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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주디 May 07. 2020

망고 예찬론자의 고백

망고, 행복인가 사치인가

지난 주말, 친정집에 들렀다가 큼지막한 망고 2개를 얻어왔다. 냉장고에 보이는 노란 과일을 보고 딸이 반가워하자 엄마는 바로 “선물 들어온 건데 너네 먹을래? 우린 그다지 안 즐겨서” 라며 냉큼 망고를 꺼내었다. 엄마의 그 말이 참인지 아닌지 가릴 것도 없이 “응 나 줘! 나 망고 엄청 좋아해!” 하고 신나게 받아왔다.


나는 집에 오는 내내 망고를 먹을 생각에 신났다. 운전하는 남편 옆에서 “망고 망고~ 왕망고” 노래를 개사해서 흥얼거렸다. 사실 이보다 더 맛있고 값진 음식은 많지만 이상하게 생망고만 보면 기분이 급격하게 좋아진다.


그런 점에서 망고를 손질하는 것도 다른 과일에 비해 나름 신경을 쓰게 된다. 마치 사시미를 들고 회를 뜨는 진지한 장인처럼 나 역시 망고 앞에서는 온 정신을 집중하게 된다. 겉면을 물에 깨끗하게 닦고, 가운데 망고씨를 기준으로 잘라낸다. 보기도 좋고, 먹기도 좋도록 가로세로 칼집을 내고, 마지막으로 껍질을 뒤집어 까는 순간! 그때의 희열이 가장 크다.






이제부터 기분이 절정으로 향하는 망고 알맹이 타임이다. 나는 가운데 가장 튀어나온 네모난 알맹이부터 톡 입에 깨문다. 첫 입이 가장 맛있기에 최상의 것으로 먹고자 한다. 한 입 먹는 순간 다시 한번 깨닫는다. '아.. 역시 망고는 지구 최고의 과일이야.' 그리고는 남편과 눈을 마주치며 "진짜 맛있지? 짱이지?" 온갖 호들갑을 떨며 남은 망고를 흡입한다.


그렇게 깔끔한 알맹이들을 다 먹고 나면 이제 망고 갈비 타임이다. 망고 갈비(망고씨)를 뜯을 때면 언제나 그렇듯 희열과 아쉬움이 교차한다. 아직 먹을게 제법 남았다는데서 오는 희열과 거의 다 먹어갈 때에 이게 정말 끝인가 싶은 아쉬움. 마지막으로 손에 줄줄 흐르는 망고즙과 남은 갈비뼈를 쪽쪽 빨아먹는 나 자신을 보며 '이렇게까지 먹어야 해?' 하며 처량해지기도 한다. 마치 요플레 뚜껑을 남김없이 먹는 모습에서 오는 그 느낌이랄까. 아무리 부자가 되어도 이 행동만은 계속하겠지? 왜냐, 맛있으니까!






내가 망고에 빠지게 된 계기는 8년 전 푸켓 여행을 갔을 때다. 아직 우리나라에서 생망고를 먹을 기회가 많지 않았기에 냉동망고 맛 밖에 몰랐었다. 그래서 망고가 맛있고 비싼 과일인지도 몰랐다. 나보다 망고를 먼저 접한 친구들이 푸켓 시장에서 망고를 싸게 파는 것을 보고 “이건 잔뜩 사서 먹어야 해!”라며 망고를 2~3kg씩 사서 호텔로 들고 갔다. 별 기대 없이 망고를 까먹기 시작했는데.. 이럴 수가 푸켓에서 먹는 망고 맛이 이렇게 훌륭할 줄이야.


그때 이후 국내에서도 가끔씩 망고를 먹어봤지만 사실 아직까지 동남아에서 먹은 망고보다 맛있는 경험은 없다. 나의 망고 예찬을 남편은 전혀 동의하지 못했었는데, 작년에 말레이시아 여행을 갔을 때 남편에게 눈이 번쩍 뜨이는 망고 경험을 만들어주었다. 우리는 숙소 부엌에 서서 허겁지겁 망고를 해치웠다. 게다가 망고스틴도 같이 사 와서 먹었는데 이 역시 눈이 휘둥그레지는 맛이었다. 그렇게 여행 내내 망고와 망고스틴을 배탈 나기 직전까지 먹었다.






우리나라에서 망고는 참 비싼 과일이다. 평균적으로 2~3개에 만원 꼴이다. 물론 만원이란 돈으로 간단한 밥 한 끼를 먹기도 하고, 둘이 카페에 가서 커피 두 잔을 마시는 데 금방 써버릴 정도로 요즘 시대에 만원은 사실 큰돈은 아니다. 그럼에도 이상하게 망고를 살 때면 망설여진다. ‘아 맛있겠다.. 근데 고작 작은 망고 세 개가 만원이라고?’ 나는 마트 과일 코너에서 한참을 서성이다 빈 손으로 자리를 옮긴다. 그러면서 몸에 백해무익한 아이스크림, 과자, 맥주로 장바구니를 채우고 이미 만원을 훌쩍 넘은 금액을 지불하고 마트를 나선다. 미련한 선택이다.


망고 하나에 나는 기쁘기도 하고, 아쉽기도 하고, 미련함을 느낀다. 작은 것 하나에 온갖 감정이 뒤섞일 수 있다는 점에서 망고는 더 특별한 과일이다. 이제는 아쉬움과 미련함을 떨치기 위해 조금 더 자주 망고를 사 먹어야겠다. 잠깐 시간 때우기 위해 지불한 커피값 만천 원보다 망고 세 개가 우리 부부에게 주는 기쁨이 훨씬 크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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