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기대 May 18. 2024

나의 두번째 직장도 요양병원입니다.

느린게 아닌 천천히 가는 것

부모님께 손을 벌리기는 싫었다. 고시원 월세와 생활비를 감당하기 위해서는 하루빨리 일자리를 찾아야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 그것은 당연 다시 일자리를 찾는 것이었다. 경력이 없는 나를 써 주는 곳, 일을 빠르게 시작할 수 있는 곳, 그곳은 요양병원 하나뿐이었다. 또다시 이력서를 썼다. 친구들을 쫓아가기 바쁜 나지만, 퇴사를 통해 느낀 교훈이 있었다. 늦었다 생각하고 주변을 둘러보지 않고 앞만 보고 달리다면 넘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천천히 달리더라도, 바닥에 돌부리는 없는지 확실히 확인하고 달려야 한다. 똑같은 실수를 하고 싶지 않아 면접을 가기 전 나 또한 이 직장에 대해 궁금한 점을 준비해 갔다. 나에게 일을 알려 줄 사람은 있는지, 당직 의사는 상주하는지, 근무마다 간호사는 몇 명이 근무하는지 등 여러 가지 따져보아야 할 점이 많았다. 면접을 보러 간 곳은 걸어서 30분 거리의 병원이었다. 외관은 이전 병원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허름한 건물 외관과 밖에서 보아도 어두워 보이는 실내는 음산한 분위기를 풍겼다. 병원 앞에 서서 한참 동안 생각했다. 이것이 과연 맞는 선택일까? 이전 병원처럼 나를 방치해 버리고 내가 할 수 없는 일까지 떠 맡기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병원 문을 열려고 하니 먼저 걱정이 앞섰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언 이것뿐이었다. 나에게 크게 관심이 없어 보이는 직원에게 면접을 보러 왔다고 말을 했다. 무뚝뚝한 그녀는 나를 사무실로 안내해 주었다. 그 안으로 들어갔을 때 나는 긴장보다는 안도를 했다. 사무실이라고 부를 수도 없던 이전 병원과는 다르게 이곳은 의자라고 부를 수 있는 의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등받이가 없던, 터져버린 가죽 사이로 삐져나온 솜, 앉았을 때 어떤 자세를 취할지 난감했던 의자가 아니었다. 이것 만으로 이곳은 그곳과 다르다는 희망이 생겼다. 간단한 면접이 끝났다. 궁금한 점이 없냐는 질문에 준비해 갔던 질문들을 쏟아냈다. 교육기간이 있냐는 질문에 당연히 트레이닝 기간이 있으며 한 달간은 혼자 근무할 일이 없다는 답변을 받았다. 이 당연한 대우를 왜 그곳에서는 받지 못했던 것일까. 일주일 뒤부터 출근하기로 하고 병원을 나왔다. 내가 근무 할 곳은 중환자실이었다. 요양병원 특성상 그 곳은 치료를 통해 호전되는 환자들 보다는 죽음을 기다리는 환자들이 많은 곳이다. 이전 병원의 일이 다시 떠올라 또 다시 가슴이 답답해졌다. 그래 그때는 내가 운이 없었다 생각하자. 증오의 대상을 누구도 바꿀 수 없던 그 상황으로 정하자. 그러면 잊을 수 있을 것이다. 오늘처럼 내가 해야할 일 그래 그것에 집중하자. 

이전 04화 고시원에 사는 백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