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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만석 Nov 02. 2021

‘할머니 손맛’의 비밀

 하늘이 주신 예외 없는 선물, ‘1만 시간의 법칙.’

어릴 때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 백지에 그려지는 아기의 무의식이 너무나 중요하다는 이야기 일거다. 입맛도 마찬가지다. 어릴 때 입맛도 여든까지 간다.


외할매(우린 ‘할매’라고 불렀다)의 청국장도 그중 하나다. 삶은 콩을 옹기에 담아 뜨뜻한 아래 묵에 두고 이불을 덮어 놓으면, 얼마 안 가 특유의 냄새가 번진다, 천연 숙성한 고급 치즈에서 맡아지는 그런 냄새다. 숟가락으로 퍼 올리면 끈적하게 흘러내리고, 그럼 할매가 한 냄비 끓여준다. 목구멍에 찰 때까지 밥에 말다시피 먹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지금도 침샘이 절로 작동한다.


그래서 그런지 ‘할매’ 들의 음식은 선입감이 좋다. 마당이 넓은 양철집에서 밤새 삶은 각종 부위의 소고기를 푸짐하게 먹었던 현풍에 있는 ‘ㅇㅇ할매집’(80년대 초반 대구-광주간 고속도로 건설사무소 근무 당시)도 그렇다. 조금이라도 남기면 ‘할매’의 꾸지람(정성을 다해 만든 것 남긴다고)을 피할 수 없었던 기억과 함께.

가족이 즐겨갔던 속초에 있는 ‘ㅇㅇㅇ할매 두부’ 집도 그렇고. 지금도 멀리 나가면 ‘할매라는 간판’이 붙은 집이 있나 본다. ‘할매집’은 타고난 손맛이 맛집으로 자리를 잡았을 거니, 보증수표라는 선입감 때문이다.


그런데 언제가 옛날 생각이 나서 ‘oo할매집’을 가봤더니, 할매는 돌아가신 지 오래되었다고 한다. 며느리가 간판을 이어받았지만, 맛을 옛맛 그대다. 갑자기 의문이 생겼다. 그럼‘ oo할매집’의 맛은 당초 한켠에서 고생하던 며느리의 손맛이었나? 아님 손맛이 며느리로 전수되었나? 후자라면, 손맛은 타고난 소질보다 더 중요한 무엇이 있다는 이야기다. 종갓집 종부(집안의 대를 이어가는 종손의 며느리)들의 예를 봐도 그렇고.


최근에 집사람이 할머니가 되고 나서야 의문이 조금 풀렸다. 음식 솜씨는 별로였던 집사람의 경우도 그렇다. 최근에 문득, 내 입맛도 보통이 아닌데( 지방 각지에서 근무하기도 하고 잦은 지방 출장으로 팔도의 맛집은 두루 다녀본 결과) 집밥이 맛있어 진걸 깨달았다. 과거 살아 펄펄하던 미역국도 그렇고, 된장국도 그렇고, 꽃게 장국, 가지무침 등 등 한두 가지가 아니다. 거의 전부다. 내 뾰족했던 내 혀가 두리뭉실로 바뀌었나? 내 혀가 그렇게 된 것 같지는 않고. 그럼 다른 이유가 있어야 된다. 눈치를 보면 손녀들에게 줄 음식 공부 좀 하는 것 같기도 한데, 손맛이란 그것 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그런데 또 하나는, 집사람 주변 분들이 수시로 베푸는 음식들(경기도, 강원도, 울산, 전라도의 각종 반찬 들) 모두가 까다로운 내 입맛에  맞는 게 아닌가? 사실 과거에는 아닌 경우도 많았지만. 어떻게 동시다발적으로 실력이 향상된 걸까?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면 ‘할머니들’이 되거나 ‘준 할머니들’이 되면 후천적 손맛이 생긴다는 것이다.


그런데 한 가지로 추정해보면 해석이 가능해진다. 바로 ‘누구나 고수를 만드는 1만 시간의 법칙’이다.


자 할머니 들은 하루 한 시간씩 자식들(남편은 당연 차 순위, 차차 순위 일거다)을 위해 음식 만들기에 몰두한다고 보면 일 년 365시간이 되고, 어느 듯 자식들이 커서 분가할 때쯤이면 30년 세월이 흘러갔겠지. 그럼 거의 1만 시간에 도달한다. 손자 손녀가 있으면 더욱 정성을 들이겠지. 그럼 솜씨 없는 할머니도 자연히 1만 시간을 초과하게 된다. 그래서 할머니들이 사실상 음식 고수가 된 것 아닐까? 물론 하루에 10시간을 투자하면 3년이면 1만 시간에 도달하고 단기간에 고수가 될 수도 있겠지.


“제자 황상이 자신의 3가지 병통(첫째 너무 둔하고, 둘째 앞뒤가 꽉 막혔으며, 셋째 답답한 것)을 걱정할 때 정약용의 명답을 담아보자. 똑똑한 식자의 3가지 병통은, 첫째 외우는데 민첩한 사람은 소홀한 것이 문제다. 그 뜻을 깊이 음미할 줄 모르니 금세 잊고 만다. 둘째 글 짓는 것이 날래면 글이 들뜨기 마련이다. 자신도 모르게 경박해지고 말지. 셋째 깨달음이 재빠르면 거친 것이 폐단이다. 한마디를 던져주면 금세 말귀를 알아듣고 곱씹지 않으므로 깊이가 없다. 무딘 송곳으로 구멍을 뚫기는 어려워도 한 번 뚫리면 막히는 법이 없지.” ‘1만 시간의 법칙.’ 하늘이 주신 예외 없는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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