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4회로 나뉘는 에세이입니다.
2.
영국의 에세이스트 찰스 램의 필명은 엘리아였다. 평생 성실한 직장인이었던 그는 엘리아란 이름으로 밤마다 글을 썼고 덕분에 그의 소박한 에세이들은 200년의 세월을 지나도록 여전히 사랑을 받고 있다.
반면 그의 일생은 결코 행복하지는 못했다. 찢어지게 가난한 집의 일곱 형제 중 막내로 태어났으나 그들 중 절반 이상을 병으로 잃고 결국 남은 형제라곤 큰 형과 누이 삼 남매뿐이었다. 어디 그뿐인가. 정신질환을 앓던 누이가 어머니를 살해하는 어마어마한 일을 겪기까지 했다. 누이를 보호소에 보내야 한다는 형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찰스 램은 평생을 독신으로 살면서 끝까지 누이를 돌보았다.
결혼도 하지 않은 그가 글쓰기와 직장 생활을 같이 하고 동시에 아픈 누이를 돌보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어느 글에서 썼듯이 그는 언제나 돈 걱정 없이 글만 쓸 수 있는 누군가를 부러워하기도 했다. 그렇다고 가난과 질병으로 얼룩진, 얼핏 억울해 보이는 자신의 운명을 한탄하지만도 않았다. 대신 글을 썼고 상처를 삭인 조개가 진주를 만들듯 힘겨운 삶을 견딘 그의 글 구석구석엔 위트와 다정한 여유가 묻어난다.
찰스 램 얘기를 하다 보면 내가 좋아했던 문필가 고종석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언론인으로, 언어학자로, 소설가로 왕성한 집필을 한 그의 책 중 <엘리아의 제야>라는 소설집이 있다. 너무 오래전에 읽은 책이지만 표제작을 비롯한 몇몇 작품은 희미하나마 아직도 기억 속에 남아 있다. 그만큼 울림이 있었다.
얘기는 이렇다. 찰스 램과 마찬가지로 주인공 남자는 몸이 불편한 누이동생-제목에서도 짐작했듯 이 소설은 찰스 램과 자신의 인생을 빗대어 쓴 것일지도 모른다-그리고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으나 시력을 잃어가고 있는 딸과 함께 사는 시인이다. 그가 친구 문인들과 술을 마시며 보내는 제야 무렵의 밤이 소설의 배경이다.
돌봐야 할 편치 않은 식솔이 둘이나 있건만 다른 직업 없이 오직 시만 쓰는 그는 애석하게도 가난한 무명이다. 치과의사였던 전처는 그와 이혼 후 잘 나가는 베스트셀러 작가와 결혼을 했다. 제야에 모인, 한 때는 둘도 없이 친했던 다른 친구들 역시 이제는 문단에서 제법 자리를 굳힌 '메인 스트림'이 되어 그는 이제 그 자리에서 조차 씁쓸한 소외감을 느끼곤 한다.
소설이 여기서 끝이라면 서글프거나 허무한 인생살이의 일면까지만 보인 것일 테다. 그러나 작가는 소설 마지막에 비록 취기이긴 하나 누이의 볼에 입을 맞추는 장면을 넣는다. 누이 역시 오빠의 취중 도발에 오빠가 이혼한 게 차라리 나에겐 다행인 것 같아,라는 식의 당돌한 위로로 응수한다.
재밌다. 소설을 읽는 매력이기도 하다. 겉보기엔 한없이 초라한 인생, 가혹한 운명이지만 그 속 겹겹이엔 우리가 짐작할 수 없는 다른 종류의 누추하지 않음과 온기가 숨어 있는 것. 그래서 누군가의 눈에는 한없이 고역이어도 각자에겐 그럭저럭 다 견딜만하고 짊어질만한 것이 인생이지 않을까. 그랬으면 좋겠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