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폐를 품고 살아가는 방법 (최종화)
“자폐 아이를 둔 가정이 가장 힘들 때가 언제인지 아세요? 자폐 진단받을 때가 1순위 같죠? 아니에요. 2위는 아이가 학교에 들어갈 때, 그렇다면 1위는? 바로 아이가 사춘기에 접어들 때입니다.” 응용행동분석 전문가가 되려 코스워크를 듣기 시작했을 때, 교과목 교수님 중 한 분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어디에서 진행된 통계인지에 따라 다르겠지만, 들리는 바에 따르면 대략 50명 중 1명 꼴로 소위 ‘자스’ 진단을 받게 된 요즘이란다. 생각보다 비율이 높아서 놀랐다. 내 아이가 ‘자폐스펙트럼 장애’에 해당하면 어떡하지 마음 졸이는 부모들의 숫자가 상당할 거란 얘기다. 시곗바늘이 움직이고 있는 지금도 어딘가에서 나와 비슷한 또래 부모들은 나와 완벽하게 닮은 고민을 하고 있겠구나 싶다. 끝까지 한 줄기 희망을 잡고 ‘결국엔 우리 애 ASD가 아니었더라는 해피엔딩’을 꿈꾸고 있겠지만 가슴 한쪽에선 이미 진단을 받은 것처럼 먹먹하고, 차츰 마음의 준비를 해나간다. 우리 애 앞으로 어떻게 치료해나가야 할지, 우리 집 식구들 모두 이 짐을 현명하게 들고 갈 수 있을지.
때론 꾸준히 품어 온 희망이 잘 먹히는 날도 있다. ‘저렇게 눈 맞춤을 잘하고, 엄마한테 자기 좋아하는 것 같이 보자고 조르기도 잘하는데 자스일 리 없잖아? 그래 아니었네, 아닌 거네.’ 안심하는 날들. 그런데 며칠이 지나지 않아 희망으로 똘똘 뭉쳐 쳤던 실뭉치가 이내 헝클어져 내동댕이 쳐지기도 한다. 별 이유도 없어 보이는데 극심한 텐트럼이 터져서 1시간이고 2시간이고 진정 안 되는 날, 이른바 ‘그분이 오신 날’. 그리고 갑자기 맥락 없이 거실을 스무 바퀴쯤 뱅글뱅글 뛰다가 흥이 너무 차올라서 빽 소리를 지르며 자기의 각성을 높여가는 순간. 혹은 호명이 잘되는 듯하다가도 어느 순간 멍해진 눈빛으로 엄마의 목소리에 아무 반응도 하지 않는 날. 이런 날들이 겹겹이 쌓이면 어김없이 꽁기꽁기 숨겨뒀던 좌절모드를 꺼내 든다. ‘어쩔 수 없네. 우리 애 자폐스펙트럼이 맞는 것 같네.’
아이가 두 돌이 되기 전부터 마음의 준비를 했건만, 여전히 인정하기 싫고 감싸 안기도 억울한 순간들은 찾아온다. 어떤 질병과 맞닥뜨릴 때도 다들 비슷한 심정 아닐까. ‘도대체 내가 왜. 도대체 우리 애가 왜!!!’ 문장단위의 발화도, 엄마와의 상호작용도 순조롭게 해 나가는 아이 친구들을 보면 말할 수 없이 부럽고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속상하다. 임신 중 아주 작은 위험을 감수하는 게 싫어서 산부인과 전문의도 괜찮다고 말한 타이레놀 한 알조차 먹은 적이 없는데 도대체 내가 무슨 잘못을 해서 아이가 힘든 상황이 됐을까 반추하고 또 반추할 때가 부지기수. 투약을 잘못한 사실도 없고, 태교로 석사 공부밖에 안 했는데 그 무엇이 나를, 우리 아이를 이렇게 이끌었을지 괜한 자책을 해볼 때도 있다.
그리고 이내 역 상상을 펼쳐본다. 만약 우리 애가 자스 징후가 없었다면 지금 어떤 모습일까. 만약 지금 이 고민거리가 없다면 육아가 훨씬 쉽지 않았을까. 자폐스펙트럼에 대해 1도 생각하지 않는 집에서 ‘육아가 힘들다’고 볼멘소리를 내뱉는 풍경들은 괜히 사치스러워 보이기까지 한다. 아이의 자스 징후가 자꾸만 나를 고약하게 만드는 듯싶어서 또 한 번 좌절.
까짓 거, 우리 애 내가 고치고 말테야
응용행동분석 전문가가 될거야
ABAS, QBA, 내가 할 거야
아이의 징후를 느낌과 동시에 ‘ABA 치료사’로 커리어를 튼 지도 벌써 1년이 되어간다. 아나운서였고 커뮤니케이션 석사를 했지만 난생처음 접하는 ‘응용행동분석’을 뒤늦게 공부하기 시작했다. 새 분야에 접어들고서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다중 관계를 피해야 하기 때문에 공식적으로는 내 아이를 내가 중재하는 것은 안 된다. 나는 아직 배우는 과정에 있고, 현재 우리 아이도 조기중재를 맡아주는 치료 선생님이 따로 계신다. 엄마가 자기 아이를 행동 중재를 한다는 건 주관적일 수밖에 없고 편견이 개입할 수 있기에 윤리규정상 피해야 하는 상황이다.
