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아를 추억함 4(완)

총 4회로 나뉘는 에세이입니다.

by 새림

4.

시집갈 때까지 우리와 살겠다던 미월이 언니는 그로부터 몇 년 뒤 그러니까 내가 열 살이 채 안 되었을 때 우리 집을 나갔다. 엄마가 이모와 전화하는 소리를 들으니 언니는 아마 남자를 만난 것 같았다. 아무래도 일요일마다 나가던 교회에서 만난 것 같다며 엄마는 언짢은 얼굴을 했었다.

"내가 누구냐, 뭐 하는 사람이냐고 다그치니까 모기만 한 소리로 전봇대 올라가는 사람이라, 하드라. 그것도 열 살짜리 아들이 있는 남자래... 그건 모르지 상처를 했는지 이혼을 했는지. 참하게 여기서 일 배우고 있으면 적당한 짝 찾아 어련히 시집도 보내줄 것을... 그리 안 봤는데 참. 알다가도 모를 게 사람이라고. 세상에 저보다 나이가 그렇게 많은 남자가 왜 좋았을까."

통화를 하던 엄마는 내가 듣고 있는 기색이자 말소리를 작게 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겨우 스무 살 먹은 미월이 언니가 그럼 열 살짜리 남자아이의 엄마가 된다는 소린가. 내가 생각해도 그건 좀 징그럽고 이상했다.

언니가 집을 떠나던 날, 유난히 언니를 따르던 둘째 동생이 언니의 치마꼬리를 붙잡고 대성통곡을 했다. 동생은 맨발로 대문 밖까지 뛰쳐나가 동네가 다 떠내려가도록 울었는데 그런 아이를 달래며 엄마도 좀 울었고 차마 발길을 못 떼던 미월이 언니도 울었다.

그리고 반년쯤 지나 미월이 언니는 사브레 쿠키 한 상자를 사들고 우리 집에 다시 왔었다. 떠날 때와는 조금 달라진 모습이었다. 단발이었던 머리에 파마를 하고 입고 온 옷도 어딘지 어른스러웠다. 둘째를 보자 언니는 후드득 눈물을 쏟았건만 언니가 떠나고 크게 아프기까지 했던 둘째 동생은 언니를 외면했다. 엄마는 언니에게 어딜 가든 정신 똑바로 차리고 착하게 살면 복이 온다고, 너나 잘 살면 되지 이제 여긴 안 와도 된다고 약간은 냉정하게 말했다. 언니는 나와 셋째를 한 번씩 끌어안아준 다음 이번에는 울지 않고 떠났다.


언니는 진짜 열 살짜리 남자애의 엄마가 됐을까. 그를 얼마나 사랑하기에 우리 집을 떠났을까. 골목을 빠져나가는 언니의 뒷모습이 칼을 받은 잔다르크처럼 비장하게 느껴져 나는 뜬금없이 그런 생각을 했다.


5.


미월이 언니 소식을 다시 들은 건 이달 초 엄마에게서였다. 두 동생들과 함께 엄마를 모시고 집 근처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는데 밥을 다 먹고 후식을 먹던 엄마가 갑자기 생각이라도 난 듯 갑자기 말했다.

"참 지난 주일날 교횔 갔는데 어느 아주머니가 와서는 혹시 누구 엄마 아니냐고 둘째 이름을 말하더라고... 모르는 얼굴이라 맞긴 하는데 나를 어찌 아시냐고 했더니 대뜸 자기가 박미월이라는 거야. 내가 아는 박미월이는 하나밖에 없는데 그럼 그 옛날 그 박미월이냐고 했더니 초승달 같은 눈으로 웃으며 내 손을 덥석 잡는 거야. 아이고 아주머니... 긴가민가 하여 아까부터 계속 보고 있었노라면서. 그러고 보니까 알겠더라고. 늙어도 웃는 건 똑같아. 왜 걔 눈이 참 순했거든."

안성 어디 살고 있는 미월이 언니는 서울에 왔다가 마침 주일이라 큰 교회 구경도 할 겸 와봤다고, 아주머니가 교회 다니시는 걸 보니 너무 좋다고, 말했더란다.

"살아있으니 그렇게 또 만나더라... 늬이들 어찌 사는지, 어디 사는지 다 묻고 보고 싶다 하드라. 걔가 심성 하나는 참 착했거든. 근데... 사는 건 여직도 힘든지......"

엄마는 말끝을 흐렸고 눈을 크게 뜨고 듣던 둘째 동생이 언니 한 번 보고 싶다,라고 작게 말했다. 속상한 일이 있다는 막내 동생은 그것 때문인지, 성당까지 걸어 다녀선지 살이 좀 빠져있었다. 그리고 밥 먹는 내내 별 말이 없었다.

그날 저녁엔 가회동 성당에서 하는 친구의 파이프 오르간 연주를 보러 갔다. 청록색 새틴 드레스 속에 아라비아의 공주들이 입을 것 같은 바지를 입고 친구는 내가 모르는 어떤 성가를 연주했다.

여리고 고운 외모에 속은 수녀님 같이 거룩하며 그러면서도 어린애처럼 솔직하고 용감한 내 친구. 이 친구를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 연주하는 친구의 좁은 어깨를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고 약간 뭉클했다. 꽃다발을 든 채 가족과 지인들 사이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는 친구를 뒤로 하고 나는 살그머니 성당을 빠져나왔다.

'주의 천사 엘리아 병거 타고 하늘에 올라가던 일을 기억합니다. 귀하고 귀하다. 우리 하나님이 들려주시던......'

친구가 여태 연주해 준 어려운 성가 대신 갑자기 그 노래가 생각났다. 오래전 부엌에서 밥을 지으며, 총채를 들고 마루 그릇장이며 책장 구석구석 먼지를 털며, 우리와 집 앞 식료품 가게로 콩나물과 두부를 사러 가며, 언니는 즐거이 그 노래를 불렀었다.

미월이 언니는 그동안 어찌 살았을까... 이따금씩 생각도 났었는데... 둘째 동생이랑 같이 한번 만나볼까... 울면서도 그 남자에게 시집을 가고 남의 아이의 엄마까지 됐다면서... 좀 번듯하게 살 것이지... 동생의 속상한 일은 좀 해결이 됐을까.... 동생은 왜 나 같지 않고 입이 그리 무거운가...그런저런 생각들을 흘려보내며 나는 걸었다. 멀리 안국역이 보였다.(끝)

keyword
목, 일 연재
이전 10화엘리아를 추억함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