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만석 Oct 18. 2021

난제를 풀어줄 지혜 찾기

‘어디엔가 난제를 풀어줄 지혜는 반듯이 있다.’ 그래서 과거 공자와 같은 성현조차도 답을 얻고자 사방을 헤매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꽤 오래된 경험담이다. 부산 서낙동강 예안천의 이야기다. 큰 강에 수문이 설치된 후 강의 흐름이 느려 지면서 사실상 호수화가 되었다. 흘러드는 개천과 만나는 강의 안쪽은 비가 올 때마다 떠내려 온 토사가 쌓여 펄 층으로 변해갔다. 자연히 개천의 하구부에서 물길이 막히게 되니 어느 정도의 비에도 범람하였고 인근 농경지가 침수 되었다. 주민들의 원성은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그런데 왜 정부와 지자체는 십수년째 방치하고 있었을까? 적정한 공법을 찾아내지 못했다는 것이 일차 원인일 것이다. 일반 설계용역회사에 의뢰하면 아마도 통상적인 답은 금방 나올 것이다. 강 내부로 진입하는 수십 미터의 가설 도로나 교량을 만든 다음 굴착 장비를 투입하여 수로를 만들자고 할 것이다. 그러나 수로 굴착이라는 단순한 공사에 장기간에 걸쳐 많은 예산이 투입하는 방법은 정답과는 거리가 멀다. ‘지식’의 한계다.


그러니 지역 주민의 원성이 대단하여 수차례 방문해 보았지만 이를 해결할 마땅한 공법이 없을 것 같다는 것이 중론이었다. 그리고 강과 개천을 관리하는 소관 지자체가 다르다는 점도 해결을 차일피일 미뤄져 왔던 다른 원인이기도 하였다.    


우선 해결의 실마리는 ‘저비용의 신뢰할 수 있는 지혜로운 공법’을 찾아내는 것이다. 펄 층이니 무거운 굴착장비가 직접 들어가는 것도 불가능하고, 물이 없으니 배도 들어갈 수 없다. 사람을 동원해도 불가능은 마찬가지다. 묘안은 무엇인가? 십수년을 고민해도 답을 얻지 못했으니, 쉽지 않겠지. 이럴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상의 방법은 무엇이겠는가. 바로, ‘널리 물어보는 것’이다.


공자도 시골 아낙네에게 물어서 답을 얻었다. 공자천주(孔子穿珠) 이야기다. ‘공자가 진나라에서 구멍이 안에서 아홉 번이나 휘어지는 희한한 구슬을 얻게 되었다. 하지만 아무리 실을 꿰려고 해도 되지 않았다. 그래서 바느질하는 여자들이 잘 알 것 같아 뽕밭에 있는 아낙네에게 물었다. 아낙네가 ’찬찬히(密) 생각해 보자’고 한 말을 듣고 불현듯 답을 찾았다. 곧 ‘찬찬히(密(밀))’ 라는 말을 듣고 발음이 같은 ‘꿀(蜜(밀))’을 떠올렸다. 결국 허리에 실을 맨 개미를 꿀이 발라진 반대편 구멍으로 나오게 하여 구슬에 실을 꿰었다’고 한다.


우선 전국 방방곡곡에 문의하여 펄에서 공사한 경험이 있는 기술자를 찾아보는 데서 출발하였다. 굴착장비 협회를 통하여 전국 기사들에게도 백방으로 문의하도록 하였다.  결과, 마침내 넓은 철판  장을 이용하여 포클레인으로 수로를 굴착하였던 경험자를 찾아냈다. 방법은 이렇다. 포클레인이  넓은 철판  장을 연달아 진행 방향으로 깔고 앞쪽 철판으로 이동하는 데서 시작한다.( 층의 부력이 충분히 받쳐준다.) 그런 다음 뒤쪽 철판을 진행방향 앞쪽으로 옮기고  자리의  층을 굴착한 다음, 앞쪽 철판으로 포클레인이 이동한다. 이것을 순차적으로 반복하면 된다고 한다. 펄에서 수로를 만드는 아주 단순한 공법이라는 판단이 섰다.


경험이 적더라도 단순함은 잘못 될 리가 없다는 강력한 신뢰를 준다. 단순함의 위대성이다.


공사기간도 한 달에 불과하였고, 공사비도 포크레인 사용료가 주된 비용이었다. 준설공사는 국가하천 총괄관리 차원에서 부산국토청이 공사 인근 현장에 포함하여 시행하였다. 사실 이런 적극적인 행정이 나중에 감사원 감사 때 화를 부르지 않을지 고민도 하면서. 과거 서낙동강으로 연결된 김해시 ‘예안천’의 이야기다. 그 결과 2009년 7월 7일 하루에 200mm가 넘는 집중호우가 내려서 부산시 및 김해시 전 지역에 막대한 피해 발생하였지만, ‘예안천’ 상류지역은 예년과는 달리 침수피해가 전혀 발생하지 않았다.


‘어디엔가 난제를 풀어줄 지혜는 반듯이 있다.’ 지금은 상상치도 못한 과학기술이 보편화 되고, 인터넷이 세상 곳곳에 흩어져 있는 축척된 각종 지혜를 언제든지 연결해주는 시대가 되었다. 그러니 과거에도 그러하였지만 미래에는 ‘많이 아는 자’ 보다는 ‘많이 의문하는 자’가 ‘더 많은 문제 해결능력을 가진 지혜로운 자’가 될 것도 같다.  

이전 14화 ‘공약수와 공배수’를 왜 배워야 하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