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세상에 태어났을 때

아주 어릴 때 나는 그랬었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많지만 가장 먼저 나의 일생을 돌아보고 싶다. 나의 일생을 돌아보면서 잘한 일, 아쉬운 일, 과거와 지금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관찰자의 눈으로 나를 본다. 과거를 돌아보며 지금까지 가지고 있던 상처를 제대로 마주하고, 나 스스로 치유할 수 있길 바라본다.




기간: 출생 ~ 초등학교 1학년 말


청주시 내덕1동 나는 쌍둥이 형제 중에 둘째로 태어났다. 일란성이었고, 팔삭둥이였다. 미숙아로 태어나 곧바로 인큐베이터에 들어갔다고 한다. 내 몸은 너무 작아서 어린 시절 사용했던 물병(오렌지주스를 다 먹고 물병으로 썼다)만 한 크기였다고 자주 이야기 들었다. 그 작았던 생명체가 이렇게 잘 살아있는 것이 신기할 정도라고.


어린이집을 다닐 때가 어렴풋이 기억난다. 그때는 동네 친구들이 많았다. 밖에 나가서 뛰어놀고, 친구네 집에 놀러 가고 그랬다. 심심할 날이 딱히 없었다. 세상 물정 모르고 그냥 놀기 바빴다. 마냥 어린아이였기 때문에 그 당시에는 볼 수 없었던 것들이 이제는 보인다.




어린 시절 우리 집은 매우 가난했다. 아버지는 대학원생이셨고, 어머니는 육아와 일을 병행하셔야만 했다. 내가 조금 커서 어린이집을 다닐 무렵 아버지는 박사학위를 준비하셨고, 어머니는 회사에 출퇴근을 하셨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학업을 전적으로 지지해주셨고, 우리 형제를 어떻게든 돌보시려고 노력하셨다. 동네 어른들께 우리 형제를 맡기기도 하셨고, 회사에서 일찍 퇴근하셔서 밥을 챙겨주셨다.


어머니는 당시를 떠올리면서 "맛난 음식, 고기를 많이 못 먹여서 마음이 아팠다."라고 하셨다. 친구네 집에 놀러 갔을 때 친구 집에는 컴퓨터도 있었고, 게임기도 있었고, 당시에 비싼 과자도 먹을 수 있었다. 우리 집에는 없었다. 어머니는 마트에 가서 장을 볼 때 먹고 싶은 과자를 고를 때면 비싼 과자를 못 고르게 하셨다. 어린 마음에 떼를 쓸 수 있었을 텐데 나는 떼쓰지 않고 다른 걸 집었다.


아버지는 박사학위 과정이 끝나고 삼성이라는 대기업에 취업을 하셨고, 어머니와 아버지는 주말부부가 되었다. 기간은 1~2년 정도였던 것 같다. 초등학교 1학년 말까지 아버지와의 기억이 없는 걸 보면 그때 아버지는 정말 바쁘게 사셨던 것 같다. 물론 가정을 위해서 그렇게 바쁘게 사셨겠지만 그때 아버지의 부재가 조금은 아쉽다. 어릴 때 아버지와 많이 이야기 나누고 추억도 만들었다면 더욱 가까워졌을 텐데.


초등학교 1학년 말. 아버지가 삼성에 취업을 하신 후 약 2년 뒤, 우리 가족은 내가 태어난 청주를 떠나 아버지 회사에서 가까운 수원으로 옮기게 되었다. 그때 나는 마냥 어린아이였기에 이별의 개념조차 몰랐다. 동네 친구들과 주민들의 인사를(그게 작별인사였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뒤로 한채 수원의 아파트로 오게 되었다. 환경이 바뀌면서 나는 적응을 해야만 했다. 그러나 나는 그때 적응을 잘하지 못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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