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용이 쓴 토박이말, 가슴에 박힐 듯 아름다워
도체비꽃이라는 말 들어 보셨나요? 도체비는 도깨비의 제주 방언입니다. 토양의 산성도에 따라 시시각각으로 그 색이 변하는 수국을 제주사람들은 도체비 같은 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름답기로는 며느리새라는 명칭도 있어요. 며느리새는 시어머니 밥상 차릴 시간만 되면 울어 제낀다고 합니다. 한 며느리가 시집살이에 지쳐 뒷산 밤나무에 목을 매 죽었는데 그 영혼이 며느리새가 되었다고 지용은 적었습니다. 소월이 죽은 누이를 떠올리며 새가 됐다고 한 것과 비슷하네요. 여튼 두 표현 모두 한국적 정서가 담뿍 담겨 있습니다.
충청도 옥천에서 태어난 작가 정지용은 토박이말을 아주 사랑한 것 같습니다. 지용은 <백록담>이라는 시집을 발표했는데 정겹고 구수한 토박이말이 많이 수록돼 있습니다. 이를테면 잔파나 쪽파를 '실파'라고 표현한 것도 있었어요. 이렇게 같은 단어를 두고도 다양하게 표현하는 것을 보면서 상상력이 쑥쑥 자라는 것 같습니다. 실처럼 얇다고 실파라고 부르다니! 지용의 시 중 가장 대중적으로 알려진 '향수'에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 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라는 구절이 있지요. 역시 '실개천'이라는 표현이 등장하는데 뭇 생명들이 자라고 시골 아이들은 한여름에 피서를 하고 실개천 돌맹이에 햇살이 반사되고 개울물 소리가 정답게 속삭일 것 같은 정경이 마음 속에 그려집니다.
지용은 귀뚜라미도 귀뚜리라 씁니다. 삽살개는 삽사리로 쓰지요. 귀뚜리 소리는 귀뚜라미보다 더 사무칠 것 같고 삽사리는 털이 더 복실복실할 것 같지 않으십니까? 아름다운 토속어들이 일상에서 더 많이 쓰이길 바랍니다. 사회적 의미를 잃어 그 뜻을 짐작할 수 없을 정도가 아니라면 우리말의 다양성을 더 살리고 어감을 풍부하게 하는 토속어의 사용이 많아져야 하겠습니다.
지용은 충북 옥천 사람인데 일본에 유학했다 돌아와 광복 후에는 이화여자대학교 교단에 섰습니다만 6.25전쟁 시기 월북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념은 다르지만 이북 땅에서도 푸른 별을 바라보며 찬물에 씻긴 사금같은 은하수를 바라보셨으리라 생각합니다. 지용 시인의 서정이 우리 가슴에 별처럼 박힌 것은 이러한 토속적 언어 표현이 아닐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