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금년 두 살 난 사내애랍니다. 내 이름은 김점남이고요. 여섯이나 되는 형, 누이들과 세상에서 제일 이쁜 우리 어머니 이렇게 일곱 식구와 함께 살고 있답니다. 아차, 큰일 났군. 셋방 식구들을 빼먹을 뻔했으니...
울 집 장남인 큰형 김문희는 신수도 훤하고 몸에 난 무늬도 화려하니 아주 멋지답니다. 뿐만 아니라 덩치도 젤루다가 커요.
크기루 말하면 동리에 더 큰 고양이들이 있었긴 한데, 지금은 다 영역을 떠났어요. 안 떠났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출렁거리는 비곗살이 어디 멋진가요 뭐. 우리 큰형처럼 체격이 탄탄하고 키가 훤칠하니 커야 그게 멋진 거죠.
큰형은 장남이라 그런지 성격도 무던하고 퍽 어른스러워요. 아무리 성질을 돋우고 하여도 화를 내는 것을 못 봤어요. 동생들이 약을 올리거나 하여도 빙그레 웃고 말지요. 힘도 아주 센데 누이들이 때리면서 덤벼들어도 묵묵히 맞고 말아요. 내가 그렇게 힘이 세면 동생들이 그렇게 강짜를 부릴 때 쥐어박아 줄 텐데. 큰형은 늘 "그래. 네가 옳다."하고 물러서지요.
그런데 우리 식구들하고 자기 동무들한테만 그리 속없이 굴지요. 다른 고양이들이 쌈을 걸면 아주 매섭게 덤빈답니다. 큰형은 쌈도 썩 잘하거든요. 동생들이 맞고 들어오거나 누가 누이들한테 추근대면 몹시 성을 내면서 뛰어나가 아주 혼을 내주고 들어와요. 그래서 우리 동리의 고양이들은 우리 집 식구들을 잘 건드리지 않는답니다.
큰형은 사내답게 밥도 아주 복스럽게 먹지요. 입을 크게 벌려 와아아압하고 씩씩하게 고봉밥을 해치운답니다. 밥을 다 먹고 나면 영역 순찰을 돌거나 밖에 나간 누이들에게 별 일이 없는지 살피러 가요. 참말로 믿음직스럽지요.
늦게까지 밖에서 안 들어오는 일도 별로 없고 집에 돌아오면 느긋하게 앉아서 쉬어요. 경망스럽게 와다닥 하고 뛰어다니거나 놀자고 장난을 거는 일도 없지요. 가끔 작은형 하고는 엎치락뒤치락 레슬링 시합을 하거나 씨름 경기를 하지만 저 놀고 싶다고 다른 이를 귀찮게 하는 일은 절대로 하지 않아요.
큰형은 아주 착하고 똑똑하고, 아주 사내답게 멋지답니다. 나는 큰형이 너무 멋져서 큰형처럼 되고 싶어요.
그다음으로는 장녀인 큰누나 김달희가 있지요. 큰누나는 인물이 무척 고운데 아주 새침데기랍니다. 게다가 무척 멋쟁이라 집에서도 퍽이나 화려한 옷을 혼자서 입고 있기도 하는데, 누가 제 옷을 만져보거나 하면 몹시 골을 내요. 치잇.
성미가 변덕스러워서 동생들을 귀찮아하지마는 가끔 무슨 마음이 동하는지 우리들을 끌어당기어서 핥아주고 매무새도 다듬어 주고 하지요. 그러다가 금세 또 발칵 성을 내면서 우리를 쥐어박고. 큰누나의 맘은 참 헤아릴 수가 없어요.
그렇지만 역시 장녀라 그런지, 속으로는 식구들을 몹시 애틋하게 여기나 봐요. 집에 무슨 일이 생기거나 누가 쌈을 걸어오거나 하면 씨근거리며 큰형과 함께 싸우러 나간답니다.
큰형은 큰누나에게 공연히 수작이나 걸리지 말고 집에 있으라고 하지마는, 큰누나는 고집이 아주 세서 무슨 맘을 먹으면 꼭 그대로 하고야 마는 성미지요. 아주 황소고집이랍니다.
