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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만석 Dec 20. 2022

‘일에 지지 않는 기술’

얼마 전 둘째 아들이 최근 발표된 작곡을 카톡에 올렸다. 아이돌 그룹 ‘신화 WDJ’의 ‘tommow’와 ‘최백호’의 앨범 ‘찰나’ 중 ‘개화’다. 젊은 ‘신화 WDJ’는 미래와 인간관계를, 칠순을 넘긴 ‘최백호’는 순간의 소중함과 진진한 삶을 노래하고 있다. 최백호 노래에 더 끌리는 것도 그와 가까운 시대에 살아왔으니 당연하겠다. 지난 세월이 찰나 같다고 느끼는 것도 그렇고, 지금 이 순간에 대한 생각도 그러하다. 그럼 찰나 같은 이 순간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까?


문득, 십수 년 전 모 선배로부터 선물 받아 서문만 대충 읽어보고 책장에 두었던 ‘법정스님’의 법문집 ‘일기일회(一期一會)’가 생각났다. ‘지금 이 순간은 생애 단 한 번의 시간이며, 지금 이 만남은 생애 단 한 번의 인연’이라는 뜻이라 한다.  그 속에서 찰나 같은 삶에 대한 어떤 진리를 찾아낼 수 있을 것 같아 꺼내 들었다. 하지만, 아직 그 높은 경지를 엿 보기에는 크게 부족하다. 머리로는 이해할 듯하지만 마음에는 절실함이 없다. 아직도 천년만년 살 것 같은 여유로운 마음뿐이니 법정스님과 같은 높은 경지를 경외할 뿐, 다가갈 자신이 없다.


그러니 별 수 없다. 앞으로 주어질 찰나의 순간들은 나만의 경험에서 얻은 나만의 색깔로 ‘일기일회(一期一會)’를 마주해야겠다.


사회생활의 상당기간을 공무원으로 지냈다. 33년이나 된다. 국가차원의 난제들을 해결해 보기도 하고, 새로운 법률을 만들어 보기도 하고, 전국적인 대규모 프로젝트도 기획하고 완성되어가는 과정도 직접 담당해 보기도 하였다. 한 해에 수 조원이 넘는 예산을 지원하기도 하였다. 이런 과정에서 여기저기를 정면으로 부딪치며 견문도 넓혀보았다. 돌아보면 그기도 크고 작은 사건들이 이어지고, 밤잠을 설쳐가며 모든 머리를 짜내야 겨우 해결할 수 있었던 것들도 수두룩하다.


그런 경험을 통하여 얻은 것도 꽤 된다. 사건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피하지 않는 것. 어려운 난제일수록 경험 많은 고수를 찾아 조언을 구하는 것(타력(他力)이라고 한다. 공무원에게는 특히 중요할 것 같다.). 주어진 일에 자신만의 색깔을 입혀 자신을 몰입시키는 것. 뭐 이런 것들이다. 그렇게 하여 일이 해결했을 때에는 희열감과 속박을 벗어난 왠지 모를 자유로움을 얻었고, 그리고 이런 것들이 현재도 나를 지탱해주는 알량한 자존감이다.    


이 알량한 나만의 자존감을 좀 더 구체화시켜보자. 나는 이것을 ‘일에 지지 않는 기술’이라고 칭한다. 다분히 주관적이다.


탑 다운으로 내려오는 ‘수동적인 일’부터 살펴보자. 일의 ‘결’(유사사례, 조언 등 가능한 모든 것을 활용, 일의 성패에 가장 중요할 것 같다)을 찾는 것에 우선을 두었다. 결을 찾아내면 일의 처음과 끝이 가늠해지고, 여기에 작든 크든 나만의 새로움을 더하면, 자연히 ‘나의 일’이 된다. 그럼 행동이 ‘능동적’으로 바뀌고, 자연히 일에 몰두하게 된다. 그리고 일을 결대로 하니 ‘순리’대로 진행되고 일이 쉬워진다. 일이 쉬워지니 ‘자신감’이 생기고 일이 ‘반듯’하게 된다. 이렇게 완결하면 ‘희열’이 찾아온다.


더 좋은 것은  ‘능동적으로 하는 일’이다. ‘창의성’을 발휘하여 일을 미리 찾아서 하는 것이다. 창의성을 가지고 발굴한 일은 ‘나의 프로젝트’가 된다. 내 방식대로 일을 끌고 갈 수가 있다. 자연히 일에 몰두한다. ‘사명감’도 생긴다. 프로젝트가 완성되면 당연히 ‘자신감’과 함께 짜릿한 희열이 찾아온다. 아마도 최고경영자가 느끼는 희열과 같을 거다.


이제 일에 세월을 바쁘게 살 나이는 지났다. 남는 시간 활용 방안을 궁리해 될 ‘시간 부자’이다. 가사 도우미, 재택 직장, 바리스타, 주말 텃밭 가꾸기, 손녀들과 놀기, 골프 동우, 뒷산 등산, 음악 감상, 친구들과의 잡담, 그리고 글쓰기 등등. 아무튼 여기에도 ‘일에 지지 않는 기술’을  적용해보기도 한다.


가사 도우미 일은 대게 ‘일에 지지 않는 기술’ 중 탑 다운으로 내려오는 수동적인 일에 해당되겠다. 집사람의 부탁 중 성가신 일 중 하나가 세탁물 널기다. 그기에도 나름의 아이디어를 살짝 가미하였더니 거리낌이 가셨다. 세탁소 철사 옷걸이를 이용하는 것이다. 1 ‘티셔츠처럼 목이 있는 세탁물’과 ‘수건처럼 반으로 접어서 널어야 될 것’들로 분류하여 펴서 차곡차곡 겹쳐 쌓는다. 2 목이 있는 세탁물은 목 부분에 옷걸이를 끼운다면 젖히기를 반복한 후 한꺼번에 건조대에 걸고, 3 수건같이 반으로 접어서 말리는 세탁물은 철사 옷걸이를 끼워 반으로 접어서 쌓은 다음 한꺼번에 건조대에 걸고 간격을 두면 잘 마른다. 4 건조가 끝나면 세탁물이 걸린 철사 옷걸이를 한꺼번에 회수한 다음 세탁물을 정리하면 끝이다. 귀찮아할 새도 없이 순식간에 해치워야 한다. 아니면 짜증이 올라올 수 도 있으니 ㅎㅎㅎ.


‘일에 지지 않는 기술‘중 ‘능동적으로 하는 일’은 예전에 올린 글 중 ‘주말 농부의 게으른 농사기술’과 같은 것 들이다. 매주 일요일에만 돌보는 15평 텃밭이야기다. 고추, 상추, 열무, 아욱, 들게 등 여려 작물을 심 긴 하지만 관리와 수확은 농사일하듯이 하진 않는다. 비름나물처럼 먹을 수 있는 잡초는 그대로 두고 식용한다. 그냥 식용과 비식용으로 구분할 뿐이다. 식용할 수 있는 잡초도 의외로 많다. 그리고 상추 열무 아욱 들깨도 어느 정도 자라면 밑둥치에서 5 내지 10센티만 남기고 칼로 베어 생 채소나 국거리로 먹는다.  얼마 후면  벤 밑둥치에서 다시 싹이 자라 성체가 된다.  수차례 싹둑 잘라먹을 수 있다. 내 방식의 게으른 텃밭 가꾸기다.


하여간 좀 엉뚱하지만 어떤 일을 하든 창의적이고 새로운 시도를 생각해 본다. 그럼 적극적이고 재미있어 지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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