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과 나 1

총 3회로 나뉜 에세이입니다.

by 새림

1.

동생과 싱가포르에 다녀왔다. 창이 국제공항 승차장에서 우리는 택시를 기다리고 있었다. 밤이었지만 여전히 더웠고 습기를 잔뜩 머금은 바람은 눅진했다. 그 익숙한 공기가 우리를 지난 시간으로 한 번에 데려다 놓는 것 같았다.

"아, 이 냄새... 싱가포르는 여전하네."

동생이 말했다. 약간 상기된 표정이었다. 나도 덩달아 고개를 끄떡였다. 그러고 보니 우리가 그곳을 떠난 지도 어느새 십 년의 시간이 훌쩍 지났다.

이번 여행은 사실 동생의 제안이었다. 싱가포르에서 열리는 국제 아트페어에 동생도 작품 몇 점을 출품하게 된 것이었다.

"그럼 겸사겸사 싱가포르 한번 다녀올까?"

동생이 그렇게 말했을 때 나는 기다리기라도 한 듯 반색을 했다. 싱가포르라니... 오랜만에 둘이 갈 생각을 하니 불현듯 십 년 전 그 시절이 떠올랐다. 일도 일이지만 둘이 같이 쑤시고 다니던 그 거리와 그 식당들을 다 다시 다녀봐야지. 속으로는 그런 야무진 계획도 착착 세웠더랬다.

십여 년 전쯤 동생과 나는 이런저런 이유로 싱가포르에 갔다. 그리곤 적도 아래의 그 작은 나라에서 5년 남짓을 살게 됐었다. 조금은 느닷없는 일이었다. 우리 둘에겐 다 아이가 있었고 서울에서 그랬듯 그 낯선 나라에서 우리의 첫 번째 역할도 물론 엄마 노릇이었다.

하루키가 그랬던가. 외국인으로 산다는 것은 그동안은 몰랐던, 그러니까 내가 얼마나 얼뜨기이며 바보인지를 비로소 알게 되는 거라고. 서울보다 훨씬 작지만 훨씬 번화하며 훨씬 많은 인종이 살고 있는 그 도시는 적응할 것도, 해야 할 것도 많았다. 그곳에서 우리는 엄마이자 동시에 이방인이 되었다. 둘 다 쉬운 일은 아니었다.


소 뒷발질하듯 더듬더듬 집을 구하고 은행계좌를 열고 휴대폰을 뚫었다. 아이들 학교를 알아보고 입학담당자와 인터뷰를 하고 이윽고 입학을 시켰다. 집 근처의 그로서리를 찾아내고 버스 노선을 익히고 세탁소와 우리가 다닐만한 병원의 위치를 검색하고 나자 약간 한숨이 쉬어졌었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낸 첫날 동생과 나는 버스를 타고 조금 먼 재래시장 구경을 갔다. 거기서 더 싸고 더 신선한 야채와 과일을 사 오기는 일도 나름 재미있는 일이었다. 저녁이면 둘이 같이 아파트 단지를 세 바퀴고 네 바퀴고 하염없이 걸었다. 그 모든 것들은 이른 아침이거나 밤에 했는데 대낮의 싱가포르란, 가만히 집에 있거나 냉방이 잘된 택시를 타고 냉방이 잘된 시내로 나가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을 만큼 무더웠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반년쯤. 어느 정도의 적응기가 지나가자 바야흐로 인생 전체가 하루아침에 휴지기에 들었다고 느낄 만큼 무료하고 답답한 일상이 시작되었다. 하루하루는 믿을 수 없이 똑같았으며 뜨거운 햇볕 아래서 끝도 없이 이어질 것 같은 대낮의 적요는 이상하게도 비현실적이었다. 때로 그 치렁치렁한 고요를 뚫고 이웃 누군가의 낯선 이국의 목소리가 들려오기도 했는데 그럴 때면 영락없이 내가 지금 어디에서 무얼 하고 있는 것이지? 하는 아득한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 오후 네 시가 되면 이른 아침 아이를 실어갔던 스쿨버스가 아파트 정문으로 들어왔다. 스쿨버스가 들어오는 걸 보면 더위에 잔뜩 늘어져 있던 나는 갑자기 물을 맞은 열대의 화초처럼 되살아나곤 했다. 학교에서 돌아오는 아이를 맞이하는 일이 유일한 일과인 듯.

그 무렵 동생은 그 나라에 있는 달랑 두 개뿐인 미술대학 중 하나의 원서를 들고 왔다. 그 대학에서 다시 학부를 시작하겠다는 거였다. 그것도 붓 한번 잡아보지 않은 손으로 미술을 시작한다고 했다.

동생의 원대한 계획에 나를 포함한 가족 모두는 열렬히 반대했다. 반대를 해야 할 이유는 아흔 아홉 가지쯤 됐다. 첫째는 나이, 둘째는 미술의 ㅁ도 모르는 문외한이라는 거, 셋째는 그간 동생이 미술에 재능이 있다고는 아무도 느낀 바 없으며 넷째 모든 예술이 그렇듯 그 바닥에서 살아남기란 낙타가 바늘귀를 지나가는 것보다 어려운 일이고 다섯째 그동안 해온 공부가 -동생은 한국에서 자신의 전공으로 나름 박사과정까지 마친 상태였다-너무 아깝다는 게 대략의 이유였다.

그러나 그 아흔아홉 가지 반대에도 불구하고 동생은 스무 살짜리 싱가포르 대학생들과 함께 꿈에 부푼 신입생이 됐다. 그때 동료들 사이에서 동생의 별명은 코리안맘이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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