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4회로 나뉘는 에세이입니다
1.
모든 집에는 걱정을 책임지는 '걱정기계'가 한 사람씩 있다. 어제, 친한 친구 두 명과 얘기하다가 나온 결론이다.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울적하게 말하는 친구는 우리 중 가장 걱정이 많은 인물이다. 덕분인지는 몰라도 안 그래도 강아지상(相)인 친구-편의상 강아지라 하겠다-의 얼굴은 나이와 함께 눈꼬리가 점점 더 내려가고 있다. 덩달아 눈썹까지 처지고 있으니 당장 무슨 수를 내야 될 거 같다고 우리는 입을 모은다. 강아지는 곧 울 것 같은 얼굴로 하나마나한 소리를 한다.
"힝. 중력의 법칙이래."
"그럼 뭐라고 생각했는데?"
가끔 생각하지만 강아지는 아마 우리를 웃겨 주려고 이 세상에 나온 사람 같다. 우리를 웃겨 주기 위해선지는 모르지만 종종 아니 아주 자주, 그는 또 늦은 밤 우리에게 전화를 건다.
"왜 또?"
그런 날 우리는 -적어도 나는- 대뜸 그렇게 반응한다. 낮에 우리는 밥도 먹고 차도 마시며 실컷 어울리다 돌아왔으므로 늦은 밤의 그런 전화라면 굳이 듣지 않아도 무슨 얘기일지 너무 잘 알기 때문이다. 핸드폰 너머에서 강아지는 밑도 끝도 없이 묻는다.
"아까 나 때문에 기분 나빴지?"
"아까 언제?"
"아, 미안해. 아까 낮에 내가 너한테 그렇게 말한 건..."
강아지는 누군가를 만나고 집에 돌아가면 언제나 자기가 한 말을 다시 다 되짚어 보고 그러면서 후회하고 반성하는 타입이다. 너무 착해서 그러려니도 싶고, 또 내가 사과를 잘 받아 줘야 그가 마음 편히 잘 수 있다는 것도 알면서 이따금 짜증이 난다. 강아지가 말하는 미안한 순간이 정말이지 기억도 나지 않는 데다가 상대는 생각도 못하는 일을 두고 혼자 애면글면했을 걸 생각하면 진심으로 안된 마음이 들기 때문이다.
강아지 옆에 앉아있는 또 다른 나의 친구, 그 집은 사정이 달랐다. 뜻밖에도 그 집에선 특별히 똑똑한 그의 남편이 걱정기계를 도맡고 있다 했다. 걱정기계라는 별명도 남편의 한결같은 재주에 탄복한 나의 친구가 지어 준 것이라 했다. 무슨 걱정을 그렇게도 끝없이 생산해 내는지 몸속에 24시간 풀 가동하는 기계가 장착된 게 아니고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어쩐지... 스무 살 때부터 고양이상(相)이었던 이 친구-편의상 고양이라 하겠다-의 눈은 처질 기미도 없이 잘 그린 아이라이너와 함께 점점 더 치켜 올라가고 있다. 집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걱정을 똑똑한 남편이 대신해 주고 있으니 늙을 일도 없겠지.
아무려나. 무엇 하나 빠질 것 없어 보이던 고양이의 남편이 날이면 날마다 걱정이나 생산하고 있는 걱정기계였다니... 우리는 놀라는 시늉을 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놀랍다기보다는 위로가 됐다. 매사 단호하고 명쾌한 고양이 앞에서 강아지와 나, 약간 부족한 우리 둘은 늘 주눅 아닌 주눅이 들어 있었는데 그래봤자 고양이도 그간 걱정기계랑 살고 있었다니... 별 것 아니구나 싶었다.
"오홋 너의 남편, 반전 매력이네."
이상하게도 마음이 푸근해진 내가 그렇게 대꾸하자 고양이는 매력 같은 소리 하고 있다,며 그간 있었던 속 터지는 에피소드들을 나열했다.
"진짜?...아... 진짜?..."
강아지가 쏟아지는 에피소드에 계속 탄성을 내질렀다.
"아, 진짜는 뭐가 아, 진짜야? 내가 보기엔 너도 걱정기계 맞거든."
마지막 한 마디로 정리를 끝낸 고양이가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래서? 너네 집 걱정기계는 누군데?"(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