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아를 추억함 1

총 4회로 나뉜 에세이입니다.

by 새림

1.

일주일 사이 세 번이나 성당엘 갔다. 한 번은 성당 다니는 친구가 갑자기 만나자고 해서 약속 장소로 잡은 게 그와 나의 집 중간에 있는 성당 앞 찻집이었다. 통화를 하고 삼십 분만에 우리 둘은 성당 앞마당이 보이는 커피빈 2층에서 만났다.


친구는 내 친구들 중 가장 나중에 만난, 그러니까 3년 전쯤 알게 된 친구인데 이 세상 사람답지 않게 착하고 순수해서 볼 때마다 어찌 수녀님이 되지 않고 여기에 있을까 싶은, 그런 사람이다. 영어공부 한다고 만나서 공부는 건성하고 대신 오래오래 밥을 먹고 차를 마셨다. 대개의 경우 우리의 티타임은 황망히 끝이 나곤 했는데 문득 시간을 확인한 친구가 벌떡 일어났기 때문이었다. 친구는 늘 바빴다. 성당 오르간 반주도 해야 하고 늦둥이 막내도 챙겨야 하고 그러면서 동시에 자기 일도 해야 한다고 했다. 너무 바쁘게만 살아와 저녁 할 시간이 다 되도록 이렇게 누군가와 차를 마시고 수다를 떠는 게 믿을 수 없다고, 황망한 와중에도 친구는 그 말을 잊지 않 떠나곤 했다. 그럴 수가 있나. 이제 아무도 나의 손을 필요로 하지 않아 오히려 그것이 서운한, 한가하기 짝이 없는 나로선 그야말로 믿을 수가 없었다.

"아유... 좋다. 너무 좋다."


커피빈에서 나를 보자마자 친구는 좋다는 소리를 열 번은 했다. 우리 둘이 같은 동네 살아서 느닷없이 번개를 한 것도 좋은데 특별히 내가 자기네 성당까지 이렇게 왔다니 너무 좋아서 꿈만 같다고도 했다.


"꿈만 같을 것까지야... 그리고 여기가 커피빈이지 성당이야?"


내가 그랬더니 정말 꿈만 같으니 오늘 자기네 성당 마당까지만이라도 꼭 들어가 보자고 했다. 저녁 햇살을 받고 선 붉은 벽돌의 성당은 고즈넉했고, 참 이뻐서 한번 들어갈 수도 있었으련만 친구가 그리 말하니 오히려 쑥스러웠다. 마당까지만, 이라는 걸 굳이 굳이 사양하고 것도 모자라 손사래까지 치면서 헤어졌다.



두 번째 간 것은 이틀 뒤였다. 같은 아파트 사는 여동생이 저녁에 전화를 해 속상한 일도 있고 그러면서 동시에 살도 빼야 하는 안타까운 상황이니 운동도 할 겸 성당까지 걸어갔다 오자고 했다.

낮 동안 삼십몇 도까지 끓었던 거리가 저녁이라고 그래도 바람이 불었다. 햇빛은 그새 다 사그라졌건만 우리는 해라도 피하려는 사람들처럼 성당까지 가는 길 내내 긴 아파트 담장에 착 붙어 걸어갔다. 무슨 일이냐고 묻지는 않았다.

내성적인 동생은 일 년 삼백육십일을 작업실에만 박혀있느라 어떤 땐 친한 친구 보는 것조차 썩 내켜하질 않았다. 속상한 일이 있으면 졸졸 털어놓는 나와는 달리 그는 그런 일이 지나가고 석 달쯤 후에야 그때 그만저만한 일로 내가 맘고생 좀 했었어, 하고 의젓하게 말하곤 했다. 물어보나 마나 아무 대답도 안 할 것이므로 같이 걸어주는 일밖엔 달리 할 것이 없으리라, 터덜터덜 걷는데 동생이 말을 꺼냈다.

"성당이나 다시 다닐까. 근데 다시 다니려면 그동안 지은 죄를 다 사해 받아야 되고 고해성사도 해야 된다네."

"네가 무슨 죄가 있는데?"

"세례까지 받았는데 너무 오래 냉담한 거. 그 죄가 크대."

"너 세례 받은 게 고작 열몇 살 때인데 안 받은 것으로 치면 안 되나?"

동생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날 봤다. 내가 무식한 소리를 한 모양이었다.
동생은 중학생 때 우리 식구 누구도 다니지 않던 성당엘 꿋꿋이 다니고 어느 날엔가는 살던 집 근처 역촌동 성당에서 세례를 다 받았다. 세례 받던 날 내가 갔었는지 안 갔었는지는 기억도 나지 않는데 이상하게도 그날이 한겨울이었던 것 같기는 하다. 성당 앞 돌계단을 내려오던 장면도 얼핏 생각나는 것도 같다. 그렇다면 갔었나. 꿈일런지도 모른다. 아무튼. 생각이 이리도 희미한 시절의 일이니 세례도 안 받은 걸로 치면 될 것 같구먼. 안 되는 일인가 보다.


그 주 토요일도 저녁을 먹고 또 동생과 성당에 갔다. 속상한 일은 여전히 해결 안 됐고 살도 여전히 빼야 된다며 깔깔 웃기에 그러자고 했다. 보슬비가 오기에 우리는 각자 우산을 쓰고 또 아파트 담장을 따라 말없이 걸었다.

마침 성당 마당에선 바자회를 하고 있었다. 물건 구경 좋아하는 우리 자매는 누구랄 것도 없이 성큼 마당으로 들어섰다. 비도 피할 겸 쳐놓은 천막 안엔 참기름과 들기름, 고춧가루와 메밀국수, 벌꿀에 묵주, 접이식 꽃무늬 부채와 자그마한 수국이 심어진 화분까지... 어떤 맥락으로 모인 것인지는 알 수 없는 물건들이 올망졸망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것들을 일일이 다 살펴본 다음 우리는 대책도 없이 보라색 수국분을 네 덩이나 샀다. 누군가 매우 양심적으로 내렸다는 참기름도 각기 한 병씩 사고 제주도서 온 메밀국수도 샀다.

"기도도 해야 되고 살도 빼야 되는데 기도도 못하겠고 집까지 걸어도 못 가겠네."

계산을 하며 동생이 말했고 내가 하하 웃자 수국 팔던 여자분이 화분을 맡아줄 테니 걱정 말고 들어가 기도하고 오라고 성화를 했다. 아니라고 아니라고, 우리는 그저 지나가다 들렀으니 그럴 것까진 없다고 나는 또 손사래를 절레절레 쳤다. 동생 혼자 마당의 성모상 앞에서 고개를 숙인 채 잠시 서 있었고 우리는 욕심껏 사들인 수국분을 끌어안고 택시를 잡았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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