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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대 Apr 27. 2024

나의 첫 직장은 요양병원입니다.

무리에서 떨어진 임팔라 한 마리

뒤처지기 싫었다. 

6살의 나는 자전거를 타고 친구들과 놀러 간다는 형을 무작정 쫓아나 섰다.

아빠가 사준 작은 킥보드를 타고 말이다. 

처음에는 나와 거리를 맞춰주던 형과 친구들은

어느 순간 나와 점점 멀어져 갔다. 

있는 힘껏 땅을 굴러지만 쫓아갈 수 없었다. 

그렇게 뒤처진 내가 할 수 있는 건 홀로 서서 목이 터져라 우는 것뿐이었다. 

그때부터였을까 

동물의 왕국에서 무리에서 떨어진 임팔라의 최후를 볼 때 

그때의 내가 겹쳐 보였다. 

사자에게서 달아나려고 죽을힘을 다해 달린다. 

친구들을 향해 열심히 달린다.

하지만, 무리는 점점 멀어져 간다. 


2023년 2월 나는 간호사가 되었다.

졸업을 하기도 전에 원하는 병원에 합격했다.

하지만 엔데믹, 전공의 파업으로 간호사의 수요는 감소했다.

합격한 병원에서는 언제 발령이 날지도 알려주지 않는다.  

그 결과 병원에 합격은 했지만 무기한 발령대기 상태인 '웨이팅게일'이 되어버렸다. 

이번 달에는 들어가겠지...라는 생각으로 지새운 날들이 벌써 1년이다.

대학 동기들은 벌써 2년 차 간호사로 열심히 경력을 쌓고 있다. 

하지만 나는 아직 시작도 하지 못했다. 

그렇게 나는 무리에서 떨어진 임팔라가 되었다. 


멀어져 가는 친구들을 쫓아가기 위해 내 딴에는 열심히 달려보았다

다시 취업에 도전했었다. 

서울에 위치한 한 대학병원에 입사를 지원했고 

서류와 1차 면접에 통과한 후 최종면접을 보러 갔다. 

하지만 이미 뒤처져 버린 임팔라에게 드 넓은 초원은 너무나도 차가웠다. 

면접관의 첫 번째 질문은 자신의 경력이나 경험을 이야기해 보라였다. 

다른 지원자들은 타 병원에서의 화려한 경력을 이야기했고, 

면접관들은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나에겐 화려한 경력도, 경험도 없었다. 

나에게 있는 건 1년이라는 공백기뿐이었다.

내 차례가 되었다. 

뒤에 사자가 있는지 모르고 열심히 풀을 뜯고 있었어요 

정신을 차리니 친구들은 이미 도망간 뒤였어요 

뒤늦게 열심히 달려보려고, 그들을 쫓아가려고 지금 이 자리에 있습니다. 

이렇게 말했다면 마음이라도 편했을까? 

그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대답은 흔한 공백기 질문에 대한 대답 그것뿐이었다. 

내 답변의 들은 후 면접관들의 시선에 나는 없었다. 

다른 지원자들은 모두 추가 질문을 받았지만 

나를 궁금해하는 면접관은 없었다. 

그렇게 일주일 뒤 최종 탈락 메일을 받았다. 


불합격이라는 단어는 언제 읽어도 가슴 깊은 곳에서 서늘한 감정이 올라온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슬퍼하거나 아쉬워하거나 면접관들을 욕할 시간은 존재하지 않았다. 

서서히 시선에서 사라져 가는 친구들을 쫓아 달려가야 했다. 

다시 채용 사이트를 들여다보았다. 

'웨이팅 간호사, 유휴 간호사, 신규 간호사 환영' 

이 한 문장은 '공백기'라는 약점이 있는 나를 이목을 끌었다.

본가에서 조금 먼 곳에 위치하여 자취를 해야 했다.

요양병원이라 체계도 없을 것이고 월급도 많이 낮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나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지금 시기에 다른 대형 병원들의 공고가 올라오지 않을 시기인 것을 알았기에 

이 병원만이 내가 갈 수 있는 유일한 곳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면접을 보러 갔다. 

버스에서 내리니 허름한 건물하나가 보였다. 

병원 내부는 어두컴컴하고 시큼한 냄새가 났으며,

크림색의 벽은 까맣게 떼가 묻어있었다. 

천장은 금이가고 깨진 석면 보드로 되어있었다.

나에겐 관심이 없는 무표정의 프런트 직원에게 다가갔다. 

면접을 보러 왔다고 하니 어딘가로 전화를 걸고 나를 어떤 방으로 안내해 줬다. 

그곳은 사무실이라고 부르기도 애매한, 주사실처럼 생긴 곳에 책상 하나와 의자 두 개, 컴퓨터 하나가 전부였다. 

한 10분이 지났을까

50대의 여성 한 명이 들어왔다.

그녀는 가볍게 인사한 후 자기를 간호국장이라 소개했다. 

그녀는 다짜고짜 언제부터 출근할 수 있는지 물었다. 

 나는 다음 주라고 대답했다. 

그것이 그녀가 나에게 원하는 전부였을까? 

그 후로는 본가가 어딘지, 출퇴근은 어떻게 할 건지, 알바는 많이 해봤는지 시시한 질문들 뿐이었다.

10분도 안 되는 면접이 끝났다. 

그녀는 다음 주에 보자고 했다.  


그렇게 나의 첫 직장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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