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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재석 May 25. 2022

"연금술사" (2).  행복의 비밀


소설 "연금술사"에는 작은 이야기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중에서 '행복의 비밀'에 대한 이야기도 있습니다. 산티아고의 영혼을 자극하던 멜기세덱이 전해주는 이야기가 '행복의 비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어떤 상인이 '행복을 비밀'을 배워오라며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현자에게 자기 아들을 보냅니다. 그 젊은이는 사막을 사십 일 동안 걸어 높은 산 위에 있는 현자의 집에 도착합니다. 현자는 '행복의 비밀'을 묻는 젊은이에게 우선 자신의 아름다운 저택을 구경하고 두 시간 후에 오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현자는 출발하려는 젊은이에게 기름 두 방울이 담긴 찻숟가락을 건네며 당부합니다. “이곳에서 걸어 다니는 동안 이 찻숟갈의 기름을 한 방울도 흘려서는 안 되오”. 젊은이는 현자의 아름다운 저택을 돌아다니며 기름을 흘릴까 봐 찻숟가락에 눈을 뗄 수가 없었습니다. 젊은이는 두 시간 후에 현자 앞에 돌아옵니다.  


현자는 젊은이에게 물어봅니다. “그대는 내 집 식당에 있는 정교한 페르시아 양탄자를 보았소? 정원사가 십 년 걸려 가꿔놓은 아름다운 정원은? 서재에 꽂혀 있는 양피지로 된 훌륭한 책들도 좀 살펴보았소?” 젊은이는 당황하면 말합니다. “저의 관심은 오로지 기름을 흘리지 않는 데 있었기 때문에 아무것도 보지 못했습니다.” 


젊은이의 말을 들은 현자는 말합니다. “그렇다면 다시 가서 내 집의 아름다운 것들을 좀 살펴보고 오시오.” 젊은이는 찻숟가락을 들고 다시 저택의 아름다움을 편안한 마음으로 구경합니다. “이번에는 저택의 천장과 벽에 걸린 모든 예술품들을 자세히 살펴"보았고, "정원과 주변의 산들, 화려한 꽃들, 저마다 제자리에 꼭 맞게 놓여 있는 예술품들의 고요한 조화까지 모두 볼 수 있었"습니다.  


돌아온 젊은이에게 현자는 묻습니다. “그런데 내가 그대에게 맡긴 기름 두 방울은 어디 갔소?” 젊은이는 저택을 구경하느라 기름방울이 흘러 없어진 것도 몰랐습니다. 당황하고 있는 젊은이에게 현자는 행복의 비밀에 대하여 말합니다. “행복의 비밀은 이 세상 모든 아름다움을 보는 것, 그리고 동시에 숟가락 속에 담긴 기름 두 방울을 잃지 않는 데 있도다”. 현자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행복하게 살기 위하여 세상의 모든 아름다움을 보아야 하고 동시에 기름 두 방울을 잃지 않아야 합니다. 


그럼 세상의 아름다움은 무엇이고 잃지 않아야 할 기름 두 방울은 무엇일까요?  


현자가 상인의 아들에게 가르쳐 주고자 한 '행복의 비밀'은 세상에 유혹되어 자아를 잃어버리는 삶을 살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자아에 모든 에너지가 집중되어(나르시시스트) 세계와 생성의 관계가 단절된 독단의 삶도 경계하라는 말입니다. 이는 자아의 정체성을 찾아나가며 세상과 아름다운 관계도 지속하라는 것입니다. 개체의 자아와 세계의 아름다움을 분리하지 않고 함께 하는 것, 그것이 현자가 전해준 '행복의 비밀'입니다. 


'행복의 비밀'을 체험하기 위해선 '생성하는 자아'를 간직해야합니다. '생성하는 자아'란 세상과 경이롭게 만날 수 있는 감각 체계와 사유체계로 구성된 몸을 가꾸는 것과 함께합니다. 모든 관계의 중심은 나의 몸입니다. 왜냐하면 세상과 관계 맺음이 새롭냐 새롭지 않느냐는 나의 감각 체계와 사유체계에서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세계가 경이로운 배움의 장이 되는가, 반복되는 일상의 지겨움이 되느냐는 나의 몸이 어느 정도 준비되어 있는가에 달려있습니다. 


생성하는 자아가 볼 수 있는 세상의 아름다움은 비율의 아름다움이 아닙니다. 이는 세계와 경험하고, 교류하며,  배워가며, 터득 해가는 자들만이 볼 수 있는 아름다움입니다. 이는  이데아를 향하는 에로스를 간직한 사람의 행복과 비슷합니다. 산티아고는 꿈속에서 보았던 장소에 도착하기 위한 마지막 관문인 사막에 도착합니다. 사막에서 산티아고는 말합니다. “난 양들에게 배웠고 크리스털에게도 배웠지. 사막으로부터도 배울 수 있을 거야. 사막에는 시간의 힘과 그로부터 솟아나는 지혜가 느껴져.” 산티아고는 생성하는 자아가 느끼는 아름다움을 볼 수 있게 된것입니다.   


멜기세덱처럼 연금술사도 산티아고에게 '행복의 비빌'에 대하여 말합니다. 산티아고는 연금술사에게 묻습니다. “어째서 스승님을 연금술사라고 부르는 걸까요?” “내가 연금술사이기 때문이지.” 산티아고는 다시 말을 건넵니다. “그렇다면 금을 만들려다 실패한 다른 연금술사들은 뭐가 잘못되었던 거죠?” “그들은 단지 금만을 구했네. 자아의 신화, 그 보물에만 집착했을 뿐 자아의 신화를 몸소 살아내려고는 하지 않았지.” 실패한 연금술사는 값나간다는 금을 만드는 데 집착하다 보니 생성하는 자아를 이루지 못한것입니다.   

 

“행복의 비밀은" 이 세상 모든 아름다움을 보며, 동시에 숟가락 속에 담긴 기름 두 방울을 잃지 않는 자만이 알 수 있습니다. 연금술사의 말처럼 "자아의 신화를 몸소 살아내려" 하는 자만 알 수 비밀이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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