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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트 Oct 06. 2019

뉴욕의 쓰레기통은 주인이 있다?

아이와 뉴욕에서 한 달 살기 10.

숙소와 지하철을 오가는 길목에는 펜스테이션이 있고,

펜스테이션 지하로 내려가서 대합실을 지나치면 매디슨 스퀘어 가든으로 통하는 길이 나온다.

꽤 긴 거리이며 길 양쪽에는 레스토랑이나 상점 등이 우리의 지하상가처럼 빽빽이 자리 잡고 있다.

나는 거의 매일 이 길을 통과해 지하철을 타러 가거나, 코리아타운에 갔기 때문에 뉴욕에 도착하고 며칠이 지났을 땐 이곳 풍경이 꽤 익숙해져 있었다.

그런 풍경들 속에서 익숙해져 버린 것 중의 하나가 부랑자들의 얼굴이었다.

자주 가는 가게 점원이 눈에 익듯이 지하상가 근처에 자리 잡은 부랑자 무리들 중 몇 사람은 특징적인 외모로 인해 자주 눈에 띄었다.

그중 한 명은 키가 크고 피부가 까만 사람이었는데 늘 같은 곳에서 서성거렸고, 그곳에 있는 한 쓰레기통에 몸을 기대거나 앉아있곤 했다.


펜스테이션에서 매디슨 스퀘어 가든으로 가는 지하통로 길에는 군데군데 대형 스테인리스 쓰레기통이 서 있다.

뉴욕은 한국과는 달리 쓰레기에 매우 관대한 듯한데 거리에서는 물론 가정에서도 분리수거하는 사람을 거의 본 적이 없고, 쓰레기를 마구 모아 쓰레기통에 통째로 넣는다. 그래서 그렇게 큰 것 같기도 하다.

성인이 서서 조금 기댈 수도 있는, 허리 높이까지 오는, 그래서 테이블로도 쓸 수 있을 것 같은? 쓰레기통이다.


그 사람은 그 쓰레기통이 있는 자신의 구역? 같은 곳에서 종종 무언가를 맛있게 먹고 있기도 했다.

어느 날, 그곳을 지나고 있는데 그날도 같은 자리에 있는 그 사람을 볼 수 있었다.

어제는 햄버거 같은 걸 먹고 있었는데, 오늘은 잠바주스를 마시고 있었다.

짧은 관찰을 끝내고 곧 지상으로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관광을 했다.

그리고 관광을 마치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아침에 지나갔던 길을 지나쳐 오는데,

아침에 보았던 늘 같은 위치에 있는 사람이 자신이 맴돌던 쓰레기통에서 음식물을 찾아 먹으려 하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아...."

저번에 먹던 것들, 어제 먹던 햄버거, 오전에 마시던 잠바주스는 다 쓰레기통에서 나온 것으로 추측이 되었다.

그 사람이 열심히 쓰레기통을 뒤지는 광경을 목격하고 주위를 둘러보니, 다른 몇몇 쓰레기 통에도 거의 정해진 부랑자가 맴돌고 있고, 그들은 그 쓰레기통에서 음식물을 찾아 섭취하는 것 같았다.

쓰레기통은 그들 각자의 개인 냉장고 같은 것으로 보였다.


하나의 쓰레기통을 점유하고 거기에서 의식주를 해결하는 노숙자를 보고 지금도 난 무엇을 깨닫거나 어떤 생각을 떠올리기는 힘들다.

그저 당시에 그 광경을 보았을 땐 쓰레기통마다 한 명의 정해진 노숙자가 있고 자신의 쓰레기통에 어떤 음식이 버려질지에 촉각을 세우는 존재가 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소름이 좀 돋았을 뿐이다.

그들만의 룰이 분명히 있고, 그 룰은 일반인이나 관광객과는 전혀 다를 수 있다.

우리는 생각하지 않는 틈을 그들은 생각을 하며 살아가는 것 같아 보였다. 우리가 생각하는 틈을 그들이 생각하지 않을 수 도 있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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