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4회로 나뉘는 에세이입니다
3.
어렸을 때 나는 이야기를 좋아했다. 아빠가 회사에서 몇 뭉치씩 가져오는 갱지-뒷면은 활자가 가득한 이면지로 우리는 그것을 통신지라고 불렀다-덕분에 우리 집엔 늘 종이가 넘쳐났고 우리 세 자매는 매일 저녁 노란 백열등 불빛 아래 엎드려 그림을 그리고 이야기를 지어내는, 요즘 식으로 하면 공동 애니메이션 작업을 하곤 했다.
우리가 꾸민 이야기는 대개 계모에게 학대받는 콩쥐전의 아류이거나 신데렐라와 콩쥐전을 적당히 섞어 대략 얼버무린 내용들이었는데 주인공이 계모의 가시 달린 회초리로 종아리를 맞는 장면은 하루에 한 번은 등장하는 단골씬이었다. 둘째와 내가 꾸며대는 뻔한 이야기에 과몰입된 막내가 미간에 잔뜩 인상을 쓰고 듣던 모습이 잊히질 않는다.
짓는 것 못지않게 듣는 것도 좋아해 밤에 잠자리에선 우리와 같은 방을 썼던 미월이 언니에게 이야기를 해달라, 조르곤 했다. -미월이 언니는 엄마의 고향집 팔촌의 사돈, 그 사돈의 오촌네 큰 딸인가, 였는데 줄줄이 달린 동생들 틈에서 입이라도 하나 덜 겸 우리 집 부엌일을 돕기로 하고 올라온 처녀였다- 언니의 레퍼토리는 단조로웠고 덕분에 우리는 밤이면 밤마다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같은 얘기를 듣고 또 들었다.
이야기의 시작은 밑도 끝도 없이 팔다 남은 떡함지를 머리에 인 할머니가 집을 향해 부지런히 걸어가는 장면부터였다.
밤은 이슥하고 할머니의 집은 고개를 대여섯 개는 넘어야만 당도하는 깊고 깊은 숲 속의 오막살이다. 한 고개를 넘자 숲 속 어디선지 호랑이 한 마리가 성큼 나타나 할멈 할멈,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한다. 할머니는 어쩔 수 없이 옛다, 하고 떡 한 덩이를 호랑이에게 던져준다. 두 고개를 넘자 그새 떡을 다 잡순 호랑이가 다시 떠억 나타난다. 할멈 할멈,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할멈은 하는 수 없이 떡 한 덩이를 또 던져준다. 그러나 어떻게 된 것인지 이 뻔뻔한 호랑이는 셋째 고개에도, 넷째 고개에도, 다섯째 고개에도 계속 나타나 떡타령을 한다.-정말이지 짜증 나는 타입이 아닐 수 없다-. 할머니의 남은 떡을 모조리 다 먹어치우자 염치도, 인정도 없는 호랑이는 이제 할머니의 한 팔과 다른 한 팔... 한 다리와 또 다른 다리를 내놓으라 하고 종국에는 남아있는 할머니의 몸통마저 다 먹어치운다. 그리곤 부른 배를 두드리며 유유히 두 남매가 사는 오두막을 향해 걸어간다.
들어도 들어도 심란한 미월이 언니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 났는데 생각할수록 얄궂다. 나중에 찾아보니 이 이야기에도 두어 가지 버전이 있건만 하필 심장만 오그라드는 그 대목에서 끝을 낼 건 뭐란 말인가.
아는 바와 같이 이 이야기의 정설엔 적어도 종지부는 찍혀있다. 비록 할머니는 호랑이에게 잡혀 먹히나 똘똘한 남매는 호랑이를 골탕 먹이고 하늘로 올라가 해와 달이 되는 것이다. 할머니도 잃고 자신들은 해와 달이 돼 영원히 만날 수도 없게 된 남매의 운명이 과연 해피엔딩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런가 하면 어떤 버전은 잘못을 뉘우친 호랑이가 할머니에게 떡 만드는 것을 배운다는 참으로 허무맹랑한 결말도 있다.
어느 쪽이 원조인지는 몰라도 한창 자라나는 어린 아기들을 위해서라면 조금 터무니없더라도 뒷이야기가 나을 것 같은데 아무래도 우리 조상님들에겐 비장미에 대한 특별한 감수성이 있었나 보다. 아무리 어려도 운명이 얼마나 야속하고 허무한 것인지에 대해서 만큼은 조기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단호한 현실주의자였거나. 어쨌든 애매한 곳에서 마무리를 해버리는 미월이 언니 덕분에 어린 나는 밤새 뒤숭숭한 꿈에 시달렸을지도 모르겠다. 더 어린 두 동생들은 어땠을까. 나보다는 일찍 잠이 들어 그 애들 기억 속의 할머니는 그저 떡이나 뺏기고 말았을까. 그랬다면 다행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