그렇지만 큰형처럼 풍채가 좋은 것도 아니고, 힘이 그다지 센 것도 아니니 쌈이 걸리거나 하면 종종 다쳐서 오지요. 그렇지만 성미가 악착같은지라 겁도 안 먹고 사나웁게 덤벼드는 기세에 상대가 질겁하고 물러서기 십상이야요. 그런 모양을 보고 있자면 맘이 참 아려 오다가도 큰누나에게 쥐어박히고 나면 그런 마음이 싹 달아나버리고 말지요.
만날 자기는 형제들이 너무 많아 귀찮다고 하면서도 우리들끼리 쌈질이라도 할라치면 가장 먼저 달려와 뜯어말린답니다. 특히나 형들끼리 싸우면 정말 무서운데 (둘은 의좋게 지내기에 그런 일은 흔치 않지만) 둘이 주먹질을 하기 전에 사이에 끼어들어 좋게 타이르지요. 그럼 또 금세 싸움을 멈추고. 희한하게도 형들 둘 다 달희 누나 말을 잘 듣는답니다.
큰누나는 배짱도 좋고 얼굴도 곱고 또 멋쟁이이니 나한테 고약하게 굴지만 않으면 백점일 텐데 하고 생각한답니다.
차남은 김곤희. 둘째형은 참말로 재주가 좋아요. 사람들이 쓰는 기계도 잘 알아서 이것저것 알려주기도 하고 자기가 직접 사용하기도 해요.
거기에 더해 성격도 아주 싹싹하고 붙임성도 좋답니다. 어른들에게 인사도 바르게 잘하고 동리의 어린애들에게도 상냥하게 대해줘서 인기가 아주 좋아요. 산책이라도 나갈라치면 둘째형은 마주치는 이들마다 인사하느라 시간이 다 가지요.
동무들도 아주 많고 동생들한테도 잘 대해주고. 큰형만큼 크지는 않지만 떡 벌어진 덩치도 썩 훌륭한 멋진 청년이야요.
작은형은 마음 씀씀이도 다정하고 허우대도 훤칠하니 잘 생겼지마는 꼬리가 짧똥하니 잘린 모양새를 하고 있어요. 태어났을 때부터 그랬다는데 딱히 이상스레 보이지는 않으니 다들 그러려니 하지요. 작은형도 그다지 상관하지 않아요. 난 얼굴이나 허우대가 작은형과 몹시 닮았는데 꼬리를 보면 한눈에 분간이 가지요.
작은형도 식구들을 몹시 살뜰하게 보살피는 터라 맘 속에 큰 책임감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예전에 동리에서 유명한 불량배가 있었는데 자꾸 누나들에게 수작을 걸고 몹시 귀찮게 굴었더랬지요. 그러기만 했으면 다행이라고 할 텐데 누나들이 화를 내니까 손찌검을 했다지 뭐야요. 이런 몹쓸 고양이가 있나요.
큰형이 몹시 화를 내면서 나갔는데 무척 크게 다쳐서 들어왔어요. 그 불량배는 문희형보다도 크고 힘도 엄청나게 셌거든요. 그래도 큰형이 당하기만 한 것은 아니어서 불량배도 다쳤는지 한동안 보이지 않고 잠잠했는데, 문희형이 다쳐서 집에서 요양하고 있는 동안 우리는 정말 너무 겁이 났어요. 큰형이 다 낫지도 않았는데 그놈이 또 쳐들어오면 어쩌나 하고 말이야요.
아니나 다를까 큰형이 다쳐서 싸우지 못하는 틈을 타 또 그놈이 건들거리며 우리 집에 왔지 뭐야요. 그런데 작은형이 담장 근처에서 지키고 있다가 욕을 하고 쫓아냈어요. 어찌나 목청이 좋고 입이 험하던지 그놈이 기겁을 하고 도망을 갔지 뭐야요. 작은형 목청이 좋은 건 진즉에 알고 있었는데 (청소기 돌아가는 소음보다 작은형 목소리가 더 크거든요.) 욕을 그렇게 잘하는지는 아무도 몰랐기에 다들 놀랐지요. 그런 육두문자는 참말로 처음 들어 봤어요.
