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인들 부려보기
사람들의 소박한 꿈은 ‘부자’다. 그럼 옛날 부자들은 어떠했을까. 대가족 제도였으니 식구들도 많았을 것이고, 당연히 집도 여러 칸이나 여러 채였을 것이다. 관계가 지금보다 더 중요하였으니 소위 손님인 식객들도 많았을 것이다. 그러니 음식 장만이나 집안 청소, 빨래 등 잔 일들이 끊임없었을 것이다. 재물의 형태가 대부분 토지였을 것이니 수확하고 관리하는 것도 만만찮았을 것이고, 이동 수단도 말이나 가마였으니 여기에 딸린 하인들도 꽤 있어야 한다. 이러니 부자 집에서 일하는 하인의 숫자가 적지 않았을 것이다.
한 10명 정도는 되었다고 가정해 보자. 그럼 이중에 눈치 빠르고 일 잘하는 하인은 2명 정도이고 나머지는 게으름뱅이나 일하는 척하는 눈치꾼들이었을 것이다. 어떻게 아냐고? 부지런히 움직이는 꿀벌이나 개미의 세계에서도 적용된다는 ‘파레토의 법칙(구성원의 20%가 80%의 성과를 내고 나머지 구성원 80%는 열심히 일하는 척하면서 20%의 성과만 낸다는 법칙이다. 일명 2:8의 법칙이라 한다)’으로 추정하면 그렇다는 이야기다.
이 법칙으로 다시 추정해보면 주인과 하인들 간에 손발이 맞는 부자는 20% 정도이고 나머지 80%는 소위 집안일에 두서가 없었을 것이다. 이런 부자 집에는 잔소리와 짜증과 불만이 끊이지 않았을 것이다. ‘파레토 법칙’에 따라 그나마 주인의 잔소리나 짜증을 수긍하는 20%를 제외한 나머지 80%는 틀림없이 뒤로 돌아서면 욕질을 마다하지 않는 불만 꾼이었을 것이다. 이 정도면 부자 노릇하기도 쉽지 않다. ‘파레토의 법칙’으로 추정하면 현대사회의 많은 ‘기업’에서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우선 집안일을 들여다보자. 힘들고 어렵던 빨래를 하루 종일 시켜도 군소리 없는 하인이 있다(세탁기). 부엌에는 연기 하나 없이 순식간에 맛있게 밥을 지어주기도 하고(오븐, 밥솥), 주인이 조금만 수고하면 집안 구석구석 청소도 해준다(청소기). 전국 어디라도 주인이 가고 싶은 데로 데려가 주기도 한다(자동차). 집안을 밝혀주는 하인, 일어날 시간을 알려주는 하인, 여름에는 시원하게 겨울에는 따뜻하게 해주는 하인,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일을 현장 모습 그대로를 담아서 즉시 알려주는 하인, 집안 곳곳에서 말없이 기다리고 있는 많은 하인들이 시키기만 하면 불평 한마디 없이 열심히 일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 더 잘한다는 하인이 나오면 바꿔 버린다. 사실 여느 가정이나 옛날 부자 집 보다 더 많은 하인을 거느리고 있는 꼴이다. 여기서는 파레토의 법칙도 존재하지 않는다. 주인 하기가 여반장이다.
더구나 인터넷이 장착된 스마트폰과 같은 하인은 세계의 모든 사람들과도 연결도 시켜 주기도 하고, 문화·예술·교육· 전문지식 등 거의 모든 분야에 최고의 전문가들과도 연결해주기도 하고, 세상의 모든 지식을 알려 주기도 한다. 간이 은행과 같은 역할도 하고, 세계 각지의 저렴한 물건이 어디에 있는지도 알려주기도 하고, 심지어는 단숨에 세계의 유명인으로 만들어 주기도 한다. 거의 못하는 것이 없는 만능하인으로 거듭나고 있다. 잘 활용하는 주인을 최강자로 만들어 줄 수도 있는 공개된 비밀병기다.
여기가 끝이 아니다. 주인의 건강상태를 수시로 체크해주고, 관심 있거나 필요로 하는 정보를 따로 수집하여 전달해 주기도 하고, 취향에 맞는 음식이나 기호식품을 알아서 만들어 주기도 하고, 분위기에 맞는 음악도 들려주고, 주인에게 알맞은 방 안의 온도와 습도를 조절해주고, 불빛의 세기도 조절해주는, 그런 하인 들이 등장할 날도 머지않았다. 소위 인공지능, 인터넷, 빅데이터, 사물인터넷, 3D 프린터와 같은 현대 문명이 하인들의 수준을 점점 높이고 있다.
사람의 역할을 대신하는 기계 하인들만 그런 것만이 아니다. 좀 더 색다르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으면, 어딜 급히 가고 싶으면, 무엇을 구입하고 싶으면 전화 한 통화면 끝이다. 금방 대령한다.
어떤가? 우리 모두는 옛 부잣집 ' 나리님’이나 ‘마나님’에 결코 뒤지지 않을 것 같다. 그럼 오늘도 얼마나 많은 하인들이 우리의 시중을 드는지 살펴보자. 일체유심조(一切有心造; 모든 것은 마음이 지어낸다). 그냥 부자가 된 양, 기계 하인들의 묵묵한 시중을 즐기며, '행복한 마음을 만들어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