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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재석 May 21. 2022

카프카 3). "변신", '금박 액자'의 의미

카프카는 '갑충'의 모습이 그려지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책상 위에는 그가 얼마 전에 어떤 화보 잡지에서 오려내어 예쁜 도금 액자에 넣어둔 그림이 걸려 있었다."

 


책을 읽다 보면  독자에게 자신을 해석해보라고 신호를 보내는 장면이 있다는 것을 경험해 보았을 것입니다. 몇 년의 기간을 두고 카프카의 '변신'을 읽을 기회가 생기곤 했는데, 이번에는 그레고르 잠자가 만든 '액자'가 지속적으로 신호를 보내고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주인공 그레고르 잠자는 늘 새벽 네시면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합니다. 어느 날 정해진 식간에 맞추어 출근을 하던 잠자가 회사에 나타나지 않자 회사의 지배인이 성급히 그레고르의 집에 찾아옵니다. 어머니는 집에 찾아온 지배인에게 아들이 출근하지 못한 상황을 변호합니다.  


어머니는 아들이 회사일을 등한시하여 늦은 것이 아니며  지금은 몸이 아파 출근을 하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아들은 집에서도 늘 회사일밖에 하지 않으며 겨우 자기의 시간을 갖는다면 실톱으로 조그만 액자를 만드는 것 밖에 없다는 말도 덧붙입니다. 아들이 직장에서 쫓겨나면 가족들이 경제생활을 의지할 곳이 없기 때문에 어머니의 변호는 간절합니다. 


그레고르 잠자가 직장에서 하는 일은 '외판사원'입니다. '외판사원'이란 타인의 욕망을 자극하여 상품을 파는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직업군은 소비 자본주의 사회에서 나타났습니다. 자본주의 체제는 상품을 대량 생산하고 소비를 촉진시켜야만이 유지되는 시스템입니다. 상품을 미리 만들어 사람들의 욕망을 자극하여  판매하는 시대가 온 것입니다. 


그레고르 잠자는 사람들에게 상품에 대한 욕망을 자극하는 최전선의 자리에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아버지의 사업이 망하여 자신이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습니다. 그레고르 잠자의 이런 생활은 새벽 4시에 맞춰진 자명종 소리와 함께 시작합니다.  


그는 생각합니다. "이 무슨 고된 직업을 나는 택했단 말인가! --- 불규칙적이고 나쁜 식사, 자꾸 바뀌는 바람에 지속되지도, 결코 정들지도 못하는 인간관계 등, 마귀나 와서 다 쓸어가라지!", 잠자는 상품의 일원이 되어가는 자신을 벗어던지고 싶어 합니다. 그가 상품 소비 욕망 세계에서 잠시 벗어나 있는 시간이 존재하는데 그것이 액자 만드는 시간입니다.  


직장일이 기계의 톱니바퀴처럼 삶의 틈바구니까지 밀고 들어오지만, 그는 삐져나온 시간을 만들어 실톱으로 작은 액자를 만드는 시간을 마련했습니다. 잠자는 짬을 내서 만든 액자에 도금을 하였고 화보 잡지에서 오려낸 여자의 그림을 그 안에 보관하였습니다. 그리고 어릴 적부터 버리지 않고 함께 했던 책상 위에 만든 액자를 걸어놓았습니다.    


액자를 만드는 시간은 기계의 부품으로 움직이는 몸이 아니라, 원형의 욕망 흐름이 손끝까지 전해져 오는 몸의 시간이었습니다. 그레고르 잠자는 새벽 4시에 일어나 출근을 준비하고, 기차 시간에 맞춰 곳곳으로 상품을 팔러 다니며, 집에서 외판 계획표를 짜면서도 체인에 묶인 시간에서 벗어나 액자를 만들며 온전히 자신으로 있는 시간을 만들었습니다.     


이런 시간이 있었기에 잠자는 가족의 생계를 위해 살아가면서도 빚을 갚고 인생에 커다란 전기를 마련하고 싶다는 생각을 유지할 수 있었으며, 가족의 빚만 갚고 나면 여동생을 음악학교에 보내려는 마음도 잊지 않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어쩌면 한 마리 흉측한 갑충으로 변한 다음에 그의 시선이 형편없이 변한 몸과 다리를 지나 여인의 그림이 있는 도금된 액자를 향했던 것도 가장 중요한 것을 잃지 않기 위해서 일지도 모릅니다.  


소설 "데미안"의 시작 글이 생각납니다. "내 속에서  솟아 나오려는 것 바로 그것을 나는 살아보려고 했다. 왜 그것이 그토록 어려웠을까”. 그레고르 잠자는 내속에 솟아 나오려는 것을 살아가려고, 무뎌지는 자신을 채찍질하는 강한 시선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액자는 사회, 회사, 가족 층층이 덮여 살아가는 그레고르의 삶에 탈주 리듬감을 지속시켜주는 그 무엇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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