그렇게 불량배를 쫓아낸 덕에 곤희형은 그렇게 욕을 하고도 어머니께 칭찬을 들었지요. 그 이후로도 작은형은 방심하지 않고 청소기를 틀어놓은 채로 복식호흡을 하고 두성과 흉성을 번갈아 내면서 목청을 가다듬는답니다.
어렸을 땐 작은형이 무척 잔망스러웠다고 하는데 참으로 의젓한 청년이 되었지요. 난 형들이 있어서 참말로 든든해요.
작은누나이자 막내 누나는 이름이 김막례고요. 아까 내가 우리 큰누나가 인물이 참 곱다고 했지마는, 작은 누나는 진짜 눈이 부시게 곱지요. 우리 동리에서, 아니 아마 세상에서 가장 고울 지도 몰라요.
우리 집 근처에 새로 자리 잡은 고양이가 있는데, 여기 오기 전에는 서울에서 사람하고 같이 살았다고 해요. 만날 서울은 어떤데 여기는 어떻고 하며 뻐겨대니 난 그이가 썩 맘에 들진 않지마는, 그 고양이가 막례 누나만큼 예쁜 고양이는 서울에서도 못 봤다고 했어요. 서울은 엄청나게 큰 곳이라고 알고 있는데 거기에서도 작은 누나만큼 고운 이는 없다고 하니 세상에서 제일로 잘난 게 맞겠지요.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머리가 참 작다는 건데, 머리뿐만 아니라 몸도 참 작아요. 원체 작게 태어나기도 했고 너무 약해 잘 먹지도 못해서 그렇다고 해요. 어렸을 땐 문희 형의 반이나 될까 말까 했다고 들었어요.
고양이는 머리가 커야 잘났다고 하니 머리통이 조그마하면 못났다 소리를 들을 법도 한데, 원체 예쁘니 아무도 그게 흠이라고 안 하지요.
거기에 심성은 얼마나 고운지, 천사가 따로 없지 뭐야요. 내가 어렸을 때 어머니가 우리를 키우랴, 영역 살피랴 몹시 분주하였는데 막례누나가 나랑 내 누이들을 보살펴 줬어요. 우리랑 놀아 주고 울면 달래 주고. 거기에 우리가 누나 먹을 것을 탐내도 다 양보해 줬어요.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저렇게나 작은 막례 누나 입에 들어갈 것을 탐내다니 나도 참 철이 없었구나 싶지만 작은 누나는 지금도 맛있는 게 생기면 우리 먼저 먹으라 하지요.
막례 누나는 성미도 조용하고 잘 다투지도 않지마는 사냥을 엄청나게 잘한답니다. 허약해 보이는 데다 힘도 세지 않은 누나가 어떻게 그렇게 사냥을 잘하는지 모르겠어요.
그런데 막례 누나가 사냥감을 가져오는 것을 우리 식구들은 마뜩잖아하지요. 왜냐면 막례 누나가...
아유, 이걸 어떻게 설명한담. 사냥감만 물고 있으면 미친 고양이처럼 굴기 때문이야요. 아무도 자기 사냥감을 달라고 하지 않는데 (아. 달라고 하는 이가 있기는 하네요) 눈에 불을 세우고 늑대처럼 으르렁댄답니다.
어찌나 서슬이 퍼렇고 매섭게 구는지, 어머니조차도 말리지 못해요. 눈은 미친이가 광증이 난 것처럼 번들거리고. 천사 같던 작은 누나가 사냥감만 가지고 오면 그렇게 돌변해서 싸나웁게 굴어대니 식구들이 좋아할 리가 있겠어요.
저번에는 대체 어떻게 잡은 건지 자기보다 큰 들쥐를 사냥해 왔는데 (정말 그렇게 큰 쥐는 처음 보았답니다) 어찌나 무섭고 오금이 저리던지 나는 몰래 숨어 있었지 뭐야요. 소심한 다른 누이는 눈물보가 터지고 말았지요.
막례 누나가 그리 사냥을 잘하는 것은 부러운데, 사냥한 것을 우리한테 들이대지는 않았으면 좋겠어요. 정말 너무 무섭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