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가을)
혼자 짧은 여행을 가게 된 것은 긴 발걸음을 하며 마음속 혼돈들에게 충돌의 시간을 주고 싶어서였다. 이리저리 장소를 찾아보다 해안을 따라 계속되는 길이 있다는 금오도로 가기로 마음먹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준비를 하니 7시에 출발할 수 있었다. 고속도로에 진입하여 신기항 쪽으로 차의 속도를 천천히 올려갔다. 금오도로 가는 길은 새벽안개들이 진군하며 가득히 밀려오고 있었다. 소설 '무진기행'의 안개가 이와 같았을까?
김승옥의 소설, ‘무진기행’ 속 주인공은 서울에서 생긴 문제 거리가 해결되는 동안 고향에 머물기 위해 무진을 향한다. 하지만 그곳은 마음의 걱정거리를 덜어 주는 공간이 아니었다. 짙은 안개 넘어 무진이라는 공간은 도회지의 욕망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곳이었다. 주인공은 무진에서 만난 시람들에게서 투영된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된다. 고향 무진은 따스함이 아니라 욕망이 혼탁하게 꿈틀대는 곳이었다. 결국 그는 심한 부끄러움을 느끼며 무진을 떠난다.
그럼 난 오늘 안개를 뚫고 가고 있는 금오도에서 무엇을 보고 돌아갈 수 있을까?
신기항에 도착하자 김밥을 하나 사 먹고 배를 탔다. 금오도에서 자고 나올까 아니면 여수로 나와 1박을 할까 생각하며 바다 멀리 시야를 두고 있었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칠십은 넘은 듯한 4명의 나이 든 연인들이 바다 물결을 소재 삼아 이야기를 이어가고 있다. 언니, 언니 하며 주거니 받거니 대화는 멈추지 않는다. 금오도에 도착해 안내소에서 간단히 안내를 받고 금오도 비렁길 지도를 가지고 나왔다. 뱃속에서부터 눈길을 마주친 나이 든 여인들과 1코스 시작점으로 가는 버스를 같이 탔다. 버스는 바다를 끼고 달렸고 아침 햇볕은 버스 안쪽 깊은 곳까지 스며든다.
1코스에 도착하자 산길로 들어서는 사람은 나와 함께 배를 타고 오신 4분이 전부였다. 아마도 어제 한반도를 가로지르며 큰비를 쏟아부은 태풍 때문인 듯하였다. 난 그분들에게 가볍게 고개 숙여 인사하고 산길로 접어들며 발길에 힘을 주었다. 비 때문에 걷는 길이 좋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있었으나 산은 쏟아져 내린 폭우를 단 하루 만에 품에 안아 걷기 좋은 산길을 만들어 놓았다. 급하지 않은 걸음으로 이리저리 둘러보며 길을 따라 걸으니 오래지 않아 앉아 있을 곳이 보인다. 첫 전망대에 앉아 커피를 꺼내 마셨다. 저쪽에서 배에서 본 네 분 중 두 분이 다가오고 계셨다.
그분들과 함께 앞서거니 뒷 서기니 걸어야겠다 마음먹었다. 나이 들어 서로 이름 부르며 재잘대는 소리는 거친 껍질을 두른 나무에서 푸른 새싹이 돋아나는 모습과 같았다. 이럴 때면 시간은 비가역적으로 모든 것을 삼켜버리며 앞으로 나간다는 말은 단지 하나의 해석이라는 확신이 든다. 시간이란 삶에 두터운 껍질을 더하며 틈틈이 푸른 생명의 신선함을 보여주는 계절성을 간직하고 있다는 말이 다가오는 순간이다.
다시 인사를 나누고 일어서는데 두 분은 오던 길을 돌아간다. 나머지 두 분이 산길이 힘들어 못 걷겠다고 하여 돌아가야 한다고 한다. 금오도 비렁길을 걷기 위해 여수에서 택시 타고 항까지 왔다고 들었는데-----. 그들은 함께 온분들과 동행하려 오던 길을 돌아가고, 난 일어나 나가려 걸음을 다시 시작한다. 섬을 둘러싸고 있는 길은 바다 옆을 벗어나지 않고 있었다. 바다는 깊은 길이 나 있거나 울창한 나무에 가릴 때면 잠시 시야에서 벗어나 있지만 서로 곁을 떠나지 않았고, 난 그 길을 따라 단 한 명도 마주치는 사람 없이 걸었다.