다만 내 아이의 자폐스펙트럼 징후를 보다 잘 이해할 수 있고 바람직한 치료 방향을 꽤나 장기간 고민해 나가야 할 테니 이 분야에 발을 들인 건 결코 후회하지 않는다. 나와 같은 고민으로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던 엄마 아빠들의 마음을 다독거려주고 싶다. 혹여 그 집 아이가 자스 진단을 받더라도 그 가족 잘 살아갈 수 있다고 희망적인 길을 제시해주고 싶다는 꿈이 생겼다.
결국에 모든 건 마음먹기 나름 아닌가. 자스 가정에 소소한 멘토가 되어주고 싶은 마음. 내 아이로 인해 겪었던 마음 경험치와 행동 중재치료에 대한 생각, 배움들이 한 단계 한 단계 쌓여가면서 새 꿈을 키워온 거다. 그러면서 내 아이에 대한 고민도 긍정적 행동 지원도 ‘엄마로서’ 그치지 않고 해 나갈 수 있겠지. 아이에 대해 ‘위기’를 느낀 부분이 결국엔 내게 ‘기회’가 되어 준 셈이다. ‘응용행동분석 전문가’로 성장해나갈 수 있는 기회. 그리고 ‘엄마로서’ 자폐 징후가 있는 아들과 포기하지 않고 소통할 수 있는 기회.
한 때 시청자와 생방송을 통해 소통하던 아나운서는 이제 조금은 특수한 소통을 위해 한 단계 성장해나가고 있다. 응용행동분석을 공부하고 행동분석가로서의 윤리와 연구방법론, 행동평가와 변화 절차에 대해 빈틈없이 공부한다. 교육학, 특히 특수교육 분야는 정말 나와 관련이 없을 줄만 알았는데 인생은 이렇게나 모를 일이다. 1500시간 수련시간을 채워야 공식적으로 ‘응용행동분석 전문가 (ABAS, Applied Behavior Analysis Specialist)’로 거듭날 수 있어서 올초부터 틈틈이 ABA 연구소에서 수련을 받는다. 인턴 치료사가 되기 위해 이곳저곳 이력서를 새로이 내고 면접을 보러 다니며 나의 제2막이 비로소 시작되고 있구나, 작은 성취감과 뿌듯함을 느꼈다. 방송의 클로징을 할 때 하루의 보람을 느꼈던 내가 아이를 위해, 아이 덕분에, 아이로 인해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다. 아이의 자스 징후는 결국 아이에게도 내게도 과제를 남긴 셈이다. 어려운 상황도 함께 해쳐갈 수 있다는 의지. 그리고 믿음.
아직은 주변의 친한 지인들에게조차 커밍아웃하지 못했다. 내 아이가 아마도 자폐스펙트럼인 것 같다고, 18개월 무렵부터 그런 징후를 느껴 조기 중재해 오고 있다고 말할 용기가 없다. 누군가는 동정할 테고, 누군가는 무심할 테지. 또 누군가는 입소문 내기 바쁠지도 모르겠다. 소중한 아이의 기질과 징후를 타인으로 인해 입방아에 오르내리게 하긴 싫었다. 차차 진단을 정식으로 받고 내 마음도 더 단단해지고 나면 언젠가는 서서히 말하기 시작할 거라고 생각해보지만 또 이게 굳이 나서서 알릴 일인가 싶어 마음을 다시 잠그기 일쑤.
하루에도 몇 번씩 자스에 대해 마음은 열었다 잠갔다가 반복하며 살아간다. 그렇게 하루, 또 그렇게 다른 하루가 엮어 세월이 흐른다. 그러면서 아이는 벌써 30개월이 됐다. 발달의 골든타임이라는 세 돌까지가 이제 6개월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종종 초초하고 종종 아득해하며 매일을 곱씹는다.
아이를 위해
아이로 인해
아이 덕분에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가는 날들
자스인 듯, 아닌 듯. 우리 애의 과거와 현재, 미래의 선상을 조심스레 따라가 보는 날들. 자폐스펙트럼 징후를 불안해하면서도 결국엔 아이의 자스를 성숙하게 품는 엄마가 될 수 있을 거라고 마음을 내려두는 날들. 이런저런 날들이 엮이는 가운데 한 글자 한 글자 이렇게 글도 엮였다. 제목 그대로 <자폐를 품고 살아가는 방법>, 앞으로도 이 지침을 써 내려간 마음을 기억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 응용행동분석가로서, 자폐스펙트럼과 그 중재에 대해 아주 조금 더 공부한 엄마로서, 나는 아이의 ‘불편한’ 징후를 오래도록 잘 품어갈 수 있을까.
어느덧 글을 마무리하려는데 저쪽에서 아이가 외친다. ‘빠. 붐. 빠!’ 아무래도 또 좋아하는 자동차 이야기가 많이 고픈가 보다. 맥락이 없는 행동도, 참고 보기 힘든 아이의 상동 행동도 오늘 저녁만큼은 따뜻하게 품어주고 싶어 진다. 그렇게 오늘은 자폐를 품고, 아이를 품어보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