선호하였다. 70, 80년대 향이 당시 남성성을 구성하던 여러 가치의 강렬함을 좀 더 고함지르듯 표명하는 느낌이었다면, 푸제르 로열은 훨씬 더 다정하고, 인간적이고, 따뜻한 향이다.
이 향은 오랜 시간동안 "남성성"의 정수로 여겨졌고, 푸제르 계열 자체가 주로 남성들을 타겟으로 한 향수에 많이 쓰이기 때문에 남성들만 써야 한다는 생각이 들 수 있지만, 겔랑의 역사만 봐도 남성들이 여성용으로 나온 향수를, 또 여성들이 남성용으로 나온 향수를 뿌리는 경우는 굉장히 흔했다. 내가 향이 좋다는데 성별이 무슨 상관이랴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