마을이 나오자 2코스 길이 보였다. 2코스로 들어가기 전, 배가 출출하여 백반이라 쓰여있는 가계에 들어갔다. 그곳에선 평생 바닷바람을 벗어나지 않은 모습의 팔십 줄의 주민이 낮부터 소주잔을 기울이고 있다. 소설 속 한 장면처럼 그들은 뭍에 사는 자녀 이야기를 하며 이야기 줄기를 이어간다. 혼자 밥을 먹는 나에게 왜 혼자 왔냐며 소주 한잔을 권하며 말씀하신다. “우린 이렇게 살아요”. 그들의 이야기는 금오도 바닷바람을 타지 않고 태어난 손주 이야기로 이어지고, 난 한잔을 따라드리고 나와 2코스로 들어갔다. 전망 좋은 곳엔 쉴만한 작은 시설들이 준비되어 있었다. 나뭇가지 차양막 아래 놓여있는 벤치에 누워 있다 잠이 들었나 보다. 눈을 떠보니 산속 그늘과 바닷 색이 동조를 이루고 있었다. 시간은 짧은 시간에 내가 좋아하는 늦은 오후 햇빛을 만들어 놓았다.
마을버스 시간에 맞추어 2코스를 나왔다. 여수에서 자기로 마음을 먹었기에 항으로 돌아가는 버스를 탔다. 항으로 돌아가는 버스에서도 혼자다. 기사는 혼자면 버스가 출발하지 않는다고 한다. 난 마치 기사님의 말을 못 들은 듯이 버스비 얼마냐 하고 버스비를 통에 넣었다. 꼭 여수에 가서 잘 필요도 없었기에 출발하지 않으면 금오도에서 자도 되는데 몸은 돈을 냈으니 이제 가자는 듯 바로 뒷자리 의자에 덜썩 주저앉았다. 버스는 굽이굽이 나있는 길을 속도 조절 없이 내달린다. 간이 정류장에서 아는 분과 이야기를 하며 잠시 멈추더니 더욱 속도를 내기 시작한다. 도착할 즈음엔 손과 발에 너무 힘을 주었나 뻐근하다. 마지막 배를 타고 출발지였던 신기항에 도착했다.
전주로 향해도 늦저녁을 먹을 시간이면 도착할 듯했다. 잠시 머뭇거리다 여수 바닷가로 출발했다. 여수 바닷가에 도착해 반복해서 바닷길을 따라 왕복하며 또 걸었다. 이리저리 눈길을 두며 늘어서 있는 포장마차에 들어갈지 숙소로 들어갈지 망설였다. 초등학교 때부터 알고 지내던 친구가 여수에 살고 있는데 만날까? 또 잠시 머뭇거린다. 다시 걷다가 커피숍에 들어가 시원한 커피를 마시며 가져온 책을 보았다. 마음 따라 여행을 떠날 때면 자주 신화 책을 가지고 간다. 오늘은 캠벨의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을 등산 배낭에 넣어 왔다.
책을 보다 거리를 바라보다를 두어 시간 반복하다 커피숍을 나왔다. 맥주나 몇 병 마시고 잠이나 자려고 편의점에 들어가 좋아하는 맥주와 마른안주를 사서 숙소를 찾아 나섰다. 침대에 편안히 누워 마음을 들여다보았다. 난 금오도에서, 일정을 조절해 애써 찾아온 산길을 걷지도 못하고 돌아서는 그들을 만났고, 거친 살결의 촌로들이 술잔 기울이며 주고받는 이야기를 들었고, 바다를 벗어나지 않는 산길을 걸었다. 하늘에서 내린 폭우를 그대로 깊이 품고 있는 금오도처럼, 마음속 혼돈들의 충돌은 그대로 자기형상을 간직하며 가라앉아 있는 듯하였다.
커피숍에서 읽었던 책의 한 구절을 다시 읽어 보았다. “오직 탄생만이 죽음을 정복할 수 있다. 죽음의 끈질길 재현을 저지하기 위해서는 영혼의 내부에, 사회적 무리의 내부에 끊임없는 탄생의 재현이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갱생하지 않는다면 네메시스의 복수만이 우리가 얻게 되는 승리가 될 것이기 때문이며, 파멸은 우리 미덕의 껍질부터 깰 것이기 때문이다. ---- 죽음이 승리하는 날이 다가오면 죽음이 다가온다. 그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십자가에 달렸다가 부활하는 길뿐, 갈가리 해체되었다가 재생하는 길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