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석의 격자 안으로 들어오는 문장, “금박으로 된 멋진 액자”
해석의 격자 안으로 들어오는 문장, “금박으로 된 멋진 액자”
“책상 위쪽에는 그가 얼마 전에 화보 잡지에서 오려내 금박으로 된 멋진 액자에 끼워 넣은 그림이 걸려있었다.”
책을 읽다 보면 해석이라는 격자 안 창호지에 살짝 스며드는 문장이 있다는 것을 경험해 보았을 것입니다. 수년의 기간을 두고 카프카의 '변신'을 읽을 기회가 생기곤 했는데, 이번에는 그레고르 잠자가 만든 “금박으로 된 멋진 액자”가 작은 걸음으로 내게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갑충이 된 몸이지만
그레고르 잠자는 늘 새벽 네시에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합니다. 한 마리 거대한 갑충이 되어서도 출근을 위한 몸놀림은 멈출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다리는 멋대로 움직였고 몸은 통제할 수가 없습니다. 한번도 어기지 않은 출근 시간이 늦어지자 회사의 지배인이 성급히 그레고르 잠자의 집에 찾아옵니다.
어머니는 집에 찾아온 지배인에게 아들이 출근하지 못한 상황을 적극적으로 변호합니다. 지금은 몸이 아파 출근하지 못했지만 아들은 일의 성과를 높이기 위해 퇴근 후에도 판매 계획을 세우며 시간을 보낸다고 알려줍니다. 아들이 직장에서 쫓겨나면 가족들이 경제생활을 의지할 곳이 없기 때문에 어머니의 변호는 간절합니다.
영업사원 그레고르 잠자
그레고르 잠자가 직장에서 하는 일은 '영업사원'입니다. '영업사원'이란 타인의 소비욕망을 자극하여 상품을 파는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직업군은 소비 자본주의 사회에서 나타났습니다. 소비 자본주의란 상품을 미리 대량 생산하고 상품 소비 욕망를 자극하여 유지하는 시스템입니다.
그레고르 잠자는 상품에 대한 소비 욕망을 자극하는 최전선의 자리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살아남기 위해서 퇴근 이후에도 다음날 판매 계획을 짜는 시간을 가져야했습니다. 아버지의 사업이 망해 자신이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입니다.
그는 생각합니다. "이 무슨 고된 직업을 나는 택했단 말인가! --- 불규칙적이고 나쁜 식사, 자꾸 바뀌는 바람에 지속되지도, 결코 정들지도 못하는 인간관계 등, 마귀나 와서 다 쓸어가라지!", 그레고르 잠자는 방대한 상품 더미에 담긴 부의 욕망 관계에서 벗어나고 싶어 합니다. 그런 그에겐 짧지만 상품에서 흘러나오는 욕망과 단절된 시간이 있었고 그것은 액자를 만드는 시간입니다.
비 결정된 시간을 간직하고 있는 그레고르 잠자
직장 일이 기계의 톱니바퀴가 되어 삶 깊숙히 맞물려 들어오지만, 그레고르 잠자는 내부 깊게 접혀져 침습 당하지 않는 욕망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이런 비 결정된 욕망은 손끝으로 흘러 작은 액자로 탄생하였고 잠자는 이것을 예쁘게 도금합니다. 그리고 화보 잡지에서 오려낸 그림을 액자 안에 넣어 어릴 적부터 사용해왔던 책상 위에 걸어놓았습니다.
책상 위에 걸려있는 액자는 비 결정된 욕망이 펼쳐진 것입니다. 생계를 위해 살아가면서도 인생에 커다란 전기를 마련하고 싶다는 마음, 가족의 빚만 갚고 나면 여동생을 음악학교에 보내려는 마음, 몸에 아버지가 던진 사과가 박혀있지만 바이올린 소리에 발길을 옮기는 마음은 모두가 액자와 같은 결을 가지 양태입니다.
어느 날 아침 불안한 꿈에서 깨어났을 때, 몸은 커다란 갑층으로 변했 있고, 배는 활 모양의 갈색 마디로 나누어져 있고, 다리는 몸뚱이에 비해 비참할 정도로 가느다라져 있을 것입니다. 결단코 꿈이 아닙니다. 그러나 시야는 갑충이 된 몸을 확인하고 책상 위에 걸려있는 금박 액자를 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