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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만석 Oct 07. 2021

‘옛 맛’을 찾아서


‘맛’은 온전히 주관적이다. 그런데 기호식품으로 가면 좀 더 심해진다. 자주 마시는 커피도 마찬가지다. “이 커피의 맛은 어떠한가?” 지금도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쉽지 않다. 하여간, 땀과 정성의 산물이라 하니, 음미하지도 않고 그냥 마실 수는 없지 않은가. 


그래서 최근에야 ‘나만의 기준’을 정했다. 그리고 어디서 어떤 커피나 차를 마시더라도 이 기준을 적용한다. 바로 ‘내 몸의 반응’이다.  


초등학교 봄 운동회 때인가? 어느 잔치 집인가, 큰 솥에서 퍼주는 멸치 향이 가득한 육수, 미리 삶아 말아둔 소면 한 덩어리, 그리고 양념장 한 숟가락. 이것이 전부였던 ‘잔치 국수’의  ‘옛 맛’에 대한 아스라한 기억이 그것이다. 내 몸은 아직도 그 ‘옛 맛’에 반응한다. 생각만으로도 ‘침샘’이 절로 작동하니 그렇다. 그래서 커피나 차에 대한 맛의 평가기준도 ‘침샘’의 작동 여부로 정했다.  


사실 그 ‘옛 맛’을 만날 기대를 걸고, 전국 각지, 보이는 잔치 국숫집 여기저기를 기웃거려봤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아니다. 아마도 상상 속의 맛이니 그럴 거다. 지금은 당시 상상치도 못했던 맛있는 음식이 얼마나 많아졌는가. 그간 간사한 내 혀도 많이 변했을 것이고, 언제나 배가 고팠던 어린 시절이니, ‘잔치 국수’ 멸치 향에 내 코도 얼마나 강렬했겠는가.  


그럼 그 ‘옛 맛’의 탐구를 포기해야 하나? 남은 하나의 선택이 있다. 직접 만들어 ‘옛 맛’에 근접해 가는 방법이다. 3년 전쯤부터는 집사람에게 부탁하여, 가성비를 무시한 육수(표고, 양파, 대파 등에 멸치를 양껏 넣고)로 ‘옛 맛“ 재현을 시도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여전히 2% 부족이었다. 상상과 현실의 괴리니 어쩌겠나.  


그러다 언제부터인가 육수에 된장을 넣으면 어떤 맛이 되겠나 하는 궁금증도 생겼다. 이름 하여 ‘된장 잔치국수’다. 된장을 좋아하면 좋다. 우연히도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갔다. 시골 텃밭에서 수확하여 만든 ‘절임 청양고추’ 한 조각을 올려서 먹어봤다. 


‘침샘’이 완전 가동되는 것이 아닌가. 이런 걸 두고 궁합이 딱 맞는다고 해야겠다. ‘옛 맛’의 재현(?)을 넘어섰다. 새로운 맛으로 접어들었다. 역시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다. 


점점 발전하여, 육수가 없더라도 멸치가 들어간 국거리(된장국, 김치찌개 등)만 있으면, 이를 육수 삼아 잔치국수를 만들어 먹는다. 맛이 어떠냐고요? ‘절임 청양고추’가 10% 부족도 채워주니, 질리지 않는 나만의 별식이 되었다.


그러고 보니 나의 ‘침샘’을 철저히 자극하는 ‘절임 청양고추’에 대한 이야기가 빠졌다. 잔치국수를 좋아하는 ‘동지’들을 위해서도 혼자만 즐길 ‘노하우(?)’가 아니다. 수년 전부터 시골 텃밭에 병충해에 강한 청양고추를 열댓 그루 심었다. 그런데 문제는 수확량이 만만찮다는 것이다. 주위 분들에게 나누어 주기도 하고, 냉동실에 비축도 해보았지만 보관과 소비가 녹녹지 않았다. 그래서 궁리해낸 것이 간장에 절임 하는 방법이다. 청양고추를 찐 다음 가위로 적당한 크기로 동강동강 자른 후 ‘맛 간장’과 함께 유리용기에 담아 두는 방법이다. 


그런데 진짜 ‘노하우(?)’는 특별히 만든 ‘맛 간장’이다. ‘간장, 멸치 액적, 매실액’의 적당한 조합을 끓여서 만들었다고 한다. ‘매콤 + 짭짤 + 달콤’한 맛이 언제나 ‘침샘’을 자극한다. 작은 유리용기에 많은 청양고추를 넣을 수 있고, 한해 정도 보관은 문제없다. 


요즘처럼 위험한 세월에는 조심조심 또 조심이 최고다. 험한 세상에 ‘노자’ 영감처럼 뒷산, 책, 영화. 음악, 스마트폰을 벗 삼아 빈 시간을 메꾸어 나간지도 꽤 오래되었다. 언제나 그렇듯 ‘처음이 있으면 끝이 있게 마련이다. 그리고 시간이 해결해 준다.’ 

그러나, 그때까지라도 이런 ‘침샘’을 자극하는 ‘자신만의 별식’이라도 있으면 더 좋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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