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없는 아이의 성장기



기간: 초등학교 2학년 ~ 6학년


환경이 갑자기 바뀌고 친구도 없고, 나를 아는 사람들이 없는 낯선 곳에서 나는 쉽게 적응하지 못했다. 초등학교 2학년이 되었을 때 어리숙한 나는 내가 몇 반이 되었는지도 몰랐다. 누구에게도 물어볼 용기가 나지 않았고, 나에게 관심을 주지 않았다. 2학년 등교 첫날이 그렇게 흘러갔다. 선생님이 어머니께 전화를 하셨는지 그제야 내가 몇 반이 되었는지 알게 되었다. 어머니는 그 이후로 몇 번 더 전화를 받으셨고 한 번은 직접 선생님을 만나기도 하셨다고 했다.


2학년 때 내가 기억하는 건 나는 "말이 없는 아이", "벙어리"로 불렸다는 것이다. 정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기 싫어서 안 했는지, 무서워서 안 했는지 잘 모르겠다. 내가 한 마디라도 하면 애들이 신기하게 쳐다봤다. 사람이 어떻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사냐고 하겠지만 나는 정말로 그걸 해냈다.


물론 집에서는 말을 했다. 같은 나이인 형이 있었고, 어머니가 있었으니까. 그때 아버지는 일하시고 밤늦게 들어오셔서 대화할 시간이 많지 않았다. 아니 거의 없었다. 집에서 나가면 나는 말이 없는 아이로 변했다. 숫기가 없고 내성적인 아이. 그런 내 성향은 약간의 차이가 있겠지만 4학년 때까지 이어진다.




물론 커가면서 조금씩 발전하긴 했다. 말수가 조금씩 늘고, 학원에도 다니고, 친구도 생기기 시작하면서 아주 조금씩 나아지고 있었다. 그래도 내 이미지는 "얌전한 아이", "말이 없는 아이", "내성적인 아이"였다. 그런 아이는 3학년 때 '부반장' 타이틀을 갖게 된다. 대체 누가 나를 부반장에 추천했는지 기억은 나지 않는다. 지금 생각하면 그 친구한테 고마워해야 할 거 같다. 그렇게 부반장이 되고 나니 어머니가 크게 기뻐하셨다.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인가 보이스카우트(요즘은 보이를 빼고 스카우트로 바뀌었다고 한다.) 활동을 시작했다. 내가 그걸 어떻게 시작했는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내성적인 성격을 바꿔주고 싶어서 어머니가 적극 지원을 권하셨는지도 모르겠다. 활동이 꽤 많았다. 선생님 지도 아래 학교에서 텐트를 치고 야영을 하기도 하고, 단체로 수련회를 가기도 했다. 초등학교 시절 즐거웠던 기억 중에 하나다.




초등학교 시절 내 삶의 극적인 변화가 있었던 때는 5학년이 아닐까 싶다. 형과 같은 반이 되었고, 쌍둥이가 흔하지 않은 공간에서 우리 형제는 스타(?)가 되었다. 친구들이 몰려다니면서 우리 집에 놀러 왔다. 그때 어머니가 고생을 하셨을 거 같다. 갑자기 아이들이 집에 단체로 몰려와서 논다고 하니 얼마나 당황스러우셨을까? 그래도 어머니는 힘든 내색 한 번 안 하시고 7~8명이나 되는 그 많은 아이들을 전부 챙겨주셨다.


다음 해 6학년이 되었을 때, 6년 중에 가장 좋은 선생님을 만났다. 선생님은 아이들 한 명 한 명을 진심으로 대해주셨다. 아이들이 정말로 올바른 방향으로 가길 바라셨기에 잘못에 대해서는 매우 엄하게 대하셨다. 잘한 점에 대해서는 기분 좋게 칭찬해주셨다. 이때가 6년 중에서 가장 마음이 평화로운 시기였던 거 같다. 훌륭한 선생님의 지도로 친구들과도 정말 큰 문제없이 잘 지낼 수 있었다.




초등학교 졸업 후에 나와 형은 서로 다른 중학교로 가게 되었다. 둘 다 따로 떨어져서 생활해보길 원했고, 그렇게 서로 다른 환경에서 새롭게 적응하게 되었다. 이 선택이 훗날에 꽤 큰 영향을 주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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