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날틀 Flying Board Nov 12. 2022

[일상] 코로나 후 세 번째 맞이한, 저물어 가는 가을

남산 그리고 몰또


2022년의 가을이 저물어 가고 있습니다. 코로나가 아니었다면 지금쯤 유럽의 어딘가 혹은 남태평양의 어딘가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을 테지만, 코로나로 모든 것이 바뀌어 버린 세상에서는 그럴 수가 없네요.


코로나 사태가 터진 후 맞이하는 세 번째 가을. 우주적 관점에서 보면 미세먼지의 원자 보다 작은 존재인 인간. 그 인간의 삶은 긴 듯 보이지만, 역시 우주적 관점에서 보면 눈 한 번 깜빡이는 시간보다 짧을 텐데... 그 짧은 인생에서 3번의 가을을 아름다운 추억을 쌓지 못하고 보내는 게 못내 아쉬워 사랑하는 아내와 어디라도 가보자며 길을 나섰습니다.


남산 산기슭 끄트머리에 위치한 명동성당. 대한민국 민주주의 살아 있는 역사이자, 힘없는 자들의 안식처가 되어준 따뜻하면서 가슴 아픈 장소. 부끄럽게도 저는 그 성스러운 곳을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었습니다. 항상 영화 속 한 장면에서만 보았던 곳이죠. 명동성당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곳이 있다고 아내가 예전부터 이야기했었습니다. 그곳은 바로 '몰또 이탈리안 에스프레소 바' - MOLTO라는 루프 탑 카페.

몰또에서 바라본 명동성당의 모습. 오전에 가면 역광이어서 예쁜 사진을 찍기 쉽지 않습니다. 적벽으로 쌓아올린 성스러운 장소를 단풍이 감싸고 있습니다. 유서 깊은 유럽의 성당들과 비교해도 하나도 꿀릴 것이 없는 아름다운 성당. 성당을 바라보며 괜스레 마음이 경건해짐을 느낍니다.

몸은 대한민국에 있지만, 마음만은 유럽의 역사 깊은 도시에 와 있는 심정으로 사진을 담아 봅니다. 역사 깊은 성당과 에스프레소. 지금까지 여러 유럽 도시들을 방문할 때마다 해오던 장면을 대한민국에서도 재현해 보았습니다.

간단한 음식도 먹을 수 있습니다. 가격은 조금 비싸기는 하지만 맛은 꽤 괜찮았습니다.

못생겼지만 몰또에서 명동성당을 배경으로 점잖게 인증 샷을 남겨 보았습니다.

명동성당에서 바라본 몰또의 모습은 이렇습니다. 이미 사람들로 북적이네요. 오전 시간에는 명동성당에서 몰또 방향으로 순광이어서 보시는 것처럼 쨍하니 사진이 밝고 예쁘게 나옵니다. 몰또에서 명동성당의 아름다운 모습을 담고 싶으시다면 가급적 해지기 전 명동성당에 순광이 내리쬘 때 방문하시는 게 좋습니다.

대한민국에서 유럽에나 있을 법한 역사 깊고 멋진 성당을 볼 수 있었다니... 멀지도 않은 곳인데 더 자주 찾아올 걸 그랬습니다.


명동성당에도 가을은 찾아왔습니다. 나무들이 옷을 갈아입게 만드는 우주의 원리와 그 원리에 순응하며 때가 되면 멋진 옷으로 갈아입는 나무들의 조화... 자연이 부리는 마술을 보면 신기하기도 하고 겸손해지기도 합니다.




명동성당을 나와 본격적으로 남산을 오르기 시작합니다.

울긋불긋 다채로운 색상으로 물든 남산의 모습. 평일 낮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많은 편이었습니다. 저희처럼 남산의 단풍을 본격적으로 구경하기 위해 나선 사람들도 많았고 마실 나온 동네 어르신들도 많았습니다. 식사 후 남산 산책로를 따라 소화 겸 가볍게 걷고 있는 양복 입은 직장인들도 많이 보였습니다. 직장 출근해서 점심 식사 후 남산 산책이라... 좋은데요? ㅎㅎ

다채로운 나뭇잎에 햇볕이 내리쬐면 이렇게 화사한 아름다움을 선사합니다. 초록은 더욱 짙게, 붉은색은 더욱 붉게, 노란색은 더욱 노랗게... 나뭇잎은 추운 겨울이 다가오며 자신의 생을 잃고 색을 바꿉니다. 그들은 자신의 죽음을 이렇게 다채로운 색으로 아름답게 꾸밀 줄 아는 예술가들입니다. 우리는 그들의 죽음에 감탄하고 즐거워하며 그들의 죽음을 우리들의 미소와 함께 카메라에 담습니다. 아이러니하지만 이게 인생이고 이게 지구 위에서 함께 살아가는 생명들의 조화겠지요.

