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 스토리텔링
미물에서부터 우주에 이르기까지 거역할 수 없는 그 무엇은 ‘시간’이다. 태어나서 성장하고 종말에 이르면 마침내 사라진다. 세상 만물의 존재 자체가 시간에 기초를 두고 있으니 시간의 흐름을 측정하는 장치야 말로 인류가 만들어낸 최고의 과학이 아닐까?
몇 년 전 10일 남짓한 일정으로 체코, 오스트리아, 헝가리 3개국을 여행을 다녀왔다. 부인네들이 수년에 걸쳐 조금씩 모은 여행 계에 남편들이 얹혔지만, 그래도 선뜻 마음이 내켰던 것은 천체의 움직임을 기반으로 하여 시간을 알려준다는 프라하의 광장에 있는 천문시계를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현지 여행 가이드는 시계탑 앞에서 알고 있는 모든 지식을 동원하여 열심히 설명해 준다. 시계는 지구를 중심으로 천체가 움직이는 천동설의 원리에 따라 해와 달의 움직임을 묘사하였다고 한다. 시계탑에 설치된 하나의 시계는 년, 월, 일, 시간과 달의 형상을, 다른 하나는 계절의 변화에 맞추어해야 할 농사일도 알려주도록 만들어져 있다. 특이하고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현재에 작동하는 가장 오래된 ‘천문 시계’라 한다.
그런데 더 유명한 것은 매시 정각에 20초간 진행되는 시계 쇼다. 매시 정각이 되면 먼저 시계 옆에 있는, 허영을 상징하는 거울을 보는 인형, 돈지갑을 움켜쥔 유태인 인형, 음악을 연주하는 터키인의 인형이 고개를 가로 저어며 거부하는 몸짓을 하지만, 해골 인형은 시간을 알리는 종을 친다. 그리고 시계 위에 있는 두 개의 창문이 열리며 12 사도가 순서대로 나타난다. 때가 되면 모두가 죽어 해골이 되니 허영과 부귀영화도 소용없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한다고 한다. 스토리텔링의 위력이 이런 것이다. 최고의 천문학이 있고, 장인들의 땀과 혼이 담겨 있고, 또한 인생을 관통하는 철학이 있다. 언제나 수많은 관광객이 매시간 정각을 기다리는 이유인 것 같다.
그런데 오늘날 프라하의 명물로 손꼽히면서 많은 관광객들이 몰려드는 아름답고 정교한 시계탑도 장기간에 걸쳐 수많은 보완 손길을 거쳤다한다. 최초 시계탑은 1410년 시계공 미쿨라시와 뒷날 수학교수가 된 얀 신델(JanSindel)이 공동으로 제작하였다고 한다. 1490년 달력이 추가로 제작되고, 외관이 조각으로 장식되었다. 이후에 움직이는 인형 조각상들이 추가되고, 1865년과 1866년에는 12 사도들을 추가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부가 파손되었으나 보수작업을 거쳐 1948년에야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계속 수리하면서 보완한 결과 현존하는 최고의 천문시계가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이런 천문시계가 없었던가. '프라하의 천문 시계'탑보다 더 정밀하고 아름다운 천문시계가 있었다.
프라하의 천문시계가 처음 제작되었던 비슷한 시기인 1438년 세종 20년에 세종대왕의 명을 받아 장영실이 만든 흠경각에 설치되었던 ‘옥루라는 천문시계’다. 세종실록 등에 천문시계의 움직임을 상세히 기록되고 있다. 개략적인 내용은 ‘흠경각에 일곱 자 높이의 인공의 산과 계곡을 만들고 내부에는 옥루라는 물시계 장치를 만들었다. 매일 둥근 해가 산마루에서 오르고 밤에는 산 아래로 지게 하였고, 시간에 맞추어 옥으로 만든 여자 인형 넷이 구름을 탄 형상으로 동서남북 네 방향에 서 있다가 금 목탁을 두들이면 방향 신(청룡, 백호, 주작, 현무)이 방향을 틀고, 2시간 간격으로 12 지간의 인형(쥐, 소, 범, 토끼, 용, 뱀, 말, 양, 원숭이, 닭, 개, 돼지)이 일어나고, 그에 맞추어 무사 인형들이 북과 징을 치도록 하였다. 또한 물이 가득 차면 자동으로 쏟아지도록 만든 물병을 설치하여 차고 비는 이치를 터득하게 하였다’고 한다. 장영실의 천문시계에도 시간을 측정하는 정밀 과학과 동양철학이 있고, 장인의 기술과 혼이 담겨 있으며, 12 지간의 인형들이 시간을 알려주는 완벽한 스토리텔링이 있다. 프라하의 천문시계를 보면서 우리의 천문시계를 그리워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불행히도 흠경각의 천문시계는 1592년(선조 25) 시작된 임진왜란 때 불탄 버렸다. 그리고 2019년에 복원되었다고 하지만 유명세에서 한참 비켜있다. 혹시 여기에는 학문적인 차원의, 국가의 문화재 원형 복원 차원의 강박관념에서 오는 한계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
그럼 이렇게 하면 어떻겠는가. 문화재 차원에서 복원된 원형물은 잘 모셔두고, 옥루의 원리에 오늘날의 현대적 기술과 스토리텔링을 가미하여 현대적 모습으로 재탄생시켜서 ‘프라하 광장’처럼 ‘청계천 광장에 건립하는 아이디어는 어떤가? 이런 기회에 세종대왕의 위대함과 장영실이라는 걸출한 과학자의 철학과 기술을 세상에 알리는 차원에서도 그렇다. 그럼 프라하의 천문시계가 서양의 그것이라면, 옥루의 천문 시대가 동양의 그것이 될 수도 있지 않겠는가. 물론 세월과 더불어 새로운 명승지가 될 수도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