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3편으로 나뉜 에세이입니다.
3.
동생이 오랜만에 만난 화가들과 교수들과 늦도록 어울릴 때 나는 호텔방에서 빈둥빈둥 책을 읽었다. 소설가 김연수의 산문집이었다. 달리기 광인 작가는 책에서 말한다.
'마라톤에 완주하느냐 실패하느냐는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매일 달리는 것은 내가 할 수 있다. 할 수 없는 일을 해낼 때가 아니라, 할 수 있는 일을 매일 할 때 우주는 우리를 돕는다. 설명하긴 힘들지만 경험상 사실이다.'
동생에게 힘이 되는 문장이겠다. 픽업해 온 로컬음식과 함께 캔맥주를 홀짝이다 말고 나는 그의 겸손한 문장에 줄을 그었다. 어느새 밤이었고 검은 유리창 너머로 장마 같은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소리가 멀리, 고적하게 들려왔다. 내가 무얼 하겠다고 싱가포르엔 왔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고 쓸쓸했다. 아마 여행을 가자 가자, 해놓고 혼자서만 놀러 다니는 동생이 괘씸해서였을 거다.
학자였던 아빠는 우리들 중 하나가 당신의 뒤를 이어 공부하길 바라셨다. 큰 딸인 내게는 더구나 그런 기대를 하셨던 것 같은데 나는 공부보다는 글이 쓰고 싶다고 했었다. 아마 고등학교 때 공부가 하기 싫어서 쓴 소설을 작문선생이 이 반 저 반으로 들고 다니며 읽어준 덕분일 수도 있다. 나의 뜬금없는 장래 희망을 점잖으셨던 아빠는 또 흔쾌히 존중해 주셨다.
'그러면 한 번 잘 써 보거라.'
돌아가신 아빠께 미안하다. 글을 잘 써냈다고는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엄마는 항상 시집 잘 가면 되지,라는 전근대적인 말을 입버릇처럼 했는데 그나마 겨우 엄마 말은 듣는 딸이 됐는지는 모르겠다.
내가 겁보라는 것 외에도 마지막으로 한 가지 변명을 더하자면 나는 왜 꼭 모든 사람이 성공을 해야 되고 일등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늘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는 거다.
돌이켜보면 어느 한 때 나도 무엇인가가 되고 싶었고 그 열망 때문에 나를 미워하고 못 견디게 한 적도 있다. 그렇지만 어느 순간 나를 놓아줬다. 지속되지 못한 열망을 가라앉힐 반대 논리를 나 스스로 만든 것도 같다. 그때의 나를 생각하면 나는 내가 안 됐었다. 그만 마음이 편해지는 걸 보고 싶었을 것 같다. 오래 같이 살다 보니 어떤 땐 내가 내 자식처럼 가련하거나 딱하게 느껴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누군가 거기까지가 너의 한계구나. 그런 어정쩡하고 자신 없는 태도가 너를 이렇다 할 성취 없이 살게 했겠구나, 한다 해도 어쩔 수 없다.
언젠가 티브이에 나온 어떤 한국계 미국인을 본 적이 있다. 본인은 물론 자식 모두를 다 하버드를 졸업시킨 그는 배고픔과 험한 노동, 참담한 모욕을 다 견디며 어떻게 하버드까지 가게 됐는지를 담담히 얘기하고 있었다. 그런 장면을 볼 때... 수능에서 전국 수석을 한 젊은 친구의 바늘 하나 꽂을 데 없는 야무진 인터뷰를 볼 때... 아, 저런 생도 있구나, 잠깐 부럽긴 하지만 곧 그 생이 꼭 나의 생보다 나은가, 하는 게으르고 나른한 의구심을 품었었다. 나보다 낫다면 그건 그가 하버드엘 가고 수능에 수석을 해서가 아니라 그런 하루하루를 한결같이 지키고 버텨냈다는 것이리라.
천성이든 노력이든 그것을 해냈다는 건 자랑할만한 일일 테다. 남이 보기에도 대단할 때 본인은 얼마나 스스로가 대견할까. 스스로에 대한 그런 대견함, 뿌듯함이야말로 어쩌면 인생에서 드문드문 맛보는 최고의 선물일지 모른다. 누구라도 마찬가지리라.
그렇지만 거기까지다. 나이를 먹으며 덤으로 얻은 마음일 수도 있지만 나는 이렇게 나를 위로해 본다.
어쨌든 나를 이렇게 편하게 풀어주었다는 것. 내 인생을, 내 아이를 너그러이 내려놓으려 하는 것. 너무 애쓰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고 노력하는 것. 그런 것도 어떤 의미에선 대견한 일이지 않나... 가끔이지만 나도 어떤 땐 이런 생각도 의욕도 없는 내가 퍽이나 좋기-물론 한 달에 한 번쯤, 아주 기분 좋은 날에만 드는 마음이긴 하다-때문이다.
복도에서 누군가의 인기척이 들려오고 있었다. 동생이 오려나? 맥주 한 모금을 홀짝 마시고 나는 동생이 오면 어떤 표정을 지을지 잠시 생각했는데 그러는 동안 인기척은 점점 멀어져 갔다. 시계는 어느덧 자정 가까이를 가리키고 있었다. 동생은 대체 언제 오려나? 이제 그만 왔으면 좋겠다. 까무룩 졸음을 느끼며 나는 그런 생각을 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