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은사 산책 4(완)

총 4회로 나뉜 에세이입니다.

by 새림

4.

가끔 들르는 동네의 회원제 도서관에서 내가 좋아하는 어느 작가의 강연이 있다기에 간 적이 있었다. 나는 약간 늦었었고 살금살금 들어가 소리가 나지 않도록 조심하며 의자를 빼고 앉았을 때 작가는 마침 광화문에서 몇 년째 농성 중인 세월호 가족들의 얘기를 하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쓰는 글만큼이나 조용한 사람 같았지만 종종 시청이나 광화문에서 열리는 세월호 가족들의 집회나 천안함 사태를 해명하라는 집회에 나간다고 했다. 그 자신이 구호를 외치려고 가는 게 아니라 구호를 외치는 사람들을 구경하기 위해서 간다고 했다. 글을 쓰는 사람이므로 그럴 수도 있겠다, 했는데 바로 다음 그는 말했다. 그런 노력을 하면서라도 억지로 그들의 아픔을 이해하기 위해서라고. 노력이라는 그 쉬운 단어가 그의 어려운 고백처럼 들려 가슴에 남았다.


타인의 고통을 우리가 얼마나 이해할까. 개인마다 다를 테지만 완벽한 이해란 아마도 영원히 불가능한 일이리라. 작가가 하고 싶었던 건 바로 그런 얘기가 아니었을까. 이해가 그토록 어려운 것이라면 노력을 해서라도 알아야 하지 않겠냐고, 사람이라면 마땅히 그런 의무가 있어야 하지 않겠냐고.


혼란의 시대를 지나야 했던 나의 20대 시절, 내 동창들 중 몇은 공부만으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무엇을 찾아 노동현장으로 떠났었다. 그 친구들의 어려운 결정 뒤에는 내가 모르는 어떤 사연, 나와는 다른 그들만의 역사가 있을 것이라 막연히 생각했다. 그러므로 그런 역사도, 사연도 없는 내가 안전한 나의 자리에 머무는 것에 일말의 부끄러움은 없었다. 하지만 사연과 역사까지 들먹였던 나의 마음엔 아마도 무의식적인 합리화가 숨어있지 않았을까.


왜 모두 나 같다고만 생각했을까. 어쩌면 그들은 타인을 영원히 이해 못 할 자신의 자리가 두려워 떠났던 게 아니었을까. 그들에게 가장 겁나고 역겨운 일이란 다름 아닌 바로 자기 자신의 몰이해 혹은 안일이지 않았을까.





오색의 연등이 일시에 흰 연등으로 바뀌는 봉은사 뒤뜰 지장전은 고즈넉했다. 유난히 어두운 법당 안으로 고개를 넣고 우리는 죽은 영혼들을 위로한다는 *지장보살을 올려다보았다. 열어젖힌 문 너머로 밤바람이 불었다. 흰 명부들이 조금씩 흔들렸다.


본당으로 가는 마지막 문 앞에서 남편은 현판의 글씨를 읽었다. 불이문. 모든 것은 하나의 진리로 통한다는 문이며 또한 모든 번뇌와 고통을 잊는다는 뜻이다. 삶과 죽음이 둘 아니라 하나라는 뜻이기도 하다. 좋은 말이다. 그 말이 좋아 나는 대웅전 마당에서 팔고 있는 5천 원짜리 초 한 자루를 사서 초공양을 했다.


죽음이라는 단어 앞에서 늘 그렇듯 아빠 생각도 잠시 했다. 아빠는 더 이상 꿈으로도 나를 찾아오지 않는다. 야속하고 쓸쓸하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라 마음을 고쳐먹는다. 절대로 잊고 싶지 않았는데 이제 나는 제법 오랫동안도 아빠 생각 같은 건 하지 않는다. 30년 전 바위덩어리 같았던 슬픔은 시간과 함께 돌멩이처럼 작아졌고 반들반들한 그것은 이윽고 내 주머니 깊숙이 박혀 있는 것이다. 그러다가 이런 날, 불이문을 만나고 친구의 죽은 딸이 생각나는 날, 주머니 속의 돌멩이는 불쑥 낯선 감촉으로 만져진다.


다행히 오늘의 화두는 불이문이다. 삶과 죽음이 결국 하나라면, 산 자와 죽은 자 모두 고통도 번뇌도 없기를. 순천 부부도, 평생 남의 아기가 못 견디게 부러웠을 A의 일본인 부인도, 그리고 나의 아빠도, 부디 그렇게 됐기를... 불이문을 지나고 사천문을 지나, 걷기 좋은 5월의 밤거리를 다시 지나 우리는 천천히 집으로 돌아왔다.(끝)



*지장보살... 중생의 연민과 고통에 위안을 주는 보살이며 저승에서 영혼을 지키기도 한다. 특히 어린아이와 태아를 인도하는 보살로 알려져 있다. 깊은 자비를 상징하여 대중에게 큰 사랑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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