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눈을 떴을 때 ‘오늘 뭘 하지?’ 하는 생각이 든 적이 있는가? 시간의 족쇄가 풀리고 자유가 일상화될 때쯤, 갑자기 찾아드는 공허함이다. 특히 은퇴자에게는 그러할 가능성이 크다. 이런 멍한 생각이 생겨날 때쯤 되면, 갑자기 여기저기서 참기 어려운 통증도 함께 일어난다. 바빠서 무심히 지나쳤던 곳들이다. ‘한물갔구나!’하고 자신을 제대로 알아채는 시기가 이때쯤이다.
60이 넘어가자 나도 마찬가지였다. 불현듯 목이 뻣뻣해져 있고, 어깨도 결림을 넘어 움직일 때마다 불편하고 때로는 통증이 추위처럼 느껴지면서 매일매일의 수면을 방해하고, 어릴 때 비끗했던 팔목에도 통증과 함께 손가락 끝에 심한 마비가 왔다. (나중 확인 결과, 부접합 골절이 신경을 건드리는 터널 증후군이고 뼈의 부적합 골절로 인해 근본치료는 불가능이라 한다.) 허리도 갑자기 앞으로 숙이기 어려울 때가 자주 생기고, 심지어는 다리를 타고 내려가는 찌릿함에 기급을 하고 고가의 MRI로 스캔한 후에야 ‘척추의 노화로 허리의 디스크 일부가 신경을 건드리고 있다는 판정’을 받기도 하였다. 하산 시 무릎이 시큰거리면 관절염이 아닌가 하는 걱정에 인터넷을 모조리 뒤져보기도 하고, 가끔 발바닥이 불편해짐을 느낄 때면 주위에서 걷기조차 힘들어하는 족저근막염이 아닌가 걱정하기도 하였다. 너무 많다. 이 정도만 나열하기로 하자.
‘과학적 관점’으로 보면 당연한 일이다. 50세가 되면 인간의 몸을 구성하는 약 70조 개의 세포 중 대략 50% 넘게 재생을 멈추고, 65세가 되면 90% 넘게 재생을 멈춘다고 하질 않나. 건강한 세포수가 줄어들고, 늙은 세포만 가득해진다. 신체의 회복력이 줄어들게 되고, 잔병이 늘고 여기저기 아픈 곳이 많아지는 원인일 게다. 반면에 시간의 여유가 오히려 몸의 불편함을 예민하게 만든다. ‘분명 한물갔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닌 것 같으니 그나마 위안이다.
집안의 약품 통에는 근육통 완화용 파스가 항상 그득하다. 그리고 한방병원, 정형외과, 재활의학과, 통증의학과 등 동네 병원이 단골이 되었다. 운동을 열심히 하면 좋아질까 싶어, 운동기구가 가득한 동네 헬스클럽도 열심히 다녔다.
더 나아졌나? 아니었다. 동네병원 문 앞에서 차례를 기다리는 시간만 늘어가고, 핼쓰 클럽은 저녁 시간을 보내는 놀이터 정도로 변질되었다. 여기저기 아픈 곳은 그대로인데, 빠듯한 주머니 사정만 나빠질 뿐이었다. 갑자기 ‘죽을 때까지 이러면 큰일’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 아니가.
그래서 작게나마 꾸준히 할 수 있는 ‘루틴’이 오히려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실천으로 옮겼다. (시간과 날씨와 주머니 사정과 하등 관계없는 운동으로, 밑져봐야 본전인 심정으로.)
기상하면, 물 한 모금 + 푸시업 + 어깨 돌리기(푸시업 할 때 생기는 뭉친 근육을 풀어준다는 차원에서) + 손 악력 운동으로 길어도 5분 정도, 작게 시작하였다. 꾸준히 하는 것에 방점을 찍고.
사실 여기에 약간의 자기 동기부여도 있다. ‘친구들하고 자주 소소한 경쟁을 벌이는 골프에서 이것이 비거리 늘리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에서다. 효과가 좋았다. ‘오늘 뭘 하지?’하는 생각이 올라오는 순간, ‘푸시업 하고 나서 생각해 보자’ 고하는 자기 최면 효과 때문인가, 얼마 지나지 않아 이런 멍한 생각은 없어졌다.
처음에서 푸시업이 30개가 한계였다. 반년쯤 지나자 30개를 끝내도 힘이 남게 되고, 40개로 늘렸다. 또 반년쯤 되니 40개를 끝내도 힘이 남아, 50개로 늘렸다. 지금은 어떤가, 푸시업 100개, 팔 돌리기 100개, 악력기 150개, 스커트 100개, 뒷무릎 들기 200개, 골프 스윙 연습 50개를 한다. 거부감이 없을 정도의 운동량이다. 지루함을 없애려고 뇌 속임 장치를 두었다. 예를 들면, 푸시업 할 때 넷씩 묶어서 세는 방법이다. 하나·둘·셋 하나, 하나·둘·셋둘, 하나·둘·셋셋, 이런 식이다. 스물다섯까지 되면 자연히 100개가 된다. 혼자서 하는 ‘루틴’이다.
그런 다음 집사람하고 5분 스트레칭을 같이 한다. 나의 허리디스크를 완치시킨 맥켄지 운동 위주다. (네이버 등 포탈에서 검색해보면 안다. 간단하지만 의외로 큰 효과를 보았다). 목, 어깨와 무릎 근육 이완운동을 가미하면 이것으로 기분 좋은 하루를 보낼 준비가 완료된다. 매일 하는 나만의 ‘내 몸 깨우기 루틴‘이다.
결과는 어떠냐고요? ’ 루틴’을 거치고 나면, 아침이 상쾌해지고 무언가 해보고 싶은 일들이 머리에 가득해진다. 작게는 거의 매주말 보내는 시골 ‘텃밭에 무얼 심고 어떻게 관리할까’하는 궁리 같은 것에서부터, 크게는 ‘세계경제 방향은 어떨까(국내와 미국 주식 투자도 조금 하고 있으니)’하는 것들의 잡다한 검색 등등. 요즈음은 ‘맛있는 드립 커피를 어떻게 만들어 볼까’하고 이런저런 궁리에 상당한 시간을 할애하고, 화음이란 무엇인지를 깨닭게 한 ‘18세 피아니스트 임윤찬’의 연주에 심취해 있다. 여기에 매일 저녁에 아파트 뒷길(수리산 느티나무길) 산보 40분을 더하면, 하루가 바쁘다.
‘루틴’의 덕분인가 최근 수년 동안 통증을 해결하려 병원 순례를 간 적이 없다. 어차피 작은 통증은, 우주 불변의 순리인 생로병사(生老病死) 과정에서 일어나는, 해결 안 되는 노인성이니 마음 편하게 넘긴다. 매년 정기 검진 시 근육량이 잘 유지되고 있다고 하니, 루틴의 덕택일 거다. 여기에 더하여 가끔 어울려 경쟁하는 골프에서도 비거리가 예전과 별다름이 없다.
아무튼 지금은 아픈 곳을 느끼지 못하고 지낸다. 루틴! 이보다 좋은 명약이 따로 있겠나. 갈수록 빈약해지는 내 주머니에도 보탬을 줘서 좋고, 나라 주머니(건강보험)에도 작은 보탬이 될 것 같으니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