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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은말고이응 Sep 25. 2017

인생의 스포일러

꼰대질

스포일러. 영화를 보기 전에 내용을 알아버리는 상황이나, 남에게 알려 줘버리는 행동을 통칭하는 용어다. 친구가 어떤 영화를 봤다기에 ‘스포하지마’라고 답장하며 문득 그런 생각이 떠올랐다. 상대방을 위해 모르는 척하는 게 알려주는 것보다 더 나은 순간도 있구나라는 생각. 이때까지 ‘아는 것이 힘이다’, ‘알고 봐야 많이 보인다’ 등 아는 것, 알려주는 것의 중요성을 듣고 말한 적은 많은 것 같지만 그 반대는 거의 없었던 것 같다.      


먼저 영화를 본 사람들이 ‘스포짓’을 하면 나중에 영화를 볼 사람들은 보기 전부터 흥미를 잃어버린다. ‘스포짓’ 때문에 아예 영화를 보러가지 않기도 한다. 그렇기에 어떤 영화를 직접 경험하길 선택한 사람들에게는 끝까지 ‘모르는 척’하는 게 예의다. 이 ‘모르는 척’이라는 매너는 남의 인생에도 필요하다. 선배들이 하는 인생의 스포일러는 영화의 스포일러보다 더 나쁠 수 있기 때문이다.     


인생은 어떤 것을 경험할지에 대한 자발적인 선택으로 이뤄진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영화는 만 원 정도가 있으면 자유로이 선택할 수 있는 데 반해, 대부분의 평범한 인생은 제한된 선택의 여건을 갖고 있다. 졸업하자마자 취업을 선택을 하는 것도, 혹은 해외여행을 가지 않기로 선택하는 것도, 사실상 경제적 상황으로 선택 당한 경우가 많다. 영화야 스포일러 당하면 보지 않으면 되지만, 인생은 그럴 수가 없다. 알면서도 해야 한다.

    

영화로 따지면 기승전결 중 ‘기’에서 ‘승’에 넘어가는 정도에 와있을 20대에게 네가 취업을 해봐야 권태롭고 지겨울 것뿐이라는 스포일러는 하루의 기분을 망칠 뿐이다. 그런 인생의 장면이 아닌 더 화려한 인생의 장면을 찍을 수 없는 예산을 가진 사람이 대부분이 때문이다. 여건이 안 된다곤 말도 못하는데, 스포일러는 당하고 있어야 한다. 아마 인생의 스포일러의 다른 이름은 도움이 안 되는 조언 혹은 꼰대질일 것이다.      


요새 후배들이 나에게 가끔 취업 조언을 얻곤 한다. 한창 관련된 정보를 알려주면서도 “취업 왜 하려고 그러냐, 해도 힘들다, 천천히 해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그러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내가 이렇게 꼰대가 되어가는 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못했던 선택들에 대한 아쉬움을 왜 후배들의 무지함으로 치환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경험은 또 다른 눈을 뜨게 해주지만, 딱 ‘경험한 만큼만’ 뜨게 해줄 뿐이다.     


‘모르는 척’하는 것은 참 힘들다. 사람들은 가끔 본인이 아는 것을 상대방에게 말하면서 인생을 인정받는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이 상대의 기분을 망치고(Spoil), 관계를 망치고(Spoil), 다가올 상대의 삶에 대한 만족감도 망친다면(Spoil), '존재의 인정'이라는 장점에 비해 너무 많은 단점을 가진 것이 아닐까. 어차피 사람들은 각자의 예산으로 각자 가장 취향에 맞는 인생의 영화를 찍을 뿐이다. 내가 찍은 것과 비슷하다고 스포짓을 할 필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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