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만석 Dec 11. 2021

‘천하제일 검(天下第一劍)’

문명의 충격

2016년도 ‘이세돌 구단’과 ‘구글 AI 알파고’가 벌인 세기의 바둑대결 후에 쓴 글입니다. 이젠 그때의 충격은 어디 가고 ‘AI’가 우리에게는 평범하고 자연스러운 단어가 돼버렸습니다. 인간의 한계가 어디까지 일까요. 이 글도 오래 묵어 색깔이 바래버린 그런 글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는 타고난 검객이었다. 뛰어난 두뇌와 날렵한 몸매, 그리고 강인한 체력과 끈기 등 거의 모든 자질을 타고났다. 그리고 20년간, 4천 년 전부터 전해온 최고 경지의 모든 검술을 모조리 습득하였고 독창적인 자신만의 검법도 완성하였다. 칼솜씨가 정확하고 빨랐고 내공의 힘이 강하여, 돌도 자르고 날아오는 화살도 쉽게 막아냈다. 어떤 무기로도 그를 이길 자가 없었으니, 사람들은 그를 ‘천하제일 검(天下第一劍)’이라 불렀다.


그의 명성은 멀리 서방에까지 전해졌다. 어느 날 ‘서방(西方)의 고수(高手)’가 엄청난 상금을 걸고 결투를 신청했다. 결투 조건은 손으로 사용하는 무기로 하되, 서로가 동방과 서방의 최절정 고수이니 만큼 매번의 결투는 상대에게 먼저 작은 상처를 내면 승자가 되는 것으로 하였다. 5판 3승 제로 최종 승자를 가리기로 하였다. 드디어, 천하의 이목이 집중되는 가운데 ‘천하제일 검’과 ‘서방 도전자’가 정면으로 마주 섰다. ‘천하제일 검’이 빠른 동작으로 검술을 전개하는 순간 서방의 도전자는 작지만 이상한 물건으로 공격하였다. 화살도 받아내는 ‘천하제일 검’이었지만, 도전자의 무기는 너무나 강했다. 무기가 날리는 작은 물체는 너무 빨라 막을 수가 없었다. 싸움에서 계속 패하였다. 천하는 경악했다.


‘서방 도전자’의 무기가 빠른 몸놀림에는 허점이 있다는 것을 겨우 알아차린 것은 세 번 진 뒤였다. 얼마나 어려웠으면 그 1승에 천하가 감격하였을까. 결국 5판 3 승제의 결투에서 ‘천하제일 검’이 서방의 고수에게 패하였다. 그가 실력에서 졌나? 아니다. 무기에서 졌다. ‘서방 도전자’의 무기는 말로만 들었던, 활보다 약간 진보된 것인 줄 알았던, ‘총’이라는 신병기였다. 시간에 비례하여 진화할 것이 예상되는 신병기인 ‘총’이 갑자기 공포와 경악의 대상으로 부상하였다.


‘이세돌’과 ‘인공지능 알파고’의 대결을 지켜본 우리들의 놀라움도 ‘검’의 시대에  ‘총’을 접한 사람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 ‘알파고’는 게임을 잘하는 다소 진보한 인공지능 정도로 생각하였던 우리의 예상을 완전히 깨어버린, 신병기였다.


하긴 지나간 세월은 곱씹어보면 놀랄 일이 한두 가지였던가? 처음으로 전기불이 시골마당을 대낮처럼 밝힐 때도, 하늘을 날고 물에 떠있는 쇠 덩어리로 만든 엄청나게 큰 비행기와 배를 처음 보았을 때도, 사람들이 들어있을 것처럼 느껴지는 TV를 처음 보았을 때도, 심지어는 엘리베이터 앞에서 어떻게 올라가는지 몰라 절절 메기도 하고, 울리는 전화기 앞에서 받기가 겁이 나서 벌벌 떨었던 시대도 있었다. 모든 수식을 계산할 수 있는 공학용 계산기를 시험에 사용하라는 교수의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도, 들고 다니면서 이야기하는 신기한 핸드폰을 처음 보았을 때도 그러하였다. 그리고 스마트폰을 사서 여기저기 눌러보기조차 두려워했던 것도 얼마 전 일이다.


그러고 보니 우리는 하루하루 급변하는 문명의 충격 속에서 살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스마트폰이 금방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듯이, 인공지능이 우리의 일상을 지배할 날도 멀지 않을 것 같다. 누가 이런 시대의 변화를 막아낼 수 있겠는가. 그러니 인공지능이 ‘천재의 모습’으로 다가와 소위 ‘머리로 먹고사는 화이트칼라’ 들의 괜찮은 직업마저 빼앗아 갈 수도 있다는 두려운 망상에 지래 겁을 먹고, 궁극적으로는 인류의 존망도 인공지능에 달려 있지는 않나 하는 공포감에 떠는 것 또한 당연하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총을 보고는 총으로 망하고, 대포를 보고는 대포로 망하고, 원자탄을 보고는 원자탄으로 망할 것 같았던 우리의 세상이 그런 공포를 극복하면서 지금도 발전하고 있지 않는가. 감정이 있는 생물체는 ‘길들이지’ 못하면 두려움의 대상이 되겠지만, 감정이 없는 무생물은 경쟁의 대상이 아닌 ‘다루어지는’ 물건일 뿐이다. 모든 적대감과 싸움은 ‘욕심’과 ‘감정’에서 비롯됨을 감안하면, 욕심도 감정도 없는 ‘인공지능’이 무엇 때문에 인간에게 적대감을 가질 것인가. 문제는 결국 ‘인공지능’을 다루는 ‘인간’에게로 귀착된다.


그리고 ‘다룬다’는 관점에서 달리 보자. 이세돌과 같은 고수의 ‘직관’에서 나오는 ‘착점’ 능력과 ‘판단’ 능력이, 알파고와 같은 인공지능의 ‘분석’ 능력을 지원받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도 ‘모든 수’는 소위 결점이 없는 ‘신의 한 수’가 될 것이고, 신들 만이 둘 수 있는 그런 아름다운 기보가 만들어지지 않을까? 바둑에만 국한되는 ‘상상’이 아니다. 그렇게 본다면 미래의 우리 일상을 지배할 인공지능은 우리에게 위협이라기보다는 우리가 하는 일을 최고의 경지로 끌어올릴 수 있는 훌륭한 보조자가 될 가능성이 더 커진다.


그리고 이런 논리가 맞는다면, 우리는 인공지능의 역작용을 걱정할 것이 아니라, 어느 분야에서나 인공지능을 잘 다룰 수 있는 최고의 ‘직관’과 ‘판단력’을 갖춘 ‘인재를 많이 양성하는 것’이 인공지능의 시대를 대비하는 방법이 아닐까? 그래서 그들이 더욱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 수 있도록.

이전 04화 ‘할머니 손맛’의 비밀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