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위해 살았을까?
기간: 중학교 1학년 ~ 3학년
2002년 하면 30대 이상은 월드컵이라는 역사적인 해로 기억할 것이다. 물론 나에게도 월드컵은 의미 있는 국가적 행사였다. 하지만 내 개인사에서는 암흑기의 시작이었다. 중학교, 고등학교 시기는 내 인생 34년을 통틀어 손가락에 꼽히는 가장 암울했던 시기였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서 나는 또 한 번의 큰 변화에 적응해야만 했다.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교복이라는 자율이 없는 옷, 머리를 짧게 깎아야 한다는 학교 규칙, 사춘기라는 몸과 정신의 변화에 직면했다. 그리고 매 학기마다 있는 시험이라는 시스템은 나를 더욱더 힘들게 만들었다. 나 스스로 사고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겼을 때 나는 공부로부터 도망치고 싶은 그 욕구를 ‘공상’이라는 수단으로 소비하고 있었다. 책을 보면 항상 멍 때리면서 상상을 하곤 했는데 어머니는 그런 내 모습을 보고 “그만 멍 때리고 공부해”라며 질책을 하셨다.
나는 공부라는 것이 싫었다. 그런데 싫은 공부를 억지로 시키는 학교나 어머니에게 저항을 할 수가 없었다. 저항이라는 단어조차 배운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학교를 안 다니면 그저 “나쁜 아이”, “비행 청소년”이라는 수식어로 사회적 낙인을 찍어버린다는 사실에 겁을 먹고 그 하기 싫은 공부를 억지로 부여잡았다. 등 떠밀려서 학원에 가서도 나는 공부라는 게 익숙해지지 않았다. 영어학원에서 단어를 외우라고 하면 그냥 아무것도 안 외우고 쪽지시험 0점도 맞았다. 나와 같이 갔던 친형은 그런 나를 보고 무슨 생각을 했을까? 같이 다니는 친구들은 나를 “왜 저러고 다니냐” 하면서 우습게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공부가 싫으면 다른 거라도 잘하면 괜찮았을 텐데 나는 딱히 두각을 나타내는 재능마저 없었다. 나는 게임에 빠졌다. 집에 애들은 둘인데 컴퓨터는 하나라 서로 하겠다고 싸우거나 둘이서도 할 수 있는 게임을 했다. 아버지는 새벽에 출근하셔서 밤늦게 들어오시니 우리 형제에게 신경을 거의 안 쓰셨다. 거의 어머니가 우리 형제를 전적으로 키우셨다. 아이들이 공부는 안 하고 하루 종일 게임만 하는 것을 못마땅해하신 어머니는 평일에는 게임을 못하게 막으셨고, 오로지 토요일 하루만 게임을 하도록 허락하셨다. 그런다고 여태껏 안 하던 공부를 제대로 할까? 당연히 아니지. 우리 형제는 몰래 게임할 궁리만 했다. 그때 나는 친구랑 같이 놀러 가는 일도 없었고, 그때 유행했던 놀이나 먹거리나 옷에 대해서도 하나도 몰랐다. 정말 사교성, 사회성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방구석 히키코모리가 아니었을까?
중학교 생활은 지금 생각해보면 화가 나는 일이 많았다. 놀림을 받고, 일진 놈들한테 두들겨 맞고, 삥을 뜯겨도 어디에 말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부모님에게 말하지도 못하고 그저 당하기만 했다. 누가 보면 그냥 찌질한 애라고 보일 것이다. 중학교 1학년 때는 유독 장난이 심하고 선생님을 우습게 아는 또라이 몇 명이 반 전체 분위기를 주도하는 모양새였다. 당연히 그놈들에게 맞은 적이 있었고, 나는 어디 가서 맞았다는 티를 내지 못하고 혼자 참았다. 그 당시에는 체벌이 가능했던 때라 선생님한테 걸려서 두들겨 맞아도 정신을 못 차리는 그런 놈들이 있었다. 2학년 때는 담배에 손을 대는 일진 놈들이 행패를 부렸다. 반에서 정말로 악질 중에 악질인 한 명이 뭐가 그렇게 멋있다고 센 척을 하면서 반 애들을 때리고 괴롭히고 겁주고 다녔다. 나는 또 맞았다. 내 친구도 맞았고, 심지어 여학생에게까지 손을 댔다. 아직도 그놈의 실명이 기억난다. 3학년 때는 그나마 폭력은 없었다. 그래도 양아치 같은 인간들은 또 있는 법. 자기가 애인하고 투투(22일)이라며 돈 좀 빌려달라고 하는 애들, 천 원짜리 동전으로 바꿔준다며 동전을 보여주고 다른 손으로 슬쩍 모자란 돈으로 바꿔치기하는 사기꾼 놈, 반에 다 돌아다니면서 수급을 해대는 거지 같은 애들. 다들 한통속이었다. 중학교 시절에 그런 학교 안에서 나는 대체 무엇을 얻었을까? 다행히 나와 같은 생각을 했던 친구 4명이서 스무 살에 다시 만나 지금도 잘 지내고 있다. 2학년 때 같은 반을 보냈던 친구들이라 일진 놈들의 행패를 기억하고 있을 것 같다. 불편했던 기억을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아서 다들 말은 안 하지만 이야기를 꺼내면 같이 화를 낼 거 같다.
암흑기인 중학교 생활을 끝내고 고등학교에 들어갈 무렵. 그것이 또 다른 암흑기라는 것을 알았다면 나는 필사적으로 도망을 갔을지도 모른다. 공부라는 지옥 같은 늪, 내 인생에서 한 획을 그은 한 가지 사건, 어딜 가나 존재하는 망할 또라이들. 행복했던 기억이 존재하긴 하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 3년이라는 시간을 돌이켜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