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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만석 Sep 20. 2021

주말 농부의 ‘게으른 농사기술(?)’

주말 농부. 퇴직 후 스스로 택한 게으른 직업(?) 중 하나다. 토·일요일 중 하루는 이 직업에 충실하려고 노력한다. 벌써 6년째다. 어깨너머로 배우기도 하고, 울산농업기술센터 후배들에게 물어보기도 하고, 농촌진흥청 사이버 강의를 들어 보기도 하고, 인터넷을 뒤져 이런저런 관심 가는 작물의 농사 지식도 습득하였다. 정보가 넘치는 세상에서는 ‘흥미’야 말로 지식의 문을 여는 ‘열쇠’다.


뭐, 거창한 것 같지만 실은 15평 정도의 텃밭이다. 충남에 있는 처갓집 뒤 켠 공터 중 일부를 불하(?) 받아 농사일을 해왔다. ‘백문(百聞)이 불여일견(不如一見)이요 백견(百見)이 불여일행(不如一行) (백번 물어보는 것이 한번 보는 것보다 못하고, 백번 보는 것이 한번 행하는 것보다 못하다)이라.’ 문외한들에게 꽤 ‘유식한 척’ 해도 먹히는 이유다.   


텃밭을 해본 사람은 안다. ‘넘어야 할 조건’들이 만만찮다. 외톨이로는 곤란하다. 가족이 공감해줄 분위기가 아니면 수확물 처리조차 어렵게 된다. 그런 면에서 처가 쪽에 텃밭을 두는 것이 유리하다. 한 시간 정도니 딱 좋다. 가는 길이 여행스럽다. 커피 마시는 운치도 즐기고, 요즘은 서해바다를 바라보며 어린 손녀들과 준비한 도시락을 먹는 맛이 여간 쏠쏠하지 않다.   


게으른 농사기술 1. 주말농사의 포인트는 안심하고 먹을 ‘친환경’ 재배다. 그러니 벌레들의 공격은 잘 방어할 수 있는 품종 선택이 중요하다. 그래야 먹을 게 남는다. 떼로 공격당하면 사실상 속수무책이다.


금년 봄에도 유기농 비료를 텃밭에 미리 듬뿍 주어서 면역보강 작업부터 시작했다. 매년 그러하듯 벌레들이 좋아하지 않을 품종을 택했다. ‘상추’가 대표다. 4월에 15평 텃밭을 5 등분하고, 이중 2등분에 ‘상추’씨를 심었다. 1곳은 ‘아욱’과 ‘들깨’ 등에 할당하였다. 5월에는 남은 2등분에 두 줄로 고추 열댓 개를 심었다. 한 줄은 매운 ‘청양고추’, 나머지 한 줄에는 맵지 않는 ‘가지 고추’를 심고, 밭 가장자리 둘레에는 ‘가지 나무’ 열댓 개를 한 줄로 심었다.  


게으른 농사기술 2. 관리와 수확 시간 단축 기술이다. 먼저 잡초에 대한 인식전환이 필요하다. ‘참비름’처럼 먹을 수 있는 잡초는 남기고 먹을 수 없는 잡초 뿌리만 낫 끝으로 콕콕 찍어 제거하는 방법을 택했다. 참비름도 맛있는 나물이 된다. 묘하게도 사람이 좋아하는 것은 벌레도 좋아한다. 참비름은 벌레의 떼 공격을 분산시키는 하나의 방편도 된다.


그다음은 ‘베기. 상추는 어른 중지 2 정도 자라면 ‘솎기 ‘ 따기대신 ‘베기 택했다. 중요한 것은 아랫동을 2cm 정도 남기도 칼이나 낫으로 윗부분만 베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수확이 신속한 반면 다듬는 수고가 필요 없다. 그대로 비닐봉지에 담아 냉장고에 넣어 두면   내내 싱싱하게 먹을  있다. 부드럽고 깊은 맛이 있다고들 하니 주변의 선물로도 그만이다. 그리고 너무 조밀하다 싶으면 ‘베기  ‘아 내기 가면 된다. 신기하게도 강한 놈은 베어주면 두셋 포기로 분화된다. 수회에 걸친 수확에도 여전히 먹을게 남는다. 열무도 그렇고 아욱도 어느 정도 자라면 수차례에 걸쳐 ‘베기기술을 이용하여 국거리 나물로 먹을  있다.   


‘청양고추’나 ‘가지고추’는 수확이 많은 반면, 벌레가 적다. ‘청양고추’는 저장성이 좋아 냉동해 두면 겨울 내내 먹을 수 있다. ‘가지고추’는 ‘청양고추’ 옆이라서 그런지 약간은 달고 매운맛이 있어 좋다. 금년에는 가지고추의 맛이 유별나서 주변 분들이 누구나 좋아하는 인기품목으로 자리 잡았다. 텃밭 둘레에 심은 ‘가지’는 봄부터 가을까지 쉬지 않고 열린다. 이것 또한 최고의 식재료로 손색없다. 9월 말에는 ‘열무’를 최대한 많이 심을 계획이다. 가을 채소로도 훌륭하지만 삶아서 냉동 보관하니 겨울철 최고의 먹거리가 된다.


너무나 게을러 제대로 된 농사꾼이 되긴 글렀다. 그래도 싱싱한 채소를 매주 먹을 수 있으니 좋다. 오늘도 나의 이 ‘게으른 농사기술’에 더 발전시킬 무엇이 있는지 생각하면서 빙그레 웃는다.    


이만하면, 모 방송의 인기 프로인 ‘자연인’과 다를 바 없지 않은가. ‘화합’과 ‘상생’은 소멸되고 ‘분리’와 ‘대결’만 난무하였던 춘추전국시대를 보낸 ‘노자’처럼, 주말 하루라도 아예 세상을 등지고 ‘무위자연(無爲自然)’하며 ‘게으른 주말농부’로 보내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다. 코로나로 어수선한 세상의 피난처로도 안성맞춤이다.


자연은 화살처럼 흐른다. 두릅, 엄나무순, 참죽나무순과 같은 봄나물이나 부드러운 어린 상추의 향긋 함이 아직도 입안에 가득한데 벌써 몸은 가을의 문턱에서 스산함을 느낀다. 가을 농사는 아차 하면 때를 놓치니 ‘게으른 주말농부’도 점점 궁리만 많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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