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은사 산책 3

by 새림

3.



실은 나도 그날 나의 아빠를 떠올렸었다. 나는 일찍 아빠를 잃었다. 굳이 잃었다고 말하는 것은 언제나 내 마음에 아빠가 너무 빨리 갔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내 마음일 뿐이지 그날 순천 부부 앞에서 꺼낼 수 있는 얘기는 아니리라.

언젠가 라디오 음악프로에 나온 누군가 말했다. 그이 역시 죽은 누군가를 그리워하며 하는 말 같았는데 이런 말이었다. 사람은 일생에 두 번 그 사람-죽은 누군가-과 살더라, 한 번은 실제로 그와 살 때고 다른 한 번은 자기가 그 사람의 죽은 나이가 되었을 때더라 거였다. 작년에 나도 돌아가던 그 해의 아빠 나이가 됐다. 지금의 내가 그렇듯, 마음은 여전히 청년 그대로였을 아빠가 느닷없이 죽음을 받아들여야 했을 때의 심정을, 새삼 그의 나이가 되어 짐작해 보았었다.


아빠를 잃고 몇 년은 분한 마음이 가시질 않았다. 고작 그걸 살고 가다니, 사이좋던 우리 가족의 인연이 그저 스물몇 해라니, 애통하고 억울했다. 어쩌다 시내에 나가 아빠가 근무하던 사무실 근처라도 지날라치면 그렇게 일찍 아빠를 앗아간 운명이 노여워 고개를 외로 꺾었다.


그 야속함은 시간이 가도 바래질 않아 식당 같은 데서 아빠 연배쯤일 노인들-그들은 대개 맛있게 밥을 먹고 술을 마시며 가족들이나 친구들 속에 섞여 웃고 있었다-과 마주치면 대체 저이들은 무슨 복이 많아 저러고 사나, 보기가 싫었다. 거리에서, 지하철에서, 젊은이들과 말씨름이라도 하고 있는 괴팍하고 밉상스러운 노인을 보면 저런 영감도 사는 세상을 우리 아빠는 뭐가 그리 급해서 일찍 갔나 탄식이 절로 나왔다.


아빠가 아직도 살았으면 올해 60인데 70인데... 80인데... 부질없는 나이를 세월 따라 같이 셌다. 그러다가 어느 날 아빠는 무용한 그의 나이 아흔을 바라보게 되었다. 그것을 끝으로, 나는 더 이상 아빠의 나이를 세지 않았다. 그의 죽음이 더는 못 견디게 억울하지도 않았다.


젊어 떠난 아빠와 아흔이란 숫자는 너무나 멀고 멀어서 상상이 되지 않는 것이었을까. 세상에서 하는 우스갯소리대로 살아도 죽어도 그만인 나이라 내 마음도 슬그머니 다스려진 것일까. 아니면 이 거대한 메트릭스의 일점일 뿐인 인간의 연약하고 덧없는 운명을 이제야 깨닫게 된 것인가.



밥과 후식을 다 먹고 잘 가꾼 마당 구석구석과 뒤뜰에 심은 상추며 쑥갓. 파와 토마토, 살구나무를 다 구경하고 우리는 모두 함박꽃이 흐드러진 ㅇㅇ이의 자리 앞에 한참을 서 있었다.


아이를, 모르는 산 깊은 땅 속에 차마 묻을 수가 없어서, 도리없이 항아리를 품고 있었노라 부부는 말했다. 그렇게라도 하면 마음이 나을 것 같았는데 꼭 그렇지만도 않았다고도 했다. 삶과 죽음이 다른 세계라면 ㅇㅇ이도 산 자기들과 같이 있는 그 자리가 편한 자리는 아니라고 생각할 것 같아 또 미안해졌지만 그렇다고 새삼 달리 품어줄 땅을 찾을 엄두도 나지 않았다고 했다. 어느 결에 딸이 있는 함박꽃 앞에 낮게 쪼그리고 앉은 부인이 우리를 올려다보았다.

"그러다가 이 집에 오게 됐어요. 아무래도 우리 ㅇㅇ이가 엄마 아빠 편하라도 이리 보내준 것도 같아요. 집을 손질하고 마당을 일궈 잔디를 심고 꽃을 심는데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는 거예요. 우리 딸이랑 같이 하는 것 같더라고요."

얘기를 듣는 내내 눈물을 훔치고 있던 A의 일본인 부인이 손수건을 꺼내더니 주저앉으며 앉아있던 집주인 아내를 끌어안았다. 분홍의 꽃더미 옆에서 서로를 끌어안은 둘의 모습은 흡사 정다운 두 개의 무덤 같았다. (계속)

keyword
목, 일 연재
이전 02화봉은사 산책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