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4회로 나뉘는 에세이입니다.
3.
어렸을 때도 나는 소심한 아이였다. 키도 제일 작았는데 생일마저 다음 해 3월이었으니 꽉 찬 애들에 비하면 딱 일 년 동생인 셈이었다.
초등학교 6년 내내 언니 같은 친구들은 나를 늘 동생 취급했다. 고무줄놀이든 공기놀이든 그 시절 여자애들이 틈만 나면 했던, 그 어떤 놀이에도 제대로 껴본 적이 없었다. 물정에 어두워 반친구들이 얘기하는 소문이나 유행어를 알아들을 주제도 못 됐었다.
너무 사납거나 억척스러운 애들하고는 눈이 마주치는 것도 무서워 슬슬 피해 다녔다. 공부를 좋아하지도, 대단히 잘하지도 않았지만 숙제나 준비물을 빠뜨리지도 않았다. 선생님께 미움을 받은 적도, 친구들과 싸워본 기억도 물론 없다. 그만한 용기도 배짱도 없었기 때문이다.
망친 산수 시험지 같은 것에 부모님 도장이라도 받아가야 되는 날이면 얼굴에 수심을 구름처럼 쓰고 썰렁한 윗목 벽에 딱 붙어 앉아 있던 장면이 생각난다.
너 지금 무슨 걱정 있지? 내 근심을 귀신 같이 잘도 맞추던 엄마 목소리도.
그 무렵, 서오릉 봄소풍에서 찍은 빛바랜 사진이 한 장 있다. 진달래가 흐드러진 능 한구석에 친구 예닐곱 명과 어울려 찍은 것이다. 한창 겉멋이 들려 약간 삐딱하게 선 친구들 사이에서 나는 혼자만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큰 눈은 더 크게 뜨고 친구들에 비해 키는 한 뼘쯤 작고 흰색 타이즈를 신은 두 무릎은 결사적으로 붙인 채.
이제 와 그런 나를 보노라면 문득 측은한 마음 같은 게 든다. 지나간 시간은 다 그러려나. 사진 속의 나는 힘들고 고독하고 그렇게 똑바로 서있느라 어린애답지 않게 벌써 지쳐 보인다.
얼마 전 유명한 생태학자의 강의를 듣고 알게 된 것인데 지구상에 사는 생물 중 다양성을 혐오하는 종류는 오직 호모 사피엔스 뿐이라고 한다.
반복과 일관에 대한 이들의 열광적인 집착은 지구의 역사를 바꾸었다. -예컨대 들쭉날쭉한 자연을 뒤엎어 시작한 것이 우연히도 작물 재배, 즉 농사가 되고 그것이 인류에겐 유래없는 진보가 된다- 또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은 질서에 대한 이들의 집착이 심미안에 마저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는 거다. 믿거나 말거나, 인간이란 태초에, 날 때부터 질서 없음으로는 아무런 감흥을 얻지 못했다. 자연에서 조차.
듣고 보니 맞는 것도 같았다. 그래서 그들의 후손인 우리는 늘 군락지 앞에서 탄성을 터뜨리곤 했나 보다. 메타세쿼이아가 끝도 없이 도열한 길이라든가 수천의 전나무가 빽빽이 심어진 숲에서, 그 오차 없이 거대한 반복 앞에서 압도되는 종류가 인간 말고 또 있을까. 일일이 물어볼 순 없지만 적어도 원숭이나 다람쥐가 그러진 않을 것 같다.
불현듯 이런 생각도 해본다. 어쩌면 이 속성 때문에 인간에겐 태생적으로 취향이란 것이 없었던 게 아닐까. 이즈음 취향의 부재에 대해 울적한 생각들을 했었기 때문이다. 모두들 개성, 개성을 하지만 개성 면에서 우리가 원숭이나 다람쥐 보다 낫기는 한가. 그런 짓궂은 농담이 절로 나는 시대다.
열이면 열이 다 똑같은 열망과 똑같은 목표를 세운다. 남이 가진 것은 나도 가져야만 비로소 안심들을 한다. 이 대목에 대해 알랭 드 보통은 적나라하게도 속물근성을 얘기한 바 있다. 불평등이 일반적인 법칙이던 과거와는 달리 모든 계급이 대체로 평등해진 오늘날, 인간들은 오히려 더 심한 우울과 불안 심지어 공포에 시달리게 됐는데 이유는 자신과 비슷한 부류들을 너무 많이 만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는 거다. 불평등의 시대에선 오히려 예상하지 못한 부작용이다.
나도 그렇다. 오랫동안 나는 질투 같은 것은 생각하지 않고 살았다. 누군가를 부러워하지도 비교하지도 않았지만 잠시 그랬더라도 거기에 우열이 있다고는 더더욱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이것도 다 젊을 때 얘기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며, 비슷비슷한 이웃들 틈에 살면서, 나는 내가 얼마나 어리숙하고 모자란 엄마인지를 수도 없이 반성했었다. 옆집은 어찌 사는지, 무엇을 먹는지, 아이들은 어떻게 가르치는지를 궁금해하는 것. 그게 어쩌면 엄마 노릇의 첫 번째가 아닐까, 그런 말도 안 되는 비약까지 하느라 괴로웠었다.
그때의 의심과 불안은 겁 많던 어린 시절과는 다른 종류의 두려움이었다. 똑같은 목표를 가진 열 사람 중의 한 사람으로서 나도, 내 아이도 절대로 탈락되거나 밀려나서는 안된다는, 지극히 속물적인 두려움이었다. (계속)