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날틀 Flying Board Nov 07. 2022

[일상] 보석사 : 금산의 숨겨진 단풍 명소

아... 아버지, 어머니


어머니께서는 아주 오랜 세월 음식을 만들어 오셨습니다. 물론 이 세상 모든 어머니께서 가족들을 위해 음식을 만드시지요. 저의 어머니께서는 가족들뿐 아니라 다른 분들을 위해 아주 오랜 세월 음식을 만들어 오셨습니다. 제가 초등학교 시절(저희 때는 국민학교였죠)에는 하숙을 하시며 대학교 학생들의 밥과 빨래를 해 주시고 돈을 버셨습니다. 그때 당시 저희 아버지는 중동에서 모레 바람과 싸우시며 힘겹게 외화를 벌고 계셨죠. 제가 대학교를 들어가던 시절에 저희 어머니께서는 공장에서 일하시는 분들을 위해 음식을 만드셨습니다. 구내식당을 운영하시며 아주 많은 분들께 음식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음식을 허투루 만드시는 일이 없었습니다. 구내식당이어서 비싼 값을 받지도 못하시면서도 항상 좋은 재료를 이용해 당신 가족들 먹을 음식을 준비하듯 정성껏 음식을 만드셨습니다. 맛이요? 말해 무얼 하겠습니까? 정말 최고의 맛이었죠. 그래서 하숙을 하실 때는 술 좋아하는 대학생들도 밥은 거의 빠지지 않고 먹었고, 구내식당을 하실 때는 근처의 수많은 식당들의 시기를 받으며 근로자들을 흡수하셨습니다.


제가 저희 어머니 음식 이야기를 불현듯 꺼낸 이유는 '인삼' 얘기를 꺼내기 위해서입니다. '초복', '중복', '말복'에는 당연하시다는 듯 항상 '삼계탕'을 끓이셨습니다. 닭 수백 마리를 사다 하루 종일 삼계탕을 만드시고는 하셨죠. 삼계탕에는 인삼이 들어가잖아요? 보통 삼계탕 전문점에서도 '인삼'은 냄새 정도나 맡을 정도로 한두 뿌리 넣어주고 말지만, 저희 어머니께서 만드시는 수백 마리의 삼계탕은 진짜 인삼이 듬뿍 들어간 아주 정성스러운 삼계탕이었습니다. 이 인삼을 어디서 구해 오시느냐? 바로 '충청남도 금산'입니다.

맛있는 삼계탕을 만드시기 위해 어머니는 굳이 수원에서 금산까지 아버지와 함께 차를 타고 달리셨습니다. 2시간 30분을 달려 금산까지 가셔서 질 좋은 인삼을 사 오셔야만 했습니다. 아무리 그냥 근처 시장에서 사시라고 말씀을 드려도 '소 귀에 경 읽기'였습니다. 저희 어머니의 고집, 특히 음식에 대한 고집은 그 누구도 꺾을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코로나의 위기로 연로하신 부모님께서는 더 이상 식당을 하시지 않습니다. 더 이상 금산으로 인삼을 사러 갈 일은 없을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저희 어머니께서는 이제 당신 자식들을 위해 금산을 가십니다. 당신 자식들 맛있고 건강한 인삼을 먹여야 한다며, 연로하신 몸을 이끌고 굳이 금산을 가시겠다고 하십니다.



아!!

어머니... 어머니... 어머니...



여든 살이 넘으신 아버지께서는 이제 운전을 두려워하십니다. 낯섭니다. 제 기억 속 아버지의 모습은 항상 강인한 분이셨는데, 이제 운전을 두려워하시며 막내아들을 찾습니다.



아!!

아버지... 아버지... 아버지...



지난주 사랑하는 아내와 부모님을 모시고 충청남도 금산에 다녀왔습니다. 지난 25년간 식당일 때문에 여행 한 번 제대로 가 보시지 못했던 우리 불쌍한 부모님... 이제 식당을 안 하시니, 자랑스러워하시는 아들과 이곳저곳 여행을 좀 다니셨으면 하는데, 이놈의 코로나가 우리의 여정을 막습니다.


비록 여정의 목표가 인삼을 구입하는 것이지만, 모처럼 떠나는 다소 먼 길이기에 인삼만 구입해서 올라오기 너무 아쉬울 것 같았습니다. 고마운 아내가 먼저 "근처에 단풍 구경할 곳이 있으면 모처럼 내려간 김에 모시고 다녀오자."고 제안을 해 주었습니다. 아무리 잘 챙겨주신다 하더라도 아내에게는 어렵고 불편할 수 있는 시부모님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상 시부모님을 친부모님처럼 배려해 주고 챙겨주는 아내가 너무 감사합니다. 때로는 "나는 과연 아내가 내 부모님께 하는 것만큼 나는 과연 장인, 장모님께 잘 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하고는 합니다. 대답은 항상 "아니!!"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아내에게 장인, 장모님께 죄송한 감정이 마음 한구석에 항상 자리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2시간 30분을 달려 도착한 '충청남도 금산'. 항상 부모님들만 다니시던 곳이라 저는 이곳이 처음입니다. 아내가 불꽃 검색을 통해 발견한 금산에 위치한 '보석사'



시골 산속에 위치한 보석사는 작고 소박한 절입니다.

보석사로 가는 좁은 길은 이미 주황색, 붉은색, 노란색으로 옷을 갈아입은 나무들로 아름답게 물들었습니다.

사랑하는 아버지, 어머니. 한 평생을 자식들 뒷바라지하시느냐고 막내아들이 항공사 기장인데도 해외여행 한 번 못 다녀오신 부모님... 못난 불효 자식 놈이 해드릴 수 있는 것은 이렇게 사진 한 장 담아드리는 게 전부입니다. 항상 젊고 강하셨던 아버지는 이제 80이 넘으신 주름 가득한 할아버지가 되어 버렸습니다. 여전히 티격태격 자주 싸우시지만, 그것이 서로를 사랑하는 그들만의 방식임을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서로를 사랑하시니 이렇게 자식놈이 들이미는 카메라 앞에서 다정한 포즈를 취하시는 것이겠죠.

못난 막내아들놈과 그놈에게는 너무도 과분한 아내 그리고 사랑하는 부모님들과 함께 보석사의 단풍 속에 빠져봅니다.

이북 출신으로 형제 한 명 없이 혈혈단신으로 남한으로 피난 내려와 사랑하는 어머니를 만나 가정을 꾸리시고 3명의 자녀를 멋지게 길러 내신 자랑스럽고 사랑하는 부모님의 뒷모습. 매번 티격태격하시는 부모님... 어려서는 그런 모습이 무서웠는데, 이제는 그런 두 분의 모습이 귀엽고 사랑스러워 보입니다.

막내아들과 함께 나선 단풍놀이가 마냥 신나신 어린아이 같은 부모님... 진작 이렇게 모시고 다닐걸... 하는 가슴 아픈 후회가 밀려옵니다.

길이 너무 예뻐서, 길을 둘러싼 단풍이 너무 예뻐서, 이 아름다운 길을 부모님들 가슴속에 심어 드리기 위해서 가던 길을 멈춥니다.

70이 넘으셨지만, 여전히 예쁘신 우리 어머니. 어머니 때문에 단풍의 아름다움이 눈에 보이지 않네요.

어느 것이 단풍이고 누가 사람인지 구분하기 힘든 아내님. 외모만큼이나 마음도 고운 과분한 여자가 저와 함께 살아주고 있습니다.

보석사 앞마당에서 1,0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자리를 잡고 생존해 오신 터줏대감 '은행나무'.

가늠할 수 없는 그 긴 시간만큼이나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굵고 거대한 나무입니다. 우리는 기껏 80년, 90년을 살고 한 줌 흙으로 돌아가겠지만, 이 거대한 은행나무는 80년, 90년 후에도 이곳에 서서 한 줌 흙으로 돌아가는 우주의 먼지 한 톨보다 못한 인류를 지켜보고 있을 것입니다.

터줏대감 앞에서 우리들의 발자취를 남겨봅니다.

천년, 만년 더 인류를 굽어살필 은행나무에게 작은 소망을 한낱 끈에 담아 억지로 떠 안겨주고 왔습니다. 영엄하신 은행나무께서 이 작은 미물의 소망도 들어주지 않는다면 꽤 실망스러울 것 같습니다.


보석사는 작지만 꽤 역사가 깊은 사찰입니다. 잠시 보석사에 걸려 있는 설명 현수막 내용을 옮겨 보겠습니다.



'충청남도 금산군 남이면 진악산 자락에 자리하고 있는 보석사는 통일신라시대(헌강왕 11년, 서기 885년)에 조구 선사가 창건한 유서 싶은 사찰입니다. 한때는 31본산의 하나로서 전라북도 일원의 33개 말사를 통괄하기도 했습니다.'



무려 1,137년 된 역사 깊은 사찰입니다. 그 장구한 시간에 비하면 사찰이 아담하고 소박하지만, 사찰에서 느껴지는 평온하고 마음을 차분하게 만들어주는 기운은 이 사찰의 깊이를 가늠하게 해 주십니다.

한국 전통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단청.

오랜만에 만난 '약수'. 슈퍼에서 파는 생수나 수돗물이 아닌 자연에서 흐르는 맑은 약수를 만나 많이 반가웠습니다.

유독 꽃을 좋아하시는 어머니. 들국화와 형형색색 단풍에 둘러싸인 아름다운 보석사에서 기억에 오래 남을 즐거운 추억을 가슴속에 많이 담아오셨기를 빕니다.





아버지, 어머니 앞으로 두 분 모시고 더 자주 전국 방방곡곡, 전 세계 이곳저곳 다녀볼게요!

건강하세요! 사랑하고 또 사랑하고 감사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일상]여의도 불꽃 축제 명당을 찾아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