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적지 1.어른의 여행

바이크를 타게된 이유

by 여끄니


봄이 되었다. 바이크를 잠에서 깨울 시간. 주말 오전 오랜만에 바이크에 시동을 걸었다. 이제 날씨가 풀려서 바이크를 타고 동네를 돌아다닌다. 보통 약속이 없는 주말에는 혼자서 바이크를 타고 동네 도서관이나 카페를 가거나 여행도 하고 캠핑을 다닌다. 바이크를 타고 나에게 평범하지만 특별한 삶이 시작되었다. 조금 느리지만 행복한 나의 삶이.

나는 슈퍼커브라는 바이크를 타고 있다. 슈퍼커브는 바이크보다 스쿠터에 가까운 110cc 배기량의 작은 오토바이다. 스쿠터 같은 이 바이크는 언더본 바이크라고 한다. 자세한 뜻은 모르지만 수동으로 조작하는 기어가 있어서 나름 바이크라고 불러주는듯하다. 슈퍼커브의 레트로하고 감성적인 디자인 때문에 이 바이크를 타고 있다. 주변 사람들에게 내가 바이크를 탄다고 하면 다들 놀라는 반응이다. 나를 아는 사람들은 조용하고 차분한 내 성격에는 바이크가 어울리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 같고 나를 잘 모르는 사람은 생긴 것과는 다르게 바이크도 타네?라는 반응인 것 같다. 내가 봐도 바이크를 타는 나를 상상하면 좀 이상한 것 같다. 그래서 요즘은 딱히 사람들에게 바이크를 탄다고 말하고 다니지 않는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긴했다. 나 왜 바이크를 타고 있는 거지...? 지금까지 바이크를 타며 여행하고 경험한 것들을 떠올려봤다. 떠오른 것들을 글로 써보며 다시 그때로 출발해 보려고 한다.



스물여덟 살, 첫 직장에서 2년 가까이 일하고 그만두었다. 그때를 생각해 보면 번아웃이나 우울증 비슷한 거였지 않을까. 뭐 다시 생각해보면 그렇게까지 힘들었었나 생각이 들긴 하지만 일기까지 쓰면서 부정적인 감정을 계속 배출한 거 보면 힘들긴 힘들었던 것 같다. 출근하며 인사를 하자마자 내 이름을 불러대는 상사들 때문에 회사 문을 열고 들어가는 것도 무서웠고 웃음이 많았던 내가 웃음을 잃어버렸다. 처음 겪어보는 정신적 피로에 일단 이곳을 벗어나야겠다고 생각했다. 가끔은 힘듦을 맞서지 않고 인정하고 회피하는 게 좋은 선택일 때가 있다. 이때 나는 솔직히 회피를 선택했다. 난 지금도 이 선택이 내 인생 베스트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나는 멘탈이 강한 사람인 줄 알고 살아왔는데 정신적으로 힘들다고 하니 믿어지지 않았던 것 같다. 가족들과 친구들에게 힘들어서 쉬겠다고 하니 ”그래 좀 쉬어“라고 말해주었다. 이때는 이렇게 말해주는 사람이 주변에 있어서 너무 다행이고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회사 팀장님에게도 솔직히 쉬고 싶다고 말했더니 절대 안 된다고 한다. 너를 위해서 그만두고 이직을 하더라도 지금 바로 해야지 쉬면서 이직하긴 어려우니 일단은 회사를 계속 더 다니라고 한다.(퇴사할 때는 너무 솔직하면 안되는 걸 말하고 나서 알아버렸다.) 그만두겠다고 했지만 며칠간 회유는 계속 이어졌다. 그런데 힘들 때 쉬는 게 그렇게 어려운 건가? 회사를 나와 백수가 되었다. 중소기업 근속 혜택인 내일채움공제까지 포기하고 회사를 나왔다. 그래도 어느 정도 일을 해서 돈이 조금 있는 백수가 됐다. 뉴스에서 보던 쉬었음 청년이 나라니 이상하다. 일단 3개월만 쉬어보자 생각하고 쉬었다. 학교를 다니고 퇴사하기 전까지 무언가를 계속 해왔는데 이렇게 직책 없이 하루 24시간을 온전히 내 시간으로 써야 한다는 게 어색했다. 일단 별다른 계획은 없었고 남들이 하는 것처럼 여행을 길게 가고 싶었다. 시간도 있고 돈도 있겠다 어디로 떠날지 여행 계획을 세웠다. 오래오래 떠나는 여행으로 제주도 캠핑을, 멀리멀리 떠나는 여행으로 태국 여행을 계획하였다.


이때까지도 내 계획에 바이크를 탄다는 건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제주도로 캠핑을 하러 차를 끌고 제주도에 갔다. 한 달 가까이 캠핑하고 올레길도 걸으면서 자연과 함께 힐링했다. 여행 첫 일주일은 부모님과 함께 캠핑을 하고 부모님은 먼저 집으로 돌아갔다. 혼자 남아 제주도를 여행하며 제주도 동쪽에 있는 우도를 구경하러 배를 타고 들어갔다. 우도 안에는 백패킹의 성지로 유명한 비양도라는 곳이 있다. 여기서 캠핑을 할 건 아니었지만 백패킹의 성지라고 하니 구경하고 싶어서 비양도를 구경하러 들어갔다. 비양도 입구에서 그린 색 헌터 커브를 끌고 캠핑을 하러 온 분을 보았다. 그때는 그 바이크가 뭔지도 몰랐지만 초록색인 바이크가 기억이 나는 게 아마 혼다의 헌터 커브였던 것 같다. 멋있고 신기했다. 이전까지 나는 바이크에 대해 아무 생각이 없었다. 타는 사람이 싫지도 않고 좋지도 않고 그냥 나와는 관계가 없다고 생각했다. "와 여기까지 바이크를 타고 와서 캠핑도 할 수 있구나.. 대단하다..!" 처음으로 바이크 타는 사람이 멋있다고 생각하면서 백패킹의 성지에 들어갔다. 비양도의 넓은 노지와 바다가 백패킹 텐트들과 어우러져 멋진 풍경을 만들고 있었다. 백패킹의 성지라 불릴만했다. 언젠가 비양도 캠핑하러 와야겠다 다짐하며 비양도를 나왔다. 비양도를 나오면서도 아까 봤던 바이크를 타고 캠핑하러 온 사람이 생각났다. 캠핑의 성지를 보고도 바이크가 생각나는 거 보면 아주 인상이 깊었나 보다. 왜냐하면 캠핑을 차로 다니는 게 아니라 바이크로 다닌다는 게 신기했던 것 같다. 그렇다고 내가 해보고 싶다는 건 아니었다. 단지 그 사람이 멋있어 보이기만 할 뿐.


그런데 내 인생에 바이크가 시작된 건 이때였던 것 같다...



한 달 가까이 제주도에 다녀온 후 다음 여행은 태국 해외여행이었다. 나 같은 백수 친구와 함께 일주일 태국 여행을 가기로 했다. 해외여행은 나름 몇 번 다녀와봤는데 일주일씩이나 다녀온 적은 없었다. 시간이랑 돈이 있는 게 이렇게 좋은 거였다니 직접 경험해 보니 확 와닿는다. 동남아는 오토바이의 천국이다. 도로에 많은 차들과 오토바이가 지나가는 걸 보면 아주 신기하다. 오토바이는 도로 위 물고기들 마냥 물 흐르듯 자연스럽다. 제주도 때와 마찬가지로 나는 오토바이에는 관심이 없었다. 이때 조금만 관심 있었다면 사진을 마구 찍고 왔을 텐데. 아쉽다. 길었던 제주도와 태국 여행을 마치고 나는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여행을 끝내고 오니 이제 시간과 돈이 조금 남은 백수가 됐다. 이제 새로운 걸 해보고 싶었다. 그러다 여행 중 봤었던 바이크들이 생각났다. 비양도에서 봤던 바이크와 태국에서 무의식으로 구경한 바이크들이 떠올랐다. 나도 바이크를 끌고 캠핑이 가보고 싶어졌다. 보통 여행을 다닐 때는 그냥 맛있는 거 먹고 좋은 것 경험한 게 다였다. 여행이 삶에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는데 이번엔 달랐다. 여행하며 경험했던 것들이 나에게 자극이 된 덕분에 나도 바이크를 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직업까지 포기하고 직접 번 돈으로 다녀온 여행, 심지어 내 삶에 영향까지 주었다고 생각하니 처음으로 어른의 여행을 다녀온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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