남산 산책로 전망대에서 바라본 서울 N 타워의 모습. 가을 산은 멀리서 봐야 가을의 정취를 더 깊게 감상할 수 있습니다. 미켈란젤로가 환생한다 해도 이렇게 다채로운 색으로 빛을 발하는 자연의 모습을 재현해 낼 수는 없을 것입니다.

꽤 먼 길을 걸어왔음에도 지친 기색 하나 없이 씩씩하게 중력을 거스르며 앞으로 나아가는 아내의 뒷모습.

도성과 단풍의 모습. 먼 옛날 저 도성을 지켰을 선조들도 이렇게 아름다운 가을의 정취를 즐겼을까요?


세계 여러 나라, 특히 유럽의 여러 나라 여러 도시들을 다니며 그들의 멋진 유적들을 보며 감탄했었습니다. 왜 우리나라에는 이렇게 멋진 유적과 자연이 없냐며 그들의 나라를 부러워했었죠. 지금 보니 참 바보 같았던 것 같습니다. 그들은 그들의 아름다움이 있고, 우리 대한민국에는 대한민국 만의 아름다움이 이렇게 있는데 말이죠. 제가 너무 우리나라 이곳저곳을 여행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이렇게 가까운 서울 한복판에 이렇게 아름다운 곳이 있었는데, 그것도 모르게 살았던 걸 보니 말입니다.

정상이 거의 목전입니다. 고목들의 화려한 단풍이 마지막 하이라이트를 장식해 주는 듯합니다. 단풍 구경을 나온 한국인 보다 외국인 관광객이 더 많은 것을 보니 남산은 서울의 관광 명소가 분명한 듯합니다.

못생긴 얼굴인데... 눈에 힘까지 줬군요.

드디어 정상에 도착합니다. 화려하게 붉은 단풍이 관광객들을 반겨줍니다. 나중에 전원주택 지으면 단풍나무를 아주 많이 심어볼 생각입니다. 단풍나무와 은행나무 그리고 벚나무의 조합으로.

등산하고 먹는 김밥 보다 맛있는 김밥은 머리 털 나고 먹어 본 적이 없습니다. 원래 맛있는 '명당 김밥'인데, 이 맛있는 김밥을 남산 꼭대기까지 걸어가서 먹으니, 그 맛은 말로 표현이 불가능하네요. 아!! '명당 김밥'이 궁금하신 분은 아래를 클릭하세요. 제가 운영 중인 네이버 블로그입니다.


https://blog.naver.com/flying_board/222320336214


내려오는 길은 아내도 저도 힘들어서 버스를 탔습니다. 중간에 '백범광장' 역에서 하차했습니다.

길을 따라 수북이 쌓인 노란 은행잎. 초록색과 붉은색, 노란색으로 물든 서울의 길은 세상 어디에 내놔도 크게 뒤처질 것 같지 않습니다.

가을 여자 아내님.

백범광장은 이 구도의 사진을 담아보고 싶어서 굳이 방문했습니다. 인터넷에서 떠도는 이 구도의 사진을 보았는데 느낌이 너무 좋아서 비슷한 사진을 찍어 보고 싶었는데... 확실히 사진사의 수준 차이가 크다 보니 제가 찍으면 이런 평범한 사진밖에 나오지 않네요. ㅎㅎ

백범 김구 선생님. 이 분이 테러를 당하지 않으셨다면 대한민국의 역사는 180도 달라졌을 텐데... 이 또한 대한민국의 운명이고 대한민국에서 지금 이 순간 살아 숨 쉬는 우리 모두의 운명이겠죠. 바꿀 수 없는 운명이라면 즐겨야죠!!




코로나 사태가 터진 후 세 번째 가을이 흘러가고 있습니다. 뒤돌아 보니 작년 가을은 왜 올해처럼 조금 더 활발히 활동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살짝 남습니다. 코로나도 지금의 회사 상황도 모두 흘러가는 강물처럼 쉬지 않고 흘러가는 운명의 작은 한 부분이거늘, 너무 조심했고 너무 겁먹었고 너무 소심했던 것 같습니다. 조금 늦게 깨닫기는 했지만, 그래도 운명을 받아들이고 삶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해 볼 수 있게 되어서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겨울이 다가옵니다. 올겨울은 작년 겨울보다는 조금 더 화끈하게 보내봐야겠습니다. ㅎㅎ

매거진의 이전글 [일상] 보석사 : 금산의 숨겨진 단풍 명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