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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주디 Jun 03. 2020

아빠는 위대하다

사랑을 표현하는 다른 말

남편과 연애시절 서울대공원 동물원으로 나들이를 간 적이 있다. 아마 날 좋은 이맘때였던 것 같다. 가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서울대공원은 말도 안 되게 넓어서 진을 쏙 빠지게 하는 매력을 갖고 있다. 우리는 아무런 준비도 없이 그냥 갔다. 허기를 채워 줄 도시락도, 잠시 쉬어갈 수 있는 돗자리도, 뜨거운 태양을 피해줄 모자도 없었다. 


물론 준비물이 없어도 충분히 먹고, 쉬고, 그늘을 찾을 수 있었지만 나의 체력은 금방 동이 났다. 내가 동물 구경을 하러 온 건지, 동물에게 나를 소개하러 다니는 건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동물원의 절반도 못 봤는데 이미 체력은 바닥을 찍고 있었다. 


어마어마하게 넓은 서울동물원


편의점에서 급하게 갈증을 달래 줄 음료수를 사서 근처 벤치에 잠시 앉아있었다. 그러다 우리 앞에 돗자리를 깔고 쉬고 있는 한 가족이 눈에 들어왔다. 둘러보니 우리 같은 커플보다는 아이를 데려 온 3~4인 가족 단위가 제일 많았다. 


5년이 지났음에도 그 가족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명하다. 아빠로 보이는 아저씨는 KO 당한 듯이 돗자리에 누워 있었고, 아이들은 옆에서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빨리 곰이며 코뿔소며 보러 가자고 투정 부렸다. 엄마는 이 모든 것이 지친다는 표정으로 아빠와 아이를 번갈아보며 한숨을 쉬고 있었다. 


내 한 몸 챙기는 것도 힘들어서 넋을 놓고 있었는데 부모님들은 얼마나 힘들까. 돗자리, 도시락 등 들고 다녀야 할 짐도 많고 챙겨야 할 아이들도 있고 동물에도 흥미가 없었을 텐데 자식들을 위한 주말을 보내는 건 어떤 기분일까. 희생하는 아빠의 모습은 대단했지만 한편으로는 안쓰러웠다. 


주말에 아이를 데리고 놀러 가자는 엄마와 쉬고 싶다는 아빠의 갈등을 다루는 소재를 마주칠 때마다 사실 나는 엄마들 편이었다. 그날 돗자리에 뻗어 있는 아저씨를 보고 나서 아빠들의 마음도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이 상황은 누구의 편을 들어줄 것 없이 그 자체로 힘든 것이었다. 






우리 아빠는 어땠을까. 주 5일제도 없이 토요일까지 출근해야 하는 아빠는 어땠을까. 6일을 일하고 얻은 소중한 하루를 온전히 '나' 자신을 위해 쓰는 데도 부족할 것만 같은데 아빠는 오빠와 나를 데리고 산으로 바다로 열심히 돌아다녔다. 


아빠와 엄마의 그러한 노력이 헛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듯 어린 시절 추억을 생각해보면 가족들과 야외 활동한 기억들이 유독 또렷하다. 가장 기억나는 것 중 하나는 초등학교 1학년 때 저수지에서 얼음썰매를 탔던 날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다소 위험한 놀이일 수 있지만 그때는 꽁꽁 언 연못이나 저수지에 가서 얼음썰매를 타는 게 큰 재미였다. 





아빠는 손수 썰매를 만들었다. 오빠와 나는 아빠표 썰매가 너무 신기하고 대단하게 느껴졌다. 우리는 추운 줄도 모르고 저수지 바닥을 신나게 쓸고 다녔다. 그렇게 몇 시간을 썰매를 탄 후 언 아빠는 얼어있는 논밭 위에서 라면을 끓여줬다. 나는 아직도 내 인생 최고의 라면으로 이 날의 라면을 떠올린다. 특별한 부재료를 넣은 것도 아닌데 추운 겨울날 뜨끈한 그릇에 몸을 녹이며 먹었던 라면 맛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리고 아빠와의 소중한 추억으로 남아있다.


내가 부모가 되어 그때의 아빠처럼 똑같이 하라고 한다면 나는 할 수 있을까. 우선 주 6일 일하는 것부터 못할 것 같다. 나의 귀한 주말을 아이를 위해 쓰는 것도, 추위를 무릅쓰고 같이 썰매를 타는 것도 나로서는 도무지 해낼 수 없는 것들이다. 


그래도 아빠가 산과 바다에 가는 걸 좋아해서 다행이다. 아빠가 원치 않는 동물원을 자식을 위해 간다면 금방 지치겠지만, 본인이 좋아하는 곳을 아이와 함께 할 때는 조금은 수월하지 않을까? 물론 그래도 '나를 위한 휴식'과 '가족을 위한 휴가'는 다를 것이며 가끔은 아이를 위해 마음에 없는 놀이공원도 가야 하는 게 부모의 숙명일 것이다. 








짱구 아빠와 둘리의 고길동이 불쌍해지는 순간 어른이 됐다고 한다. 나는 그들의 마음이 공감은 되지만 그 어른들처럼 누군가를 보살피기엔 아직도 많이 부족한 것 같다. 이 힘든 과정을 겪었을 모든 부모님들께 감사한 마음을 전한다. 엄마에게는 자주 표현하지만 아빠에겐 전하지 못했던 마음을 이 글로 대신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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