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nnette Jul 26. 2024

첫사랑이라는 건 그렇다.

그 사람으로 시작해 나로 끝나는 경험이다.

완전한 완결을 내리는 건 그 사람이 아닌 나 스스로다.


나는 내가 이 모든 것들을 다 잊고, 드디어 떠날 용기를 가지게 되더라도, 

나의 일부분은 그 기억과 함께 잠들어있기를 바란다. 


그 사람과 나눠 가진 짧은 추억보다도, 그저 그를 만났다는 경험 자체가 너무 소중하니까.


그건 아직 쌀쌀하던 날씨에 이불 밑에서 손바닥만한 화면을 붙잡은 채로 그의 말 한 마디에 혼자 울고 웃고 하던 날부터, 

그 사람 덕분에 사랑을 논하는 세상의 수많은 글과 하나 되어 느끼고 깊어져가던 기억으로 완성되는 경험이다.


세상에 아무리 좋고 부처같은 사람이 많다고 하더라도, 그만큼이나 나의 세계를 확장시켜주는 사람은 없겠지. 

그만큼 나에겐 그 사람이 주는, 주었던 감정이 너무 거대해서 무서울 정도인데. 


내가 앞으로 어떤 삶을 살게 되고, 시간이 지나면서 가치관이 어떻게 변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지만 

내 영혼의 일부는 언제나 23년 겨울에, 그리고 부암동으로 향하는 그 길목에 잠들어 있을 것이다. 


원래... 첫사랑이란 건 그런 거니까. 


첫 사랑.

처음 사랑해 본 사람. 


그래서인지 내 마음이 버려진 뒤에도 그 사랑을 지키고 싶어서 뭐라도 주고 싶은 심정에 나 스스로를 가혹하게 대하면서 아등바등 애썼다. 반 년간은 모든 지물을 소거한 듯 고통 뿐이었고, 텍스트로만 보았던 뼈에 사무치는 아픔이라던가, 가슴이 찢어진다는 그런 표현들이 정말 피부로 직접 느껴지고 이해가 가더라.


그렇게 고통스러운 건 태어나서 처음이었는데,

그 사람을 만나며 느꼈던 행복과 충만감도 인생 처음 가져본 감정이었기에.

그래서 신기했다.


처음으로 나의 세상을 이만큼이나 확장시켜 준 사람. 


그 겨울의 기억을 여름에 꺼내보니 참 시리다. 

온도의 변화가 손등의 피부로 느껴진다. 


그런 그 사람만은

내게 사랑을 가르쳐주고 떠나는 사람이 아니길 바랐지.

우리는 너무 일찍 만나버렸다.

어쩌면 다를 수도 있었을까…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냐며 엉엉 울던 1월의 내 모습

말없이 눈물만 뚝뚝 흐르는 그의 얼굴과

그 와중에 떨리는 손으로 내 눈물을 닦아주던 그의 손이 

소주 한 병 마신 귀갓길에 영사된다. 


첫눈 맞으며 같이 노래부르고

박효신을 틀고 광화문을 누비던 우리 모습이

내 뺨을 만지던 당신의 손과 이른 아침 이불을 뺏고 장난치던 모습도 

째지게 선명하게 여름 종로 한복판에 영사가 된다 


그래. 사실은 그가 보고싶다

이마저도 아직 그를 내 인생에 남겨두려는 온전한 나의 선택이겠지만... 

작가의 이전글 잔여량 18%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