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세상에는 ‘없는 것이 3가지가 있다’는 농담이 있다. ‘정답이 없다.’ ‘공짜가 없다.’ ‘믿을 놈이 없다.’가 그것이다. 긴가민가하지만 그럴듯하기도 하다. 권력이 있고 돈이 많다고 하여 더 건강하게 사는 것도 아니고, TV에 비치는 삶이 순탄치 않은 것만 보아도, 허름한 식당에서 소주에 김치찌개를 즐기는 서민들보다 그들이 더 큰 행복한 것은 아닌 것 같다.
딱 한번 방문했지만 고기나 한 근 사들고 다시 방문하여 싶은 곳이 있다. 울산에서는 인적이 드문 산간오지에 있는 전원형 주택에서 살고 있는 분이다. 집 주변이 소박하지만 깨끗이 정돈되어 있다는 것이 첫인상이었다. 그리고 배울 점이 많다는 것이 두 번째다. 그는 IMF 이전 만해도 울산에서 잘 나가는 건설 회사를 운영했다고 한다. 그런데 IMF가 터지자 연대보증으로 하루아침에 거의 모든 재산을 날려버렸다. 어떠했겠는가? 후회와 미련으로 술이 아니면 정신적 고통을 이길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렇게 지내다가는 폐인이 될 것 같아 15년 전에 울산 시내를 벗어나기로 결심하고 울산에서 가장 오지를 찾아 정착하기로 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약 7년간을 패널 생산 업체와 폐기물 업체에 다니면서 한편으로는 지인들의 도움을 받아 2년에 걸쳐 집을 직접 지으면서 현재의 땅을 개간하였다고 한다.
집 안 밖을 돌아보면, 곳곳에 아이디어가 배어있다. 언덕을 이용하여 토굴(한 여름에도 저온이 유지되니 본인은 석빙고라 부른다)을 만들고 뒷산이나 들에서 채집한 약초로 만든 술과 효소나 된장과 같은 발효 음식을 저장하고 있다. 비닐하우스 내 일부에는 온수 보일러를 깔아놓아 장마철에도 농산물을 건조할 수 있도록 하였다. 각종 채소를 쉽게 말릴 수 있는 철망으로 된 건조대도 보이고, 산에서 나오는 약수도 집으로 직접 흐른다. 집 주위 여기저기에 스피커를 달아놓아 노래를 들으며 일 할 수 있도록 하였고, 자재 창고에는 친구들이 오면 언제든지 고기도 구워 먹을 수 있도록 해 놓았다.
그런데 대단한 것은 이런 시설 대부분이 거의 수집한 폐품을 재활용한 것들이다. 그래서 오히려 값어치가 있어 보인다. 집 주변에는 사과나무를 비롯한 유실수들을 심어 놓고 남는 터에 다른 유실수를 심을 계획도 가지고 있다.
농사일도 쉽게 한다고 한다. 남들이 버리다시피 한 농사용 관리기 3대를 수리하여, 밭고랑을 파고 비닐을 씌우는 것도 혼자서 쉽게 하고, 소형 포클레인도 저가로 불하받아 밭농사와 집 주변 관리에 사용한다고 한다. 산야초 연구를 위해 경주의 모 대학에도 다녔다고 한다. 집안 한구석에는 골프 연습장도 만들어 놓았다.
또 하나 창조적인 농사가 고추다. 심고 관리하는 방식이 특이하다. 고랑 간격이나 묘 목간의 간격이 일반 고추 농가보다는 1.5배 정도 넓다. 같은 밭 면적에 묘 목수가 1/3 정도다. 그렇게 하니 통기가 잘되어서 병충해도 적다고 한다. 대략 500제곱미터(150평)에 200포기를 심고 150근을 생산한다고 하니, 같은 면적에 500포기를 심고 150근을 생산하는 일반 농민과 수확량에 차이가 없다. 그리고 고랑과 고량 사이에는 부직포를 깔고 깨끗이 관리하니 잡초도 예방되고 익은 고추는 가위로 꼭지를 자른 후 모으면 된다. 그러니 가장 힘들다는 고추 따기도 별반 어려움이 없다고 한다. 물론 작업량도 대략 그 비율로 줄어들었다. 부직포는 수년을 계속 사용할 수 있으니 장기적으로 보면 큰 비용이 아니라 한다. 십수 년 전부터 이런 방식으로 고추농사를 하고 있으나 실패가 없었다고 한다. 한 나무에 한 근의 고추를 따는 것이 목표다.
그는 항상 목표를 가지고 연구하는 자세로 살아간다. 폐자재나 폐농기구를 활용하여 쉽게 농사짓는 방법들을 고안하면서 농촌생활을 즐기는 모습이 감탄스럽기만 하다. 지금은 농촌에 제대로 정착하였으니 경제적으로도 거의 부족함이 없고, 좋은 자연환경 속에서 농사를 지으면서 육체나 정신적으로 삶이 더욱 풍요로워졌고, 자녀들도 잘 키웠다고 말한다. 그리고 과거의 건설업을 계속하였다면 절제를 못하는 음주 습관으로 건강을 잃었을 확률이 크다고 호탕하게 이야기하는 것을 보면 이것이 바로 ‘전화위복’이다. 그리고 ‘인생에는 정답이 없다’는 말이 실감 난다.
울산시 두동면 봉계리 내내 마을에서 한참 산기슭으로 올라가서 길 끝 집에 살고 있는 김병필이라는 분의 이야기다. 다시 만나고 싶어지는 이유도 그에게서 항상 새로움을 추구하는 젊음이 느껴졌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