겁이 많은 임팔라 한 마리
나의 첫 퇴사는 그날이었다.
새벽부터 비가 쏟아져 하루종일 어두웠던 날,
뭔가 안 좋은 일이 일어날 것 같은 그런 날,
나의 첫 밤 근무 날.
'익스파이어(사망) 환자 보신 적 있으세요?'
인계를 주던 이전 근무 간호사는 걱정 섞인 목소리로 나에게 물어봤다.
그녀는 환자 한 명이 곧 사망할 것 같다고 한다.
해부학 실습을 하며 시체는 본 적은 있지만
내 눈앞에서 누군가 사망하는 것을 직접 본 적은 없었다.
하지만 '사망'이라는 사건, 삶이라는 일련의 과정의 마무리에 대한 공포감은 없었다.
그런데 그날 그 단어를 들었을 때 느낀 감정은 공포감이 틀림없었다.
그 일을 수습할 사람이 나라는 점,
나에게 그 과정을 알려준 사람이 없다는 점.
그것은 아마 무지에 대한 공포였을 것이다.
밤이 깊어 갈수록 환자의 상태는 점점 더 나빠져 갔다.
주변에서 기다리고 있던 보호자에게 연락을 했다.
억수 같이 내리는 비를 뚫고 온 사람은
80은 족히 넘어 보이는 노모였다.
눈가의 자글한 주름을 따라 흐르는 눈물을 보니 왠지 모를 울컥함이 있었다.
죽는 순간에도 살아 있는 감각, 인간의 마지막 감각이 청각이라는 점
그래서 죽는 순간까지 하고 싶은 말을 한다면 들을 수 있을 거라는 점
그것이 내가 노모에게 해줄 수 있는 유일한 말이었다.
누군가의 죽음 그리고 동정심
이것이 나의 퇴사 사유는 아니었다.
환자가 사망을 하면 의사 혹은 한의사가 사망선고를 하고 사망선고서를 작성해야 한다.
하지만 당직한의사가 연락이 안 되었다.
여러 번의 전화 끝에 겨우 연락이 된 당직의는 나를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제가 지금 못 가니 대신 사망 선고랑 사망 선고서 작성해 주세요.'
'간호사가 하면 안 됩니다. 그건...'
'의사가 시켜서 하는 건 괜찮아요.'
'법적으로 문제 됩니다. 선생님 언제쯤 오실 수 있나요. 곧 사망하실 거 같아요.'
'그냥 해도 되는데...'
'제 입장도 생각해 주셔야죠. 법적으로 제가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닙니다.'
'겁이 많으시군요.'
그 한마디는 버텨 보자는 나의 의지를 꺾어 버렸다.
그 뒤 환자는 곧 사망을 했고, 보호자는 마지막까지 그의 귀에 수고했다는 말만 연신 반복할 뿐이었다.
몇 분 뒤 당직 한의사는 나를 답답하다는 듯이 처다 보며 사망선고를 했다.
아침해가 떴고 퇴근 시간이 되었다.
끝나지 않을것 같은 밤이 끝났다.
내일부터 출근하지 않을 것이라 말할 것이다.
그런데 우리 병동엔 수간호사가 없다.
나는 곧장 간호국장을 찾아갔다.
하지만 그녀는 오늘 휴가라 한다.
결국 총무과를 찾아갔다.
내일부터 나오지 않을 것이라는 말에 담당자는 귀찮아 한다.
근로계약서부터 시작해 여러 서류는 왜 작성하지 않았냐고 나를 나무란다.
나는 전달 받은 바가 없다.
어처구니없는 말에 말싸움 할 힘도 없었다.
'죄송합니다'
할 말은 많지만 하지 않는 것
억울해도 죄송하다 하는 것
그것이 가장 쉬웠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침대에 쓰러지듯 누웠다.
'겁이 많으시군요.'
그 말 한마디가 귀에 맴돌았다.
그래 난 겁도 많고 걱정도 많은 사람이다.
어릴 적 자동으로 내려가는 소변기 소리에 놀라 뒤로 넘어진 적도 있다.
일어나지도 않을 일을 걱정하느라 친구들에게 한소리 들을 때도 많다.
그런데 나는 이런 내가 싫지 않다.
이런 내가 위험부담을 안고 내가 사망선고를 하고 사망선고서를 대신 썼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사망한 게 아니었으면 어쩌지?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 차 며칠 아니 몇 달은 고생했을 것이다.
겁이 많다는 건 나 자신을 누구보다 아낀다는 것 아닐까?
이미 멀어져 버린 친구들을 쫓아가기에 바쁜지만
나 자신을 망쳐 가면서 까지 쫓아가고 싶지는 않다.
위험 부담을 안고 싶지 않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