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재석 May 20. 2022

“연금술사” (1). 이질적 사고의 혼합물    


아주 오래전 일입니다. 시인 백석의 시를 해설한 책인 “백석의 맛”을 대출하러 도서관을 갔습니다. 백석의 시에는 특히나 먹는 것에 대한 좋은 시가 아주 많습니다. 백석의 시에 나오는 음식에 대한 시평이 궁금하여 번호표를 보고 책이 꽂혀있는 책 코너를 찾았습니다. 번호는 시 코너를 지나고 있었습니다. “백석의 맛”은 ‘시 코너’에 있어야 할 책인데 ‘음식 코너’에 있었습니다. 혼자 웃음을 지으며 책을 빌려봤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백석의 맛”을 찾던 이야기는 웃으려 한 말이지만 실제 요즘 책들은 어느 코너에 있어야 맞을지 혼동이 되는 책들이 많습니다. 내용이 워낙 장르를 파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 장르가 정해져 있어도 그 안에서 벌어지는 퓨전 놀이도 대단합니다. 예를 들면 한 소설에서 판타지, 추리, 에로, 역사물 등을 모두 볼 수 있는 것은 예전의 일이 되었습니다. 철학책인지 사회과학책인지 경계를 파괴하는 책들이 너무 많습니다. 책 속에서 다양한 장르는 마치 요리의 대가가 만든 퓨전요리처럼 찰지고 자연스럽게 혼합되어 있습니다.       

    

파울로 코엘료의 소설 “연금술사”도 이질적인 요소들이 아주 잘 버무려져 있는 소설입니다. 소설에서 인용된 것은 성경이 가장 많은데 제목은 기독교 이단적인 제목인 “연금술사”입니다. 연금술사는 거칠게 말하면 세계(자연, 인간)를 변형시켜 금을 만드는 사람입니다. 신이 만든 자연과 인간을 변형시킨다는 것은 신의 창조 능력에 도전하는 마법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중세 마녀사냥이 한창이던 시절이라면 화형 당할 수도 있는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소설에서는 연금술사가 제시해주는 표지와 신이 제시한 예언의 길이 모순되지 않고 주인공의 여행길을 함께합니다.      

    

주인공의 자아의 여행길에서 물음에 답을 해주는 ‘우림과 툼림’은 성경에 나오는 소재입니다. 하지만 산티아고가 피라미드를 향해 가는 길에서 그의 물음에 답을 해주는 사람들은 대개가 무슬림들입니다. 책의 본 내용이 시작하기 전에 나오는 인용 글은 신약의 ‘누가복음’ 중 한 구절이지만, 첫 글인 ‘서’ 파트에서는 그리스 로마 신화의 나르키소스 신화가 나옵니다. 두 이야기 모두 다 자아의 여행, 스스로 선택함의 중요성과 아름다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같은 주제지만 다른 문화에서 가져온 이야기입니다. 책 곳곳에 분산되어있는 이질적 요소들은 자아를 찾아가는 여행길에 적적히 녹여있습니다.           


책에서는 시간관도 대립되는 두 개의 시간관이 함께 나옵니다. 두 시간관은 ‘직선적 시간관’과 ‘순환론적 시간관’입니다. ‘직선적 시간관’이란 ‘유대, 기독교 시간관’이라고도 말합니다. 첫 창조와 마지막 구원이 일직선으로 놓여있다고 하여 (처음과 끝이 있다고 하여) 직선적 시간관이라고도 합니다. 직선적 시간관에서는 이미 제시되어있는 미래(소설에서는 마크툼으로 나옵니다)라는 상황도 옵션으로 있습니다(유대인에게 구원은 과거에 예시된 미래의 상황입니다). 주인공 산티아고는 낡은 교회에서 꿈의 계시를 받고 여행을 시작하여 꿈에서 예시된 피라미드에서 자아의 완성을 이룹니다(마크툽!). 이는 직선적 시간관으로 해석 가능합니다.     

      

그러나 산티아고는 순환론적 시간관 안에서도 함께합니다. 순환론적 시간관이란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매번 돌아오듯이 시간은 다시 돌아온다는 사고가 바탕에 있습니다. 순환론적 시간관에서 돌아옴이란 똑같이 돌아오는 것은 아닙니다. 더욱 풍성하게 돌아오는 것입니다. 여름을 지낸 식물이 가을에 열매 맺고 혹독한 겨울을 나면 봄기운을 받은 땅에서 식물이 풍성함을 더하듯이 순환론적 시간관에서 돌아옴은 성장하여 돌아오는 것입니다. 주인공 산티아고는 목적지인 피라미드에서 보물을 발견하고 자아의 완성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산티아고는 꿈을 꾼 처음 장소로 다시 돌아와 보물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산티아고는 성장해 돌아와 다시 출발합니다.     

      


작가의 이전글 한강의 “흰”을 읽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