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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만석 Sep 15. 2021

쌀벌레의 선물

시골에서 갓 도정해온 쌀은 밥맛이 조금 다르다. ‘차별성’이 느껴진다. 적당한 찰기와 고소한 맛이 살아있다. 수 십 년간 이런 쌀만 고수하다 보니 요놈의 입이 보통 간사해져(?) 버린 게 아니다.  


그런데 하늘의 공평성이 여기도 작용한다. 동전의 양면처럼 장·단점이 붙어있으니 그렇다. 장점은 벌써 설파했던 바이고, 단점은 쌀벌레라는 놈이다. 어디에 있었는지 조건(기온 상승)만 되면 부화해서 꼬물거리기 시작한다. 그리고는 어느새 작은 나방으로 변신해서 여기저기로 날아다니기 시작한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한번 출몰하면 쌀과 무관하게 여기저기에 알을 낳아 자생 번식을 반복한다는 점이다. 이때부터는 통제 불능 상태로 간다.


이놈들로부터 행방되려면 소량을 자주 도정하면 되겠지만, 그럴 수도 없는 노릇이고. 한 2년 전까지 별의별 ‘민간요법(?)’을 다 동원해 보았다. 옹기항아리가 좋다고 하여 여기에 담아 보기도 하고, 특별히 만들었다는 쌀 보관 전용 고가 황토쌀독도 사용해 보기도 하고, 여기에 소금 주머니, 다시마를 얹어 보기도 하고, 사실 추천하는 방법은 거의 다 시도했다.


결과는 전부 실패했다는 점이다. 독한 놈들이다. 이길 수가 없었다. 처음에는 나방에 기급을 하던 집사람도 해가 갈수록 용감해지더니, 기상 후 첫 일이 집안 수색이 돼버렸고, 휴지 등을 이용하여 덥석 덥석 잡는데도 거리낌이 없어졌다. 출몰 량이 많아지니 급기야는 사실상 쌀독을 두는 베란다는 쌀벌레와 공생(?)하는 공간이 되고 말았다.


‘궁즉통(窮則通;궁하면 오히려 통하는 데가 있음)!’ 그래서 궁리 끝에 찾아낸 아이디어가 큼지막한 2리터 ‘생수페트병’을 이용하자는 것이었다. 쌀을 담아두더라도 일단 입구가 좁고 뚜껑을 닫아 두면 산소공급이 차단될 것이다. 자연히 쌀벌레가 부화되기 어려운 환경이 만들어진다. 재활용이니 환경보호에도 딱 맞다. 구입비용도 없다. 그리고 쌀, 콩, 들깨 등 곡물을 저장하게 되면, 자연히 수분 이동이 차단되니 저장성도 좋을 것이다. 또한 크기가 일정한 용기들이니 정리정돈도 용이할 것이다. 장점이 너무 많은 아이디어다.


그런데 실행에 착수하자마자 문제가 생겼다. ‘아이디어의 한계’다. 시중에 판매되는 깔때기를 이용해서는 곡물은 생수병에 담을 수 없다는 사실이 금방 드러났다. 출구가 좁아 조금만 많이 부어도 병목현상이 발생하여 꽉 막혀 버린다. 조금씩 담자니 병 하나 담는 것조차 고행이다. ‘식자우환(識字憂患)’이다. 그러나 좋은 아이디어를 사장시킬 수는 없는 법. 그래서 몇 날 며칠 생각해서 고안해 낸 것이 깔때기의 출구 부를 크게 만들어 아예 ‘생수페트병’ 입구를 감싸게 하고, 내측에 병뚜껑과 같은 나선을 만들어 주자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쌀을 담을 때 병뚜껑 닫듯이 병에 고정시킬 수도 있게 되고, 출구가 넓으니 담는데 수월할 것이다. 그러나 사실 엄청난 ‘복잡 구조 깔때기’가 되어야 한다.  


하여간 얼마 후 이 ‘복잡 구조 깔때기’를 만들어 냈다. 현대 과학의 힘이다. ‘3D 프린트’다.  쌀 한 포대도 쉽게 생수병에 담게 되었다. 드디어 쌀벌레로부터 해방되었음은 물론이다.


그런데 또 다른 문제가 생겼다. 비용이 만만찮게 들어간 ‘3D 복합구조 깔때기’가 떨어지면서 깨져버렸다. 임시방편으로 테이프로 붙이고 접착제로 알뜰히 붙여서 복구는 했지만, 조심스럽기가 상전 모시듯 해야 되니, 이것이야 말로 또 다른 불편이다.


그래서  단계  나아간 ‘복합구조 깔때기 생각해 냈다. 아예 생수병 자체를 재활용하는 방법이다. 생수병 상단 부를 적당한 높이로 잘라서, 입구가 밑으로 가도록 거꾸로 세워 보면 영락없는 깔때기가 된다. 그다음 생수병 마개의 윗부분을 칼로 정교하게 도려낸 다음, 나선형이 있는 원통부에 잘라낸 생수병 입구를 부착시키면, ‘3D 복합구조 깔때기 같아진다. 깔때기를 생수병에 고정시켜보면 입구끼리도 완전히 일치된다. 새어나갈 빈틈이 없다. 그러니 오히려  정교한 ‘페트병 복합구조 깔때기 되었다.


만들어 보시라. 문구용 커트 칼과 접착제만 있으면 언제라도 만들 수 있다. 그리고 쌀과 같은 곡물류는 물론 냉장보관이 필요한 콩 국물과 같은 농도가 높은 액체도 넣어보시라. 깔때기에서 넘치는 법이 없다. 그리고 투명한 생수페트병에 담아두는 것이니 보관이 용이하고, 내용물을 쉽게 구별하고, 양도 알기 쉽다.


그리고 더 큰 발견은 수분 이동이 없으니 쌀을 상당기간 보관해도 적당한 찰기와 고소한 맛이 살아있다는 점이다. 갓 도정한 쌀과 진배없다. 엄청난 덤이다. 쌀벌레에게 감사해야 하나? ‘세상에는 공짜가 없다’는 우주의 법칙은 어디든 작동한다. ‘